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야닉 네제 세갱 &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2026년 3월 10일 뉴욕 카네기홀 공연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 (Resurrection)>
1908년, 구스타프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2번 <부활> 미국 초연을 직접 지휘했던 카네기홀. 1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10일, 야닉 네제 세갱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뉴욕을 찾았다.
이번 무대는 카네기홀의 기획공연인 ‘미국 명문 오케스트라(Great American Orchestras)’ 시리즈의 일환이었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매 시즌 카네기홀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선보이며 뉴욕 관객들과 긴밀하게 호흡해 왔다. 특히 이날 공연은 음악감독 야닉 네제 세갱이 2026-27 시즌 카네기홀에서 빈 필하모닉 등과 함께 완성할 ‘말러 교향곡 전곡 사이클’의 방향을 드러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천둥 같은 현악 저음부의 도입부가 울리자 이날 연주의 성격이 곧바로 드러났다.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온 것은 유려한 소리의 질감이었다. 각 파트 명사수들의 개인기를 앞세워 입체적인 연주를 펼쳐가는 악단이 있는 반면, 필라델피아는 개인의 역량 대신 악단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음향을 상징하는 오케스트라로 평가받는다.
과거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가 반세기에 걸쳐 일구어낸 악단의 전통,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사운드’의 벨벳 톤이 이날 역시 재현됐다. 마치 라이브 공연이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마스터링 과정을 끝낸 완성품 CD를 듣는 듯, 튀는 섹션이나 도드라지는 소리는 없었다.
이날 연주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대의 시각적 연출이었다. 소프라노 잉 팡(Ying Fang)과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Joyce DiDonato)는 통상적인 위치가 아니라 하프가 위치한 무대 왼쪽 후방에 자리했다.
묵묵히 대기하던 디도나토가 긴 침묵을 깨고 4악장 '근원의 빛(Urlicht)'에서 노래를 시작했을 때, 그의 소리는 무대 중앙에서가 아닌 먼 곳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환청처럼 다가와 모두를 위로했다. 관객의 시선이 소리의 진원을 찾아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게 만든 이 연출은 텍스트의 영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특히 투명한 오보에 선율과 디도나토의 노래가 어우러지던 부분은 이날 연주의 백미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엽적 흠결보다, 오케스트라가 곡을 대하는 태도 그 자체가 오히려 흥미로웠다. 작품 곳곳에 걸쳐 터져 나와야 할 정점의 순간들은 약속된 경계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이 때문에 악단의 화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두고 호불호가 갈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내부의 질서를 따라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연주 내내 정숙함을 유지했던 객석은 마지막 음표가 끝나기 무섭게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공연이 끝나면 미련 없이 코트를 챙겨 떠나는 '쿨한' 뉴욕 관객들은 앙코르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리를 지키며 박수를 보냈다. 이 낯설고도 뜨거운 미련이야말로 폭발 대신 자기 통제를 택한 필라델피아의 ‘부활’이 남긴 여운의 깊이를 보여주는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