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터. Getty Images
양자 컴퓨터. Getty Images
동전 하나가 공중에 떠 있을 때, 앞면인지 뒷면인지는 땅에 떨어져야 비로소 결정된다. 양자 입자는 다르다. 관측하기 전까지는 앞면이면서 동시에 뒷면인 상태로 존재한다. 이것이 '중첩'이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한쪽을 건드리는 순간 다른 쪽도 즉각 반응하는 것이 '얽힘'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기괴하다"며 평생 거부했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바로 이 기괴함을 무기로 삼아 문명의 다음 판을 설계하고 있다.

영국 출신 이론물리학자 폴 데이비스가 쓴 <퀀텀 2.0>이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 물리학 석좌교수이자 30권에 달하는 베스트셀러를 쓴 과학 저술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양자역학이 어떻게 현대 세계를 변혁했는지, 또 다음으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를 탐구한다.

책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 '양자 2.0'이라는 개념이다. 인류는 이미 한 차례 양자 혁명을 경험했다. 반도체, 레이저, 자기공명영상(MRI), 스마트폰 같은 현대 기술 대부분은 20세기 양자역학 연구의 산물이었다. 이를 저자는 '양자 1.0'이라 부른다. 당시 인간은 양자 현상을 발견하고 기묘함을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지금 진행 중인 '양자 2.0'은 다르다. 중첩과 얽힘 같은 기묘한 현상을 제어하고 활용하는 시대다.

이 책은 수식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양자센서, 양자인공지능(QAI) 같은 최신 기술을 설명하면서도 일상적인 비유를 활용한다. 예컨대 기존 컴퓨터가 하나씩 길을 선택하며 미로를 찾는 사람이라면, 양자컴퓨터는 여러 길을 동시에 시도하는 존재에 가깝다. 그래서 현재 슈퍼컴퓨터로 수천 년 걸릴 계산도 순식간에 끝낼 가능성이 거론된다. 신약 개발이나 기후 예측, 금융 분석 분야가 양자컴퓨터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일상을 비유해 '양자 이론' 알고 싶다면, 신간 <퀀텀 2.0>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양자 센싱' 분야도 흥미롭게 다룬다. 3000억년에 겨우 1초의 오차를 보이는 양자 시계는 금융 시장의 거래 속도를 재정의하고 있으며, 의료 현장에서는 뇌의 미세한 자기 신호를 읽어 신경 장애를 분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절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역시 양자 기술의 정교함 덕분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저자는 이 신기술들이 단순히 산업에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히고 중력파를 측정함으로써 인간의 지평을 시공간의 끝까지 확장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양자기술 경쟁이 이미 국가 전략 차원으로 넘어갔다는 점도 지적한다. 미국과 중국, 유럽의 빅테크 기업들이 '양자 우위'를 두고 경쟁하는 현실, 기존 암호체계가 무력화될 가능성, AI와 양자컴퓨팅의 결합이 가져올 윤리적 문제까지 폭넓게 다룬다.

후반부는 철학서에 가까워진다. '관측이 현실을 만드는가', '우주는 수많은 평행세계로 갈라지는가', '의식이 양자 현상과 연결되는가' 같은 질문들이 등장한다.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 서사적 설명 덕분에 과학사의 가장 거대한 질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독자에게 친절한 책은 아니다. 양자 지우개 실험이나 다세계 해석 같은 후반부 논의는 일반 독자에게 다소 벅찰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과학 개념과 역사, 또 진행 중인 제2차 양자 혁명을 이만큼 탁월하게 전달하는 책도 드물 것이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