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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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의 '도가적 유연성' 속에 숨은 기회주의를 보라

중국 기업은 경영 현장에서 “유연함(柔)이 강함(剛)을 이긴다”는 표현을 오랜 기간 격언처럼 사용해 왔습니다. 이 말에는 노자(老子)의 도가(道家) 철학이 깊숙이 반영돼 있습니다. 마치 물처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가, 단단하고 고정된 존재를 결국 압도한다는 논리입니다.

겉보기에 이는 부드러움과 포용, 뛰어난 적응력의 미학을 강조하는 동양적 지혜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작동하는 중국 기업의 도가적 사고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상생이나 느긋함과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비즈니스를 일종의 전쟁으로 인식하는 중국 기업인들이 과연 유연하고 선량하며 부드러운 방식으로만 경영할까요? 실제 중국 기업이 비즈니스 최전선에서 보여주는 숨은 속내는 대단히 거칠고도 실리적입니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기반한 서구식 경영이 촘촘한 계약과 명확한 가이드라인, 시스템을 중시하는 ‘강(剛)’의 문법이라면, 중국 기업이 추구하는 ‘유연함(柔)’은 상황 변화에 따라 기존의 합의나 약속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이들에게 계약과 규칙이란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언제든 재해석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며, 이를 수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다른 도덕적 부채감을 느끼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외국 기업들이 이를 두고 ‘계약 위반’이라며 반발하면, 이들은 ‘상황이 바뀌었으니,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다(沒方法·메이반파)’라는 논리로 상황을 합리화합니다. 이런 인식의 괴리는 단순한 문화적 차이를 넘어, 실제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치명적인 변수로 작용합니다.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서방 기업은 최초의 약속이나 계약서상의 원칙을 근거로 법적·절차적 대응에 나서지만, 갈등이 지루하게 장기화하는 사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됩니다. 그사이 시장의 주도권은 이미 중국 기업으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규칙과 신뢰를 준수한 쪽이 오히려 불이익을 떠안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극단적 실리주의의 민낯

이러한 ‘극단적 실리주의’는 중국 기업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특징입니다. 중국 기업은 자사의 제품이나 특정 사업 자체에 큰 애착이나 집착을 두지 않는 편입니다. 돈이 되고 생존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어제까지 본업으로 삼던 주력 사업을 과감히 내던지고 완전히 다른 분야로 순식간에 피벗(pivot·사업 전환)을 단행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전격적인 전환은 외부에서 보기에 일관성이 모자란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이들 내부적으로는 생존 확률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고도화된 전략적 선택입니다.

이들은 정체성이라는 ‘강함’을 고집하다가 부러지기보다는, 생존을 위해서라면 체면과 기존의 정체성을 버리고 유연하게 변신해서 살아남는 실리를 선택합니다. 기업의 브랜드 가치, 역사, 경영 철학조차도 이들에게는 절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언제든 조정 가능한 변수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지방정부의 자국 우선주의라는 버팀목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은 중국 지방으로 내려가면 더욱 노골적으로 실천되고 있습니다. 중국 중앙정부의 제도적 정비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는 세수 확보와 고용 유지를 위해 향토 기업(지방 기업)의 위조품 생산이나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를 묵인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일이 허다합니다.

단편적인 예로, 상표권 분야에서 ‘선(先)출원주의’를 악용해 해외 유명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 진입하기 전 상표를 선점하는 약탈적 행위가 판을 쳐도 지방 당국은 느슨한 관리로 일관합니다. 반면, 자신들의 첨단 기술이 해외로 이전되는 것은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외국 기업이 보유한 핵심 기술의 이전은 은밀하고 집요하게 강요합니다.

심지어 소송 과정에서 기술이나 영업비밀을 과도하게 공개하도록 압박하거나, 처리 속도와 의지를 정치적 환경에 따라 고무줄처럼 집행하는 등 정부조차도 자국 우선주의적 기회주의 법 집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퍼스트 무버'보다 '빠른 모방' 선호

중국 비즈니스 생태계에서는 처음부터 독창적인 기술이나 새로운 사업 모델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행위를 위험 부담이 너무 큰 ‘강성(剛性) 전략’으로 인식합니다.

대신 중국 기업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이 끝난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모방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이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탄탄한 내수 시장을 발판 삼아 빠르게 현지화에 성공한 뒤, 막강한 규모의 경제를 무기 삼아 세계 시장에 진입해 기존 경쟁 기업들을 고사(枯死)시키며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는 전략을 반복적으로 구사해 왔습니다.

한국 기업의 생존 및 대응 전략

중국 경영 맥락에서 회자하는 "유연함이 강함을 이긴다"라는 말의 본질은, 결코 아름다운 처세술이나 동양적 미덕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생존과 승리라는 절대 명제를 위해서라면 원칙, 선의, 계약, 브랜드의 정체성, 나아가 체면 따위는 언제든 미련 없이 던져버릴 수 있는 ‘극단적인 기회주의적 민첩함’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은 대(對)중국 기업관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우선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전략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모방할 수 없는 초격차 기술을 개발해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돼야 합니다. 공급망의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아세안(ASEAN), 인도, 북미 등으로 생산 기지와 조달처를 넓혀 ‘차이나 리스크’ 분산과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합니다.

중국은 정부와 기업이 일체가 돼 시장을 지배하는 특수한 체제인 만큼, 개별 기업 차원의 대응에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한 팀이 돼 촘촘한 전략적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총력전으로 임할 때, 실질적인 대응력과 생존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경영학박사 / 한중기업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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