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조수미가 2026 호암상 예술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호암재단 제공
올해 삼성호암상 예술상은 소프라노 조수미(64)에게 돌아갔다. 호암재단은 지난 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으로 표현되는 예술인은 조수미가 유일하다”며 “40년간 조수미가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계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서양 클래식 음악계의 제왕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극찬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최고등급 ‘코망되르’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상과 훈장을 휩쓴 조수미지만 이번 호암상은 각별하게 생각했다. 그는 “제가 존 서더랜드의 노래를 듣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처럼 한 줄의 문장, 한 번의 공연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며 “(수상을 계기로) 음악세계를 가로막는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싶다”고 말했다.
“음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고민하다가 클래식과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고자 했어요. 음악으로 향하는 문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열어주려고 무대의 크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그런 고민의 시간을 알아준 것 같아서 감사할 뿐이죠.”
그의 삶도 화려한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시작되지 않았다. 1983년 3월, 갓 스무 살의 조수미는 비 내리는 이탈리아 로마에 작은 가방 두 개를 끌고 홀로 도착했다. 낯설고 쓸쓸한 방 안에서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어떤 고난 앞에서도 울지 않을 것. 약함과 외로움을 드러내지 말 것. 언어와 음악에 삶을 바칠 것.’
“인터넷은커녕 전화 연락도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족과 조국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채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었죠. 하지만 그 외로움과 오랜 훈련의 시간이 오히려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고독한 시간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 가운데 하나였다. 1993년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상(최고의 오페라 음반상)을 거머쥔 그는 이듬해 다국적 음반사 에라토와 계약하면서 국제판 앨범 재킷에 우리 가곡 ‘보리밭’을 한글로 표기하도록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귀국했을 때 부모님을 껴안고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보고 싶었어요”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더 강해져야 해”였다.
약소국의 설움이 컸던 조수미에게 호암상이 갖는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그는 호암상 시상식에서 “40여년간 전 세계 무대에 올랐는데 낯선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삼성의 로고였다”며 “저에게 그것은 단순한 기업의 이름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자, 타국에서 만나는 든든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고 했다.
조수미는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올해 발매한 40주년 기념 음반의 제목도 ‘컨티뉴엄(연속)’이다. 그는 세 가지 꿈을 위해 달리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단 콩쿠르를 열고, 자신의 삶을 주제로 한 뮤지컬을 제작하고, 한국에 자신의 이름을 건 콘서트홀을 마련하는 것이다. 벌써 콩쿠르는 시작됐다. 다음달 프랑스에서 제2회 조수미 국제 콩쿠르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