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한류는 어떻게 중남미까지 사로잡았나…멕시코의 'BTS 열광'이 뜻하는 것 [홍재화의 매트릭스로 보는 세상]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음악적 관점에서 볼 때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권의 문화적 자양분인 레게톤(Reggaeton)과 살사(Salsa)는 직설적 리듬과 강렬한 에너지가 특징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의 대중음악이 지향하는 '흥'의 정서가 이들의 '피에스타(Fiesta)' 문화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주파수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언어와 인종은 다르지만, 비트를 수용하고 신체적으로 반응하는 ‘음감(Musical sense)’의 기저가 동질적일 때 문화적 장벽은 비약적으로 낮아진다. 지리적 거리는 멀지만 정서적 거리는 이미 동기화돼 있었다는 게 이번 현상의 핵심이다. K팝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정교한 멜로디 라인은 라틴권 대중의 음악적 DNA를 자극하는 최적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공명은 단순히 청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시각적 서사와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통해 더욱 증폭된다. 라틴 문화 특유의 열정적 표현 방식이 K팝의 군무와 강렬한 시각 효과라는 '언어'를 통해 변주될 때, 현지 대중은 이를 자신들의 문화를 가장 현대적으로 계승한 세련된 장르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정교하게 설계된 문화적 알고리즘이 서로 다른 토양에서 어떻게 유사한 꽃을 피울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연대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직접 소통이라는 한류 특유의 문법과 결합해 공고한 팬덤 공동체를 형성한다. 영미권 대형 자본이 주도하는 일방향적 공급 체계와 달리, 한국 엔터테인먼트가 보여주는 쌍방향적 교감과 진정성 있는 서사는 라틴권 대중에게 심리적 위안과 승리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결국 한류는 특정 국가의 문화를 넘어, 전 세계 소외된 감성들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문화적 플랫폼이자 정서적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류의 지리적 확장이 사실상 지구 전역을 포괄하게 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점령'이 아니라 '안착'이다. 일시적 공연 수익이나 반짝 유행에 안주하는 방식으로는 이 거대한 시장을 지속시킬 수 없다. 현지의 음악적 자산인 레게나 살사의 문법을 한류의 제작 시스템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할 것인지, 그리고 이들의 문화적 토양에 어떻게 한국식 플랫폼을 깊이 뿌리내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확장이 끝난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한 비즈니스의 질적 성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구 반대편의 군중을 동시에 흥분시키는 힘은 결국 '보편적 감성의 설계'에서 나온다. 멕시코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확인한 것은 한국인이 가진 특유의 역동성이 전 지구적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자부심이라는 감정적 단계를 지나, 이 현상을 어떻게 표준화된 시스템으로 정착시킬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지리적 경계가 사라진 무대 위에서 한류는 이제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룰을 재정의하는 '설계자'의 위치에 서 있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재화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