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추진하는 핵심 광물의 시장 가격 하한제 도입이 우방인 주요 7개국(G7) 동맹국과 관련 업체 간 이견으로 삐걱대고 있다. 가격 하한제는 정부가 주요 광물의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제도다. 주요 광물의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싼 가격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높인 중국 공급망을 흔들려는 조치로 평가된다.
◇G7 정상회의 주요 의제
16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에비앙에서 15일(현지시간)부터 17일까지 열리는 G7 정상회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리튬, 희토류 등 전략 광물의 안정적 조달이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지난 2월 서방 중심의 핵심 광물 무역 블록을 형성하는 방안을 처음 제안했다.
당시 밴스 부통령은 “값싼 핵심 광물이 우리 시장에 밀려들어 제조업체를 무너뜨리는 문제를 없애겠다”며 생산 단계마다 ‘기준 가격’을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가격 질서를 지키기 위해 ‘조정 가능한 관세’로 이를 강제할 수 있다고 했다. 반도체와 전기차, 첨단 무기 핵심 소재인 광물을 놓고 중국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서방 차원의 가격 동맹을 띄운 셈이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의 전략은 광물 채굴량 자체를 더 늘리자는 것이 아니다. 현재 중국산 가격이 워낙 낮아 서방 광산업체가 증산에 나설 유인이 거의 없다. 가격 하한선을 정해 기업 수익성을 일정 부분 보장해주면 서방에서도 생산 확대가 가능하다는 것이 미국의 계산이다. 최저가에 못 미치는 부분은 정부가 지원금으로 메우는 구조다.
◇중국 의존도 낮추는 전략
중국은 지난 수년간 여러 산업에서 적자를 감수하며 가격을 떨어뜨려 경쟁자를 고사시키는 전략을 반복했다. 핵심 광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위적 저가는 서방 광산기업 채산성을 무너뜨려 신규 개발을 가로막았다. 일부 업체는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첨단 기술과 국방에 필수인 핵심 광물은 거래 투명성이 낮은 장외 시장에서 사실상 중국 가격에 연동돼 거래된다. 중국이 압도적 생산 규모로 글로벌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밴스 부통령 발표 이후 G7 회원국은 비공개 협상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반발했다. 유럽 국가들은 광물 판매 보존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보조금은 공급망의 어느 단계까지 적용할지, 전체적인 관리는 누가 하는지 등에 의문을 제기하고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광산업체는 광물을 사고파는 방식을 새로 설계하는 일이 매우 복잡하다는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 미국 에너지부의 배터리 및 핵심 광물 포트폴리오를 이끈 광물 투자자 애슐리 줌월트포브스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내가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저 가격을 매기는 방식을 두고도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전쟁부(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이 개발한 인공지능(AI) 모델을 활용하려 한다. 노동비와 가공비 등을 반영하면서도 중국의 시장 조작 요소를 걷어내 가격을 산정할 계획이다. 유럽은 미국이 개발한 AI 가격 체계에 종속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유럽투자은행(EIB)에서 광물 금융을 총괄하는 니콜라 베어는 “유럽은 역내 실거래에 기반한 가격 지수를 선호한다”며 “불투명한 가격 메커니즘을 더 투명하고 시장 중심적이며 조작에 덜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국 배터리와 반도체산업도 영향
가격 시스템의 운영 방식을 둘러싼 갈등도 있다. G7 의장국 프랑스와 캐나다는 G7이 주도하는 다자 틀을 선호한다. 미국은 다자 협상을 피하고 일본·유럽연합(EU) 등과 빠른 양자 합의부터 맺은 뒤 이를 확대하려 한다. 첫 협정에서 희토류, 안티모니, 흑연, 텅스텐 등 중국의 수출 통제·금지 대상 중 5~10개 광물을 먼저 선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의 셈법도 갈린다. 대부분 기업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자는 데 공감대가 있다. 광산기업은 가격 보장에 우호적이지만 배터리·반도체 등 광물을 사다 쓰는 업계에선 비용 상승을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
한국 산업에 미칠 파장도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리튬 니켈 코발트 희토류 등 첨단산업 필수 광물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선 최저 가격제가 가동되면 광물 조달 단가가 구조적으로 높아져 배터리와 반도체 기업의 원가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