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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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간 사실상의 종전 합의로 중동발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한국 경제가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됐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 기대에 한때 배럴당 100달러 선을 넘나들던 국제유가도 빠르게 진정되는 모습이다.

다만 전쟁이 남긴 충격이 곧바로 사라지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훼손된 생산시설 복구와 공급망 정상화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원·달러 환율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국내 물가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 직후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이란이 오는 19일 종전 MOU에 서명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 원유시장은 빠르게 안정세를 보였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84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1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전쟁 확산 우려로 급등하던 유가가 종전 기대감에 꺾인 것이다.

하지만 시장 가격 안정과 실제 공급망 복구는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전쟁 과정에서 피해를 본 중동 산유국 생산시설이 다시 정상 가동되고, 물류망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국제 유가 및 천연가스 도입 가격 전망' 보고서도 휴전 또는 종전 합의가 이뤄지더라도 당분간 배럴당 90달러 이상의 고유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국내 물가도 당장 안심하기 어렵다. 국제유가 급등 영향은 생산자물가와 수입물가를 거쳐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유가가 일부 안정되더라도 이미 오른 원가 부담이 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뒤늦게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올해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8.43으로 전월보다 2.5%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수입품까지 포함한 국내공급물가지수도 전월보다 5.2% 급등했다.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환율도 변수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치솟으면서 유가 안정에 따른 수입단가 하락 효과가 상당 부분 상쇄되고 있다. 중동전쟁 리스크가 줄어들면 외환시장이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지만, 최근 원화 약세의 주요 원인으로 외국인 주식 순매도가 꼽히는 만큼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면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부담은 다시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유가가 내려도 환율이 높으면 국내 소비자가 체감하는 수입물가 하락 폭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물가 압력이 이어지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도 계속 거론되고 있다. 유가와 환율발 물가 상승 부담이 커지자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내 2회 이상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언급된다. 당장 7월 '빅스텝', 또는 7·8월 연속 인상 가능성도 거론된다.

금리 인상은 물가를 잡기 위한 수단이지만, 가계와 기업에는 부담이다. 가계 이자 비용이 늘고 투자 여력이 약한 중소·영세기업의 경영 부담도 커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 정상화가 이뤄지더라도 하반기 한국 경제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한국개발연구원과 경제협력개발기구 등 주요 기관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에는 하반기 유가 안정과 지정학적 긴장 완화 기대가 이미 일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수정경제전망에서 미국과 이란 협상이 타결되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빠르게 재개될 경우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기본 전망보다 각각 0.1%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물가상승률은 올해 0.2%포인트, 내년 0.3%포인트씩 낮아질 것으로 봤다.

유가 안정 계기가 생긴 만큼 정부의 시장 개입 조치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석유 제품 최고가격제가 석 달 넘게 유지되면서 시장 가격 기능이 왜곡되고 정부의 정책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유업계에서는 누적 손실 규모가 4조원을 넘어섰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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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