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공급망 우방국' 홀대하는 통상 외교
‘자원 부국’인 호주와 캐나다가 한국 공급망 안보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높아졌다. 중국의 거듭된 자원 무기화에 두 나라는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우방국으로 떠올랐다. 올해 2월 시작된 중동 전쟁은 이런 흐름에 힘을 실었다. 원유, 가스 등 에너지원의 탈(脫)중동 대안국으로서 중요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물량 중 호주산은 2023년 23%에서 지난해 31.4%로 늘었다. 2024년 이전까지 사실상 전무한 캐나다산 수입 비중도 지난해 1.6%로 커졌다. 한국가스공사가 지분 5%를 투자한 ‘LNG 캐나다’ 사업에서 작년 9월부터 연간 약 70만t을 도입한 결과다. 수입 원유도 마찬가지다. 호주산 비중은 지난해 2.1%에서 중동 전쟁 발발 이후인 올해 4월 5.2%로 급증했다. 캐나다산 원유 수입 비중도 같은 기간 0.7%에서 2.9%로 늘었다.

그러나 정부 공식 행사에서는 아직도 호주와 캐나다의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9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취임 이후 열린 첫 외국상공회의소 간담회에는 미국과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독일, 프랑스, 영국 등 7곳의 상의만 초청됐다. 올해 1월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외국상의·외국인투자기업 간담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정부는 회원사가 300개를 넘는 주요 상의를 우선 초청해 왔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공급망 안보 시대에 회원사 수만으로 국가의 전략적 중요성을 판단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공급망 안보는 필요할 때 자원을 확보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원 부국과 얼마나 꾸준히 접촉하고 관계를 관리해 왔는지가 위기 상황에서의 협력 가능성을 좌우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외국과 희토류 등 구매 협상을 하면 ‘한국은 위기 때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구매자’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 시각엔 근거가 있다. 이승주 중앙대 국제정치학 교수는 최근 한 포럼에서 “2021년 요소수 대란 당시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요소 수입 다변화에 합의했지만 이후 중국의 요소 수출이 재개되자 이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간담회 한 번으로 공급망이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 간 신뢰는 작은 접점이 쌓이며 형성된다. 한국 정부가 현재 우리 기업의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전방위 외교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평소 관계를 다져온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사이에는 결정적 순간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