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눈치'라는 선물
젠슨 황의 방한이 한국을 강타했다. 시대의 화두는 AI가 점령했고, 사라질 직업으로 단연 변호사가 꼽힌다. 20년 넘게 법조인으로 살아온 나 역시 AI보다 나은 점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다. 판례 검색과 정보 분석, 매끈한 논리 정립은 머지않아 AI가 독보적 우위를 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변호사에게 남겨진 몫은 무엇일까. 의외로 답은 어린 시절 성적표 속에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성적표에는 ‘눈치가 빠르다’는 평가가 적혀 있었다. 내게는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몸에 밴 삶의 방식에 가까웠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오남매 중 넷째 딸로 자라며 나는 내 차례를 주장하기보다 상대의 표정을 먼저 살피는 법을 배웠다.

내 기억은 다섯 살 무렵 서울 갈월동의 셋방 마당에서 시작된다. 집 앞 가게에서 팔던 50원짜리 과자가 너무 먹고 싶어 어머니의 소매를 붙잡은 날이다. 어머니는 선뜻 지갑을 열지 못했다. “미경아, 미안하다. 나중에 꿀 뜨면 꼭 사줄게. 지금은 조금만 참자.” 그 말보다 먼저 내게 닿은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비켜선 시선. 그 안에는 과자 하나 사주지 못하는 어미의 미안함과 무력감이 고여 있었다.

그 순간 어린 나는 직감했다. 여기서 더 조르면 어머니의 저 표정이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섯 살의 나는 과자의 달콤함보다 어머니의 슬픔을 멈춰 세우는 쪽을 선택했다. 먹고 싶은 마음을 삼켰고, 그날 이후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됐다. 사람들은 그것을 눈치라고 부른다는 걸, 성적표를 보고 알았다.

세월이 흘러 변호사가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린 시절의 그 감각은 내 직업에서 가장 소중한 능력이 됐다. 사람들은 변호사를 말 잘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믿는 변호사의 본질은 경청에 있다. 사람들은 법정을 거짓말이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장면도 있으나, 내가 법정에서 더 자주 본 것은 거짓말보다 침묵이었다. 하지 못한 말, 너무 늦게 꺼낸 말,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다.

의뢰인은 법률문제만 가지고 오지 않는다. 억울함과 두려움, 후회와 수치심 등을 함께 안고 온다. 사람의 진심은 매끈하게 정리된 문장보다 망설이는 침묵 속에 더 또렷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의뢰인을 마주할 때 주장하는 말보다 멈칫하는 순간을 본다. 큰 소리보다 떨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갈월동 마당에서 어머니의 난처한 표정을 읽어내던 어린아이의 감각이, 이제는 차마 말하지 못한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는 직업적 감각이 된 셈이다. 법은 조문으로 움직이지만 사람은 마음으로 움직인다. 변호사의 역할은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누군가 끝내 말하지 못한 마음을 세상의 언어로 옮겨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50원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고 오래간다. 어린 시절의 눈치는 한때 서글픈 재능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그것이 타인의 아픔을 먼저 살피고, 누군가의 외로운 시간을 함께 견디게 해준 선물이었다는 것을. 오늘도 법정에는 수많은 말이 오간다. 그러나 내가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 끝내 하지 못한 마음의 침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