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냐 김민석이냐…뿌리 다른 與 친명 당권전
정청래는 노사모, 김민석은 DJ가 발탁한 386 스타
김민석은 민심 우세, 정청래는 권리당원층 강세
김민석은 민심 우세, 정청래는 권리당원층 강세
정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대표였던 시절 최고위원으로 호흡을 맞추며 친명 주류로 분류돼 왔다. 다만 최근 당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당내에서는 정 대표 계파를 따로 친청(친정청래)으로 부르는 흐름도 생겼다. 강성 당원층을 기반으로 검찰개혁과 당원주권을 앞세우며 독자적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의 정치적 뿌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닿아 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선출되던 시기 노사모 활동을 기반으로 존재감을 키웠다. 정 대표는 당시 싸리비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핵심 멤버였다. 이후 2004년 탄핵 역풍 속에 국회에 입성했고 친노 세력이 약화한 뒤에도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과 개혁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계승해온 인물로 꼽힌다.
김 총리의 정치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도 2002년이었다.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자 그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후보 측 국민통합21에 합류했다. 당시 친노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임종석 우상호 이인영 오영식 의원 등 당시 386 정치인은 공동성명을 내고 “더 이상 민주당도, 개혁도, 희망도 말하지 말라”며 김 총리를 공개 비판했다. 노사모 내부에서도 비난 여론이 이어졌다. 당시 김 총리는 보수 집권을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수차례 밝혔다. 대선 직전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했을 때는 노 후보 지지성명을 냈고 훗날 “노무현 승리를 보며 울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후 김 총리는 정치자금법 사건 등으로 오랜 공백기를 겪었고 한때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원외에서도 독자 세력을 유지하며 재기를 모색했다. 2016년 추미애 대표 체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김 총리가 이끌던 원외 민주당을 흡수합당하면서 그는 제1야당으로 복귀했다. 이후 민주연구원장 등을 거치며 당내 전략통으로 재평가받았고 이재명 대통령 체제에서는 핵심 측근 그룹으로 부상해 국무총리까지 올랐다.
다만 실제 전당대회 승부를 가를 권리당원층에서는 다른 흐름도 감지된다. 폴리뉴스-한길리서치 조사에서 일반 국민 대상 적합도는 김 총리가 앞섰지만, 권리당원 조사에서는 정 대표가 40.2%로 김 총리(25.0%)를 크게 앞섰다. 정치권에서는 노사모와 강성 권리당원층을 중심으로 정 대표 지지세가 결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 전대는 친명 내부 당권 경쟁이지만 동시에 민주당의 오래된 족보 싸움 성격도 있다”며 “김민석 국무총리는 친명 주류의 안정적 당 운영을, 정청래 대표는 노무현 이후 당원 정치와 개혁 노선을 상징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당원이 어떤 민주당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