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셀의 한계를 넘어 디지털 CFO로 진화하라

이장환 재무금융학 박사 [現 SK에코프라임 CFO, 前 AK홀딩스 CFO(CSO 겸직)]
이장환 재무금융학 박사 [現 SK에코프라임 CFO, 前 AK홀딩스 CFO(CSO 겸직)]
“신은 믿지만, 다른 모든 이들은 데이터를 가져와야 믿는다.”

통계학자인 에드워즈 데밍(W. Edwards Deming)의 이 말은 데이터 기반 경영이 현대 기업의 필수 조건임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현실의 기업 경영진은 데이터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파편화된 데이터 사이에서 ‘진실된 숫자’를 찾지 못해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수많은 재무 담당자가 밤을 지새우며 엑셀과 사투를 벌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보고서가 경영진의 손에 들어갈 때쯤이면 이미 시장 상황은 변해 있기 일쑤다.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숫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리포팅의 스토리텔링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도 그 토대가 되는 데이터가 부정확하거나 수집 과정이 비효율적이라면 그 이야기는 신뢰를 잃는다. 이제 CFO는 단순한 수치 관리자를 넘어, 기업 전체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하는 ‘디지털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데이터 기반 경영을 실현하기 위한 FP&A 시스템 구축의 세 가지 핵심 원칙을 제언한다.

전사적 '단일 데이터 원천(SSOT)'과 데이터 거버넌스를 구축하라

부서마다 서로 다른 숫자를 들고 회의에 참석하는 ‘데이터 사일로(Silo)’ 현상은 의사결정의 속도를 늦출 뿐만 아니라 조직 내 불신을 초래한다. 따라서, 시스템 구축의 첫 번째 목적은 ERP, CRM, HR 데이터까지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는 단일 데이터 원천(SSOT, Single Source of Truth)을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시스템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표준을 세워 가치 창출을 위한 공통의 언어를 정립하는 것이다. 정합성이 확보된 데이터 기반(Platform)이 갖춰질 때, 비로소 부서 간의 소모적인 숫자 논쟁을 끝내고 ‘어떻게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분석의 시간'을 확보하라

전통적인 재무 부서의 업무 시간 중 80%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며 오류를 수정하는 데 소비된다. 정작 중요한 데이터 분석과 전략적 제언에 할당되는 시간은 20%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시스템 도입은 이 구조를 역전시켜 재무 조직을 ‘과거의 숫자를 집계하는 조직’에서 ‘미래의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킨다.

특히 최신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은 엑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실시간 동시 협업을 가능하게 한다. 자동화된 시스템은 엑셀 수작업에서 발생하는 인적 오류(Human Error)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실시간 대시보드를 통해 경영진에게 상시적인 가시성을 제공한다. 시스템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가치 있는 판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실시간 '디지털 트윈' 통한 시나리오 시뮬레이션 역량을 강화하라

불확실성 시대의 시스템은 단순히 현재를 기록하는 도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앞서 3편에서 다룬 ‘Forecasting(예측)의 기술’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변수 변화에 따른 재무적 영향을 즉각 산출하는 시뮬레이션 역량이 필수적이다.

고도화된 FP&A 시스템은 경영 환경을 가상 세계에 구현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과 같다.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 변동과 같은 리스크를 가상 세계에서 먼저 겪어보고 최적의 답을 찾아내는 ‘What-if’ 시뮬레이션을 통해, 경영진은 막연한 감이 아닌 정교하게 계산된 데이터에 기반해 승부수를 던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 구축 원칙들이 단순히 IT 인프라 도입을 넘어 조직의 ‘디지털 엔진’으로 힘차게 가동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귀사의 재무 인프라가 낡은 관성에 묶인 ‘녹슨 부품’인지, 아니면 미래 성장을 가속하는 ‘최첨단 엔진’인지 필자가 제안하는 '성찰의 지표'들로 귀사의 디지털 FP&A 역량을 다시 점검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CFO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스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스템은 어디까지나 기업의 전략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조직의 철학을 숫자로 구현하는 수단이다. 명확한 전략적 방향성과 정교한 운영 지표(KPI)가 설계되어 있지 않은 시스템은 차가운 기계 덩어리에 불과하다. 결국 데이터 기반 경영의 완성은 탄탄한 시스템 위에서 CFO의 날카로운 통찰과 전략적 결단이 결합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이제 데이터를 통해 내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면, 그 시야를 기업 외부의 사회적 가치와 지속 가능성으로 넓혀야 할 때다. 기업의 가치는 이제 장부상의 이익만으로 평가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는 재무적 성과와 사회적 책임을 하나의 전략 체계로 통합하는 새로운 화두, ESG 경영을 주제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FP&A의 진화 방향을 다루고자 한다.
데이터 기반 경영의 첫걸음 [이장환 박사의 FP&A 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