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원 4만여 명은 지난달 23일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며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총파업을 예고했다.  /최혁 기자
삼성전자 노동조합원 4만여 명은 지난달 23일 성과급 상한제 폐지를 요구하며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총파업을 예고했다. /최혁 기자
삼성전자 경영진은 15일 경기 평택 공장 노동조합 사무실로 달려갔다. 협상 테이블로 나와 달라고 노조에 요구했다. 노조는 거부했다. 45조원을 성과급으로 내놓으라는 주장을 꺾지 않고 있다. 파업도 강행하겠다고 했다. 울산에서는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하고 있다. 이 밖에 카카오, 현대자동차 노조 등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 성과급일까.

성과급 논란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이 논란은 일면 긍정적이다. 과거 한국 사회를 뒤흔든 기업 관련 분쟁과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통 분담’이 아니라 ‘성과 배분’이 주제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 배분을 둘러싼 분쟁은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한국 현대사에서 대규모 분배 요구는 1987년 7월 있었다.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다. 정당한 임금 지급과 노조 설립 허용이 주된 요구였다. 회사도, 사회도 ‘3저 호황’의 결실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시대에 벌어진 이 분쟁은 이후 중산층 형성의 밑거름이 됐다.

또 다른 대표적 분배 요구는 2000년대 초 일어났다. 사회단체와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했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소수주주 권리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아지는 성과가 있었다.

2026년은 이 같은 대한민국의 분배 논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1987년 연대를 기반으로 “인간답게 살고 싶다”던 요구는 2026년 “기업 이익의 일부는 우리 몫”이라고 주장하는 ‘이익 공유 투쟁’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 노조는 인공지능(AI) 붐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이익이 급증하자 근로 조건이 아니라 기업의 자본 배분 전략까지 노동 의제로 끌어들이고 있다. 과거 노조와 달리 현재 투쟁을 주도하는 것은 ‘공정과 실리’를 중시하는 MZ세대라는 점도 다르다.

한국 사회는 이제 결핍이 아닌 잉여의 시대에 어떻게 자원을 배분할 것이냐를 숙의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그 결과가 10년 후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보다 앞서 이를 경험한 해외 기업이 주는 교훈은 성과 보상도, 주주 환원도 과도하면 독이 된다는 점이다. 기업 환경은 급변하기 때문이다.

미래 투자금까지 짜내 나눠준 글로벌 기업들
임금 부담에 경쟁력 저하

성과급과 배당,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재투자. 기업이 낸 이익을 나누는 황금비율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해야 할까. 한국 사회는 논쟁 중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거둬들이고 있는 막대한 이익 덕분이다.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한국 사회가 받아든 숙제.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 오답의 키워드는 과도한 쏠림이다.

◇성과급의 늪

삼성전자도 더 이상 남일 아니다?…GM·인텔 보니 '섬뜩'
전문가들은 “성과급 때문에 망하는 기업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역사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성과급, 과도한 ‘기업 복지’가 몰락의 단초가 되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엥그룹(PSA) 합작으로 탄생한 스텔란티스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이 회사는 미국자동차노조(UAW)와의 단체협약에 따라 2019년 이익공유제를 도입했다. 영업이익에 연동해 성과급 규모를 정했다. 업황이 좋았던 2023년까지 3년간 세계 직원들에게 성과급 60억유로를 지급했다. 노동자의 사기는 치솟았지만, 미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전기차, 배터리, 소프트웨어에 투자할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올해 이익공유제에 따른 성과급을 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

스텔란티스처럼 성과급을 고정급화한 기업은 대부분 인건비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여유 자금이 없으니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할 방법도 사라진 탓이다. 스텔란티스처럼 이익공유제를 도입한 제너럴모터스(GM)도 2028년까지 93억달러(약 14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에 따라 GM의 차량 생산 비용은 현대자동차보다 대당 1500달러가량 높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배당의 함정

인텔은 PC 시대 절대강자였다. 2010년대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업체가 되는 것을 가로막은 것도 인텔이었다. 하지만 인텔의 전성기는 경영진이 엔지니어에서 재무통으로 바뀌면서 막을 내렸다. 2010년대 중반 인텔은 나노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미래를 위한 기술 혁신보다 배당에 집중했다. 그 결과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을 퀄컴에 내줬다. 인텔이 헤매는 동안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다.

그럼에도 인텔은 대규모 투자 대신 2021~2024년 매출의 3~10%를 현금으로 배당했다. 이익이 감소해도 배당은 크게 줄이지 않았다. 188억달러의 순손실을 내고 주가가 60% 급락한 2024년에도 16억달러를 배당했다. 그해 4분기에야 배당을 중단했다. 그 결과 인텔은 다우존스지수에서 25년 만에 퇴출됐고, 지난해 8월 미국 정부가 90억달러를 들여 지분 약 10%를 인수해 가까스로 회생할 수 있었다.

◇한국의 성과급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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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한국에서 배당 요구는 높지 않다. 주주들이 주가 급등으로 큰 시세차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노조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배경이다. 노조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고 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현대차 노조는 해마다 ‘영업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배분해달라’고 요구했다. 협상카드로 썼기 때문에 그동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명문화한 기업이 없는 이유다. 더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처럼 수백조원의 이익을 올린 사례가 없었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 노사가 2021년 10년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데 합의할 때 이 정도 규모의 이익을 전망한 사람은 없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현실화되자 삼성전자 HD현대중공업 카카오 등이 영업이익의 15~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가 잉여 자본 배분 문제로 전환된 것이다. 법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과급이 성과 보상 수단이 아니라 집단적 수익 배당 수단으로 바뀔 우려가 있다”며 “영업이익 배분 비율을 미리 확정하라는 요구는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경영 성과에 대해 사전 청구권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적정한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인재 유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회사 측에 떨어진 숙제다.

◇“파업이 분배 논의의 방식 될 수 없어”

1987년 8월 파업을 선언한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 근로자들이 울산공설운동장(현 울산종합운동장)으로 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경DB
1987년 8월 파업을 선언한 현대중공업 등 현대그룹 근로자들이 울산공설운동장(현 울산종합운동장)으로 향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한경DB
1987년 7월 전국에서 대규모로 일어난 파업에 여론은 우호적이었다.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생존 투쟁에 공감했다.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시대의 방식이었다.

오는 21일부터 파업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 이상이 파업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노조 요구가 과도할 뿐 아니라 노조가 파업이라는 방식을 채택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향후 한국 기업의 이익이 증가해 분배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대 기업의 노조가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식을 활용하는 게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계 관계자는 “이번 논의 결과는 앞으로 10년간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결정지을 중요한 문제”라며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이해관계를 일치시킬 수 있는 구조를 짜내야 한다”고 말했다.

정영효/곽용희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