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00억달러 흑자…韓 '무역 체급' 커졌다
5월 수출액이 월간 기준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건 인공지능(AI)발(發) 반도체 슈퍼 호황이 지속된 영향이다. 특히 급등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수출액 고공행진을 견인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AI 서버 투자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하자 공급난에 처한 DDR5 등 레거시 메모리 가격이 동반 급등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반도체 호황이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이 올해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연간 수출 1조달러 클럽’에 합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 AI 반도체 초호황이 수출 증가 이끌어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5월 전체 수출액 877억5000만달러 중 반도체 수출은 371억6000만달러로 42.3%를 차지했다. 반도체 수출액 증가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전년 동월 대비 169.4% 늘었다. 물량보다는 가격이 주요 요인이다. 한국 주력 수출품인 DDR5 16Gb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682.1% 올랐고, 낸드 128Gb도 806.9% 급등했다. AI 서버에 들어가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3배가량 증가한 41억8000만달러어치를 기록했다.
벌써 1000억달러 흑자…韓 '무역 체급' 커졌다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은 지난달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내년 초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올해 연간 수출액을 9244억달러로 예상했다. 작년보다 30.3% 늘어난 사상 최대치다. 정부 안팎에선 산업연구원의 이 같은 전망이 보수적인 가정 아래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5월 메모리 가격이 4월보다 비싸졌고, 하반기에도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연간 수출 1조달러 달성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 자동차 수출은 부진

일각에선 지나친 반도체 의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메모리 단가가 하락 전환하면 수출액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산업부는 반도체를 제외해도 지난달 수출이 16.4% 늘어나는 등 전반적인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수출은 5%만 증가해도 높은 수치”라며 “화장품과 농수산식품 등 반도체의 빛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제품의 수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석유 및 석유화학 제품 수출도 증가했다. 정부의 수출 통제로 물량은 크게 줄었지만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기름값이 오르면서 제품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6.6% 증가한 52억5000만달러를 기록했고, 석유화학제품 수출액 역시 11.1% 늘어난 37억달러를 기록했다.

다만 자동차 수출액은 58억3000만달러로 5.9% 감소했다. 자동차 부품(16억달러·-2.5%), 일반기계(38억2000만달러·-6.3%) 등 전방 산업 수출도 줄고 있다. 정부는 올 3월 국내 자동차 부품사의 화재와 중동 분쟁에 따른 물류 애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자동차 수출 감소는 주요국의 관세 장벽 강화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체가 해외 현지 생산을 늘린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하반기 수출 전선에는 불확실성이 작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가 위축될 경우 반도체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럽연합(EU)의 철강 쿼터(TRQ) 규제 영향이 커지고, 미국·이란 간 전쟁이 일단락된다면 미국이 추가 관세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변동성이 커진 유가도 수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김대훈/김리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