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열심 서사
최근 숏폼 영상 알고리즘을 평정한 콘텐츠가 참 동적이다. 흰 민소매를 입고 까마득한 후배 걸그룹의 안무를 몸이 부서져라 소화하는 전직 아이돌 이준, ‘꽃미남 배우’로 많은 것을 이뤘음에도 사십 대 중반에 ‘헤드스핀’에 도전한 강동원, 잘생긴 외모와 대비되는 ‘병맛’ 광고 콘셉트를 충실히 이행한 나머지 “어디 잡혀 있는 것 아니냐”는 댓글 반응을 얻은 배우 지창욱 등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의 ‘지독한 열심’에 대한 뜨거운 지지다.

한국 사회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인식됐다. 열심히 해서 경제 발전을 이뤘고, 열심히 해서 문화 강국이 됐다. 라면만 먹고도 오로지 열심 하나로 올림픽 메달을 딴 선수, 돈이 없어 여러 명이 지하 단칸방에서 숙식했다는 연예인의 고생 서사가 주목받았다.

‘열심히만 하면 뭘해. 잘해야지’라는 차가운 경쟁 사회의 일갈 속에서도, 열심과 최선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기본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이런 열심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도 점점 열심이라는 인풋이 꼭 결과라는 아웃풋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경험이 쌓이면서다.

급작스러운 시장 질서의 변화, 예측 불가능한 경제 상황, 자고 일어나면 새로고침되는 기술의 급변 속에서 개인의 성실함은 시시때때로 무력해진다. 어떤 콘텐츠가 대세가 되는 과정에서 치밀한 기획만큼이나 ‘알고리즘의 간택’이라는 운이 작용하는 것처럼, 세상의 작동 방식 또한 그러한 콘텐츠의 알고리즘을 닮아가는 듯 보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과정보다 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결과지를 더 많이 받아 들 때, 열심은 방향 감각을 상실한다.

그렇기에 대중의 시선에서 이미 이룰 만큼 다 이룬 듯 보이는 연예인의 ‘불필요한’ 고군분투는 그 자체로 판타지다. 역설적이게도 현실 세계에서의 모호함이 숏폼 속 그들의 노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조건 없이 최선을 다한 과정 자체를 결과로 만드는 모습, 그리고 그를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 모습까지, 진심으로 노력하는 이들의 ‘열심 서사’는 열심이 망설여지는 요즘 세대에게 곧 ‘희망 서사’다. “저 사람도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내가 뭐라고” 하는 가벼운 농담과 공감 표시가 오늘의 무력감을 위로한다. 열심히만 살아도 ‘무언가 할 수 있다’라는 우리 모두의 희망에, ‘좋아요’를 꾸욱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