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량 감축 등 기업이 내놓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약속이 재무제표에도 반영된다. 홍보성 문구에 그쳤던 지속가능성 선언이 기업에 비용으로 되돌아올 것으로 전망된다. ESG 전략이 기업의 자산가치와 이익 등을 좌우하는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후 위험 재무제표에 명시

말로만 친환경 'ESG 꼼수' 이젠 안 통한다
9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한국회계기준원은 오는 12일 제7회 회계기준위원회를 열고, K-IFRS(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 개정 공개초안을 심의·의결한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국내에 도입하기 위한 조치다. 기후변화 대응의 영향 등을 재무제표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적용사례와 함께 명시했다. 다만 기존 재무제표 작성 원칙인 K-IFRS 요구사항을 추가하지는 않기로 했다. 기준 자체가 바뀌지 않더라도 회계 처리에 대한 사례가 공식화되면 기업의 정보를 해당 사례에 맞춰 공시해야 한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회계 감사 등에서 감사의견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이번에 도입되는 6가지 사례에는 △자산의 현금창출단위 손상 검사 기준 △신용위험 공시 △시설 조기 폐쇄에 따른 복구 충당부채 공시 등 기업 장부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예시들이 다수 포함됐다. 한국회계기준원은 업계 의견을 수렴해 적용 시기와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다.

그동안 대다수 기업은 기후 규제에 발맞춰 사업 전환 계획을 수립했다. 기후 리스크를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것은 기존 회계기준 아래에서도 원칙상 당연히 이행되어야 했던 사항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보고서가 홍보성 수준에 그치다 보니 재무제표와 연계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탄소를 다량 배출하는 정유·화학 기업이 외부 공시 등을 통해 “정부 규제 및 탄소중립 트렌드에 발맞춰 2035년까지 공장 가동률을 대폭 낮추겠다”고 밝히면서 공장의 자산가치는 그대로 두는 식이었다. 기후변화 취약 자산에 대출을 실행한 금융기업들도 관행적으로 담보 가치 조정을 하지 않았다.

회계 기준서에 구체적인 회계 처리 사례들이 명시되면 기업들의 재무제표도 달라진다. 기업이 기후 규제 변화에 따라 가동률 조기 감축을 계획했다면 미래의 현금 창출 능력이 악화하는 점을 반영해 장부상 손상차손 비용을 인식해야 한다. 금융회사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감안해 대출 자산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쌓아 손실을 선반영해야 한다.

◇지속가능성 공시도 의무화로 가닥

업계에서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는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에 새로운 회계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위는 올해 초 2028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지속가능성 공시를 의무화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초기에는 법정 공시가 아닌 거래소 자율 공시로 안착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기업 입장만 고려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최종 계획 발표를 미루고 세부 내용을 조율 중이다.

현재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거래소 자율 공시가 아닌 규제 구속력이 강력하고 위반 시 제재가 가능한 법정 공시로 도입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의무화 대상 기업 기준 역시 초안보다 낮아진 자산 10조원 혹은 5조원 안팎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속가능성 공시가 법정 공시로 확립되면 기업이 공시를 통해 알리는 기후 리스크는 재무제표에 반영할 법적 근거자료가 될 수 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공시를 허위나 부실하게 작성하면 투자자 소송과 당국 처벌 위험이 있다”며 “반대로 리스크를 상세히 작성하면 재무제표에 손실 숫자를 반영해야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