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증기금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빚을 금융회사에 대신 갚아준 뒤 회수하지 못한 구상채권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규모 신보 보증을 받아 대출을 늘린 중소기업이 고금리·고물가·고환율 환경에서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금난에 몰리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국가 재정 부담도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위변제율 12년 만에 최고
16일 신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구상채권 잔액은 4조287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말 3조6081억원보다 18.8% 증가한 규모로 역대 최대치다. 2023년 말 2조7844억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1.5배로 불어났다. 구상채권은 보증기관이 기업의 부실 채무를 대신 갚은 뒤 채무자나 보증인 등에게 상환을 청구해 회수해야 하는 채권을 말한다.
팬데믹 시기 중소기업 보증 공급이 대폭 확대된 이후 부실이 늘면서 대위변제액이 급증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신보의 보증 잔액은 2019년 47조2231억원에서 2020년 54조9536억원으로 증가했고, 2022년에는 처음으로 60조원을 넘어섰다. 이후 보증 공급 규모는 줄곧 60조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위변제액도 2022년 8812억원에서 2023년 1조4912억원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2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말 신보의 대위변제율은 3.5%로, 2013년 3.5% 이후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일반 보증 부실률도 지난해 3.7%로 집계돼 2016년 3.9%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문제는 앞으로 부실률이 더 빠르게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내수 부진과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 부실 신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81%로 1년 전 0.76%보다 0.05%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중소법인 연체율도 0.80%에서 0.88%로 높아졌다. 기업 파산 신청도 늘고 있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4월 누적 기준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9.6% 증가한 859건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뒤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가 재정 부담 확대 우려
하반기 전망도 밝지 않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500원을 웃도는 등 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입 업체는 같은 물량을 들여오더라도 원자재와 에너지, 중간재 매입 비용 부담이 커진다. 비용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일수록 수익성 악화 압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점도 악재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빠르게 불어나 운영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수익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압박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자금난이 심화해 신보의 손실이 커지면 결국 재정 투입으로 이어져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보의 주요 재원은 정부 출연금이다. 손실이 확대되면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 정부의 공급 중심 정책이 시장에서 필요 이상의 대출을 유발하고, 다시 재정 투입을 불러오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구상채권액 급증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정부 보증이 일종의 구제 수단처럼 활용되면서 남발된 결과이자 선별적 정상화라는 금융의 기능을 훼손하면서까지 정부가 계속 돈을 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국가 재정이 좀비기업을 양산하는 데 투입돼 사회적 비용만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기술력과 신용평가 체계를 고도화해 재정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