전남 장성군 필암서원에서 선비 체험에 나선 어린이 관람객이 서원에 앉아 선비 체험을 하고 있다. /장성군 제공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에서 선비 체험에 나선 어린이 관람객이 서원에 앉아 선비 체험을 하고 있다. /장성군 제공
엄숙하고 정적인 공간으로만 인식되던 서원이 현대적인 감각을 입고 활력 넘치는 문화 영토로 재평가받고 있다. 전남 지역 서원 가운데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장성 필암서원이 그 주인공이다. 수백 년 동안 조선 선비정신의 정수를 보존해 온 이곳은 최근 역사적 가치 위에 공연과 체험, 관광을 결합한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얹으며 전통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선비정신, 현대적 감각을 입다

장성 필암서원은 문화유산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서 벗어나 대중이 머물고 호흡하는 체류형 복합문화공간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을 유산으로 진화 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의 멋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도 호평받고 있다. 지난달 필암서원 일원에서 열린 ‘역사토크 사(史)랑방콘서트’에는 400여 명의 가족 단위 방문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하서 김인후 선생의 높은 학덕과 뜻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부채 위에 직접 글귀를 적어보는 ‘선비 부채 그리기’와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엮어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장명루 팔찌 만들기’ 코너는 종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서예와 가훈 쓰기, 한글 캘리그래피 체험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나란히 앉아 붓을 쥐며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풍경이 연출됐다.

마당 한쪽에 마련된 투호 던지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 민속놀이 구역 역시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데 한몫했다. 서원 입구에서 유생복을 대여한 관람객은 ‘꼬마 선비’, ‘현대판 유생’으로 변신해 서원의 아름다운 건축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며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행사의 정점은 강학 공간인 청절당에서 펼쳐진 무대였다. 설민석 강사는 성리학과 서원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흥미진진하게 전달해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인종 임금과 하서 김인후 선생 사이의 애틋한 사제지간 정서와 묵죽도(墨竹圖)에 얽힌 스토리를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복원해내며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했다.

◇‘문불여장성’의 정체성 잇는 이벤트

1590년 건립돼 하서 김인후 선생의 학문과 절의를 기려온 필암서원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며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장성군은 이 같은 필암서원의 자산을 기반으로 ‘세계유산 필암서원 K-선비문화 프로젝트’를 가동해 지역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릴 방침이다.

먼저, 오는 27일에는 국가유산청 세계유산 활용프로그램 공모사업 선정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초·중등생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이 행사는 청금복을 입은 참가자가 유물전시관을 관람하고 청절당에서 예절을 배우는 밀착형 캠프다. 다도 체험, 묵죽도 부채 만들기, 자개 책갈피 제작 등 오감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오는 22일까지 온라인 폼을 통해 신청을 받는다.

하반기에는 전통의 가치를 한층 깊이 있게 파고드는 굵직한 행사도 기다리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는 10월 3일 개천절에 열리는 ‘2026년 문불여장성 과거시험 재현행사’다. 필암서원산앙회가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기존의 백일장 형식을 과감히 탈피해 500년 전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을 그대로 고증한다.

장성군은 이외에도 야간 경관을 활용한 미식 행사인 ‘별빛서원 풍류 다이닝’, ‘어린이 그림대회’ 등을 지속적으로 열기로 했다. 또 서원이 보유한 고문서를 디지털화하는 아카이브 구축 작업도 병행해 온·오프라인을 모두 아우르는 문화 자원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김한종 장성군수는 “과거 조상들의 지혜와 학문이 머물던 공간이 이제는 미래 세대의 인성 교육장과 글로벌 관광객을 위한 매력적인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며 “전통 자산을 현대적 콘텐츠로 재창조해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관광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성=임동률 기자 exi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