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사전 투표 중 기표 도장 관련 문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주민센터에서 사전 투표 중 기표 도장 관련 문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첨단 대한민국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서 투표를 못 했다고? 청년들의 문제 제기를 보고 스스로 주권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반성이 들더라고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서 이재명 대통령 발언 중)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일상 속 미세한 차별이나 불편함을 인지해 내는 공감 능력을 뜻하는 '○○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다양하게 사용돼 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성인지 감수성' 외에 '인권 감수성', '다문화 감수성' 등에 이어 이제 '주권 감수성'까지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됐다.

국민의힘은 이 같은 대통령의 현실 인식에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사전투표 당시 자신의 투표용지를 선관위 관계자에게 노출한 일화를 거론하며 "선거관리위원회의 권위를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맹폭했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 선거 관리의 대원칙이 무너진 것이 작금의 총체적 선거 부실 사태를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 "법 위에 군림한 대통령, 선관위 원칙 훼손했다"

김기흥 국민의힘 미디어 대변인은 8일 YTN뉴스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 선관위의 무너진 권위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 권위 추락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라고 직격했다.

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사전투표 당시 상황을 언급하며 "대통령이 도장이 제대로 찍혔는지 봐달라고 하니, 선관위 측은 '보여주시면 안 된다'고 제지했다"며 "당시 대통령이 '상관없다, 이리 와보시라'고 했다. 선관위는 이를 무효 처리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밀투표 원칙이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김 대변인은 "살아있는 권력이라 할지라도 원칙에 따라 무효 처리를 했다면 국민이 '선관위가 원칙을 따르는구나'라고 신뢰했을 것"이라며 "대통령이라고 해서 상관없다며 넘어가 준 것은, 법 위에 그 누구도 군림할 수 없다는 원칙이 무너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열몇 명 못 한 줄 알았다?"… 가벼운 현실 인식 질타

김 대변인은 이날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인식이 너무 가볍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이 사태 초기 상황을 회고하며 "열몇 명이 투표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결과에 영향이 있었겠느냐고 생각한 측면이 있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김 대변인은 "열몇 명이 잘못한 게 뭐가 문제냐는 인식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거리와 광장에서 외치는 국민은 현재 전면적인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가 이러한데, 대통령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사안의 엄중함과 대통령의 인식 사이에 상당한 갭(격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 李 대통령 "주권 감수성 부족 반성… 합수본 수사할 것"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해 "부정선거론과는 다른 문제"라며 "모범적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이 쌓아온 신뢰를 한순간에 훼손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문제를 제기한 청년들을 향해 "참으로 귀하고 존경할 만하다"며 "초기엔 결과에 영향이 있겠느냐고 생각한 저의 둔감함, 이른바 '주권 감수성'의 부족을 많이 반성한다. 이는 몇 표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 행사에 관한 원칙과 근본의 문제"라고 고개를 숙였다.

사태 해결을 위한 후속 조치로는 "일부러 그런 것인지, 근본적·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알아야 한다"며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신속히 수사하도록 지시했다"고 했다. 아울러 독립기관인 선관위 문제인 만큼 정부 주요 인사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