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설명하며 “중동 전쟁이 시작된 지 34일째지만, 이번 사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에너지 안보 위기”라고 밝혔다. 이어 “선제 대응이 늦어질수록 경제와 민생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며 국회의 신속한 추경 처리 협조를 요청했다.
'위기' 28차례 언급한 연설…李, 냉담했던 국힘에 악수 청했다

"전시 상황" 규정…'위기' 28차례 언급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위기’라는 표현을 28차례 언급하며 현재 상황을 ‘민생경제 전시 상황’으로 규정하고 “지금의 위기는 잠깐 내리는 소나기가 아니라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폭풍우”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추경안은 위기의 파도로부터 국민 삶을 지켜낼 방파제이자, 위기 이후 도약의 발판”이라며 “국민이 낸 세금을 필요한 곳에 적기에 쓰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고 밝혔다.

특히 “국채를 발행하지 않는 ‘빚 없는 추경’”이라고 강조했다. 재원은 증시·반도체 경기 호황 등에 따른 초과세수 25조2000억원과 기금 재원 1조원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고유가 대응에 10조…민생·산업 동시 지원

이번 추경의 핵심은 고유가 대응이다. 이 대통령은 “고유가 부담 완화 3대 패키지에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며 석유 최고가격제 운영과 유류비 변동 대응을 위해 5조원 규모 목적예비비를 편성했다고 밝혔다. 정유사 손실 보전과 나프타 수입가 급등에 따른 기업 부담 완화도 포함됐다.

소득 하위 70% 국민 3577만명에게 최대 60만원을 지급하는 ‘고유가 피해지원금’도 담겼다. 이 대통령은 “지역화폐로 지급해 골목상권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도 강화된다. 등유·LPG를 사용하는 20만 가구에는 5만원을 추가 지원하고, 대중교통비 부담 완화를 위해 K-패스 환급률도 확대한다.

민생안정 대책에는 2조8000억원이 편성됐다. ‘그냥드림센터’를 300곳으로 확대해 생필품을 무상 제공하고, 소상공인 정책자금과 재기 지원도 강화한다. 이 대통령은 “적어도 먹을 것이 없어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위기' 28차례 언급한 연설…李, 냉담했던 국힘에 악수 청했다
산업 대응에는 2조6000억원이 투입된다. 수출 정책금융 7조1000억원과 관광업계 저금리 자금을 추가 공급해 기업 자금 경색을 완화하고, 공급망 안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와 함께 석유·핵심 자원 확보에 7000억원을 투입해 에너지 안보 기반도 강화한다.

지방 재정 지원도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지방교부세와 교육재정교부금 등 9조5000억원을 보강해 지방정부의 위기 대응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 위기 장기화를 전제로 국민 참여도 요청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파괴된 에너지 인프라가 복구되고 정상적인 수급이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며 “긴 안목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중교통 이용과 생활 절전 등 에너지 절약에 동참해 달라”고 했다. 또 “담합과 매점·매석 등 부당 행위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연설 끝나자 국힘 향한 李

'위기' 28차례 언급한 연설…李, 냉담했던 국힘에 악수 청했다
국회는 오는 10일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추경 심사에 돌입한다. 각 상임위 심의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7~8일 종합정책질의를 진행하고, 9일부터 감액·증액 심사를 위한 소위원회를 가동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본회의장은 연설 내내 여야 간 온도차가 뚜렷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 입장과 연설 중간마다 박수로 호응했고, 일부는 휴대전화를 들어 연설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상당수가 착석한 채 침묵을 유지했다.

다만 연설 직후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 의원석으로 이동해 일일이 악수를 청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의원들도 일어나 손을 맞잡았고, 일부 의원들과는 짧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이어졌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