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월드컵 첫 경기
“첫 경기는 언제나 가장 어렵다. 선수들은 긴장하고, 시작이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조차 첫 경기에서 느끼는 중압감은 상당했다. 스포츠에서 첫 경기는 미지의 전장(戰場)이나 다름없다. 준비한 전술이 현장에서 통할지 데이터나 전력 분석만으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를 내지 못하면 다음 경기는 벼랑끝 승부가 되고 만다. 선수들의 중압감을 날려버릴 유일한 열쇠는 승리다.

한국 축구의 도약은 첫 경기 승리에서 시작됐다. 전국을 붉게 물들인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1차전에서다. 한국은 홈팬의 열띤 응원 속에 황선홍과 유상철의 연속 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월드컵 무승’의 한을 풀어낸 감격의 첫 승이었다. 첫 단추를 잘 끼운 대표팀은 기세를 몰아 ‘4강 신화’라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이뤄냈다.

‘원정 첫 16강’ 이정표를 세운 2010년 남아공 월드컵도 첫 경기인 그리스전 2-0 승리가 발판이 됐다. 사상 두 번째 원정 16강을 달성한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선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거둔 값진 무승부가 사실상 첫 승처럼 작용하며 팀 분위기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토고를 상대로 원정 첫 승을 거뒀으나 프랑스와 무승부, 스위스에 0-2 패배로 탈락했다.

대표적 명경기로 꼽히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대표팀의 전승 우승 신화도 마찬가지다. 첫 경기 미국전에서 역전승을 거두지 못했다면 이후 일본과 쿠바를 연파하며 일궈낸 ‘9전 전승 챔피언’의 위업은 불가능했다.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16년 만에 첫 경기 승리를 거뒀다. 황인범과 오현규의 후반 연속골로 체코에 2-1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썼다. 이전까지 역대 월드컵 본선 1차전 성적은 3승3무5패였다. 1차전 패배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잔인한 공식으로 이어졌던 만큼 이번 첫 승은 승점 3점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다시 한번 위대한 도전에 나선 태극전사들의 거침없는 질주를 응원한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