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누벨 아테네’의 낭만주의 인생 박물관

파리의 대부분 시립, 국립 박물관은 외국인 방문객이 65~80%로 훨씬 많지만, 반면 낭만주의 인생 박물관(Musée de la Vie romantique)은 66% 이상이 프랑스인이다. 파리 9구에 자리한 이 작은 박물관은 파리지앵들이 즐겨 찾는 프랑스 시골의 아담한 정원과 저택을 떠올리게 하는 숨은 명소이다.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아리 셰페르(Ary Scheffer)의 방 / 사진. © Jean-Baptiste Gurliat / Ville de Paris
조르주 상드(George Sand)와 아리 셰페르(Ary Scheffer)의 방 / 사진. © Jean-Baptiste Gurliat / Ville de Paris
17개월에 걸친 복원 및 보수 공사를 마친 낭만주의 인생 박물관은 지난 2월 14일, 새로운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이곳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아리 셰페르가 실제로 거주하며 작업하던 저택으로, 그의 삶과 예술이 고스란히 깃든 공간이다. 회화 작품은 물론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주고받은 서신, 셰페르의 수집품과 다양한 오브제를 접하다 보면 마치 프랑스 낭만주의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하다.

보존과 현대화의 만남

이번 복원은 단순한 보수 공사에 그치지 않고, 1830년대 저택이 지녔던 원래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되돌리는 것에 초점을 두어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9세기 건축 기술과 공법에 대한 철저한 관찰을 바탕으로 진행된 점이 아주 특별하다. 복원 작업은 전통 기술 구현에 전문성을 가진 장인들에게 맡겨졌다.

또한 70여 점에 이르는 전시 작품들도 복원 과정을 거쳐 본래의 색을 되찾았으며, 새로운 전시 공간에서 다시 한번 그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박물관 복원 공사 현장 / 사진. ©Pierre Antoine / MVR_Paris Musées
박물관 복원 공사 현장 / 사진. ©Pierre Antoine / MVR_Paris Musées
복원된 낭만주의 인생 박물관 / 사진. ©Jean-Baptiste Gurliat / Ville de Paris
복원된 낭만주의 인생 박물관 / 사진. ©Jean-Baptiste Gurliat / Ville de Paris
파리 9구에 위치한 예술인의 집결지 ‘누벨 아테네’

1820년대 파리에서는 주택 건설 열풍이 일었다. 파리 9구의 몽마르트르 언덕 초입의 과수원과 토지가 주택 단지로 탈바꿈했다. 당대 유명 건축가들은 이곳에 우아한 주택과 아파트, 예술가들의 작업실을 설계했다. 생 조르주(Saint-Georges) 광장을 중심으로 한 이 세련된 주택 단지를 ‘누벨 아테네(Nouvelle Athènes)’라고 불렀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예술, 철학적 이상을 상징으로 당시 활동하던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살롱과 작업실에서 비롯되어 붙은 이름이다.

이 지역은 19세기 파리의 예술적, 지적 창의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화가, 작가, 음악가들이 모여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고 토론을 나누던 예술 공동체 공간이다.
아리 요하네스 람메(Arie Johannes LAMME), <아리 셰페르의 작업실, 샤프탈 거리>, 1851, huile sur toile, 595 x 755 cm / 그림출처.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아리 요하네스 람메(Arie Johannes LAMME), <아리 셰페르의 작업실, 샤프탈 거리>, 1851, huile sur toile, 595 x 755 cm / 그림출처.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낭만주의 인생 박물관은 바로 이곳에 위치해 있다. 셰페르의 집과 작업실은 예술과 사교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매주 금요일에 당대 문화 예술계를 이끌었던 인물들인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프레데릭 쇼팽(Frédéric Chopin), 조르주 상드(George Sand),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t) 등이 모이는 파리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아리 셰페르(Ary SCHEFFER),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t) 초상화>, 1840, huile sur toile, 100 x 60 cm / 그림출처.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아리 셰페르(Ary SCHEFFER), <폴린 비아르도(Pauline Viardot) 초상화>, 1840, huile sur toile, 100 x 60 cm / 그림출처.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박물관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재설계된 동선

셰페르의 저택 본관은 무료 상설 전시장으로 운영되며 별관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유료 기획 전시장으로 구성되었다.

본관 상설 전시는 문학과 예술에서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인 조르주 상드와 아리 셰페르에게 집중되어 있다.

역사화와 초상화로 잘 알려진 화가 셰페르는 1795년 네덜란드 태생으로, 파리에서 거주하며 낭만주의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사실주의와 이상주의를 조화롭게 결합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복원된 그의 작업실과 전시된 당대 지식인들의 초상화는 그가 19세기 파리의 예술, 문학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으며 당시 문화적 활력에 크게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아리 셰페르(Ary Scheffer)의 작품들. [우측] 서재에 있는 파우스트, 1848경 / 사진. ©Pierre Antoine / MVR_Paris_Musées
아리 셰페르(Ary Scheffer)의 작품들. [우측] 서재에 있는 파우스트, 1848경 / 사진. ©Pierre Antoine / MVR_Paris_Musées
조르주 상드는 수많은 문학 작품을 남긴 여성 작가로, 때로는 남장을 할 만큼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전시장에 소개된 그녀의 편지와 원고, 초상화에서는 그녀의 열정적인 성격과 쇼팽을 비롯한 여러 예술가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오귀스트 샤르팡티에(Auguste CHARPENTIER), <조르주 상드(George Sand) 초상화> / 사진. ©Pierre Antoine / MVR_Paris_Musées
오귀스트 샤르팡티에(Auguste CHARPENTIER), <조르주 상드(George Sand) 초상화> / 사진. ©Pierre Antoine / MVR_Paris_Musées
또한 낭만주의를 구성하는 네 가지 핵심 키워드인, 자연과 풍경, 감성, 문학, 환상을 중심으로 전시가 전개된다. 이 주제들은 회화와 문학, 음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낭만주의 특유의 예술 간의 형제애를 보여준다.

산업혁명과 계몽주의 시대 속에서, 자연은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피난처를 제공했다. 낭만주의 화가들은 풍경과 폐허, 숲, 강을 통해 꿈과 현실, 사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창조했다. 또한 사랑, 신앙, 희생 등 인간 경험의 내밀한 감정이 중심이 되었고 회화와 음악은 인간의 숭고함과 공포, 영혼과 희망의 감정을 표현했다.

단테, 셰익스피어, 밀턴 등 고전 문학과 역사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극적인 장면과 강렬한 감정을 작품에 담았다. 또한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충격 속에서, 예술가들은 유령과 사후 세계, 비현실적 요소를 통해 인간 감정과 상상을 탐구하기도 했다.
[좌] Pierre Delorme,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1820년경, huile sur toile, 25 x 33 cm / 그림.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우] Pierre-Jérôme Lordon, <아탈라의 성찬>, 1808년, huile sur toile, 67 x 87 cm / 그림.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좌] Pierre Delorme,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1820년경, huile sur toile, 25 x 33 cm / 그림.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우] Pierre-Jérôme Lordon, <아탈라의 성찬>, 1808년, huile sur toile, 67 x 87 cm / 그림. © Paris Musées - Musée de la Vie romantique, Paris
오픈 기념 첫 기획 전시

박물관 재개관과 함께 열린 기획전 “폴 위에의 시대, 하늘을 마주하며”(Face au ciel, Paul Huet en son temps)에서는 프랑스 낭만주의 풍경화의 선구자 폴 위에(Paul Huet)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셰페르와 교류하며, 영국의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과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에게서 영감을 받아 자연의 힘과 감정을 화폭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폴 위에의 하늘과 풍경화를 동시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과 함께 선보이며, 그가 낭만주의 풍경화에서 차지하는 독보적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Paul Huet, <기병 혹은 근위대의 귀환>, 1821년 / 그림. ©Thierry Ollivier / RMN-Grand Palais (Musée départemental de l’Oise)
Paul Huet, <기병 혹은 근위대의 귀환>, 1821년 / 그림. ©Thierry Ollivier / RMN-Grand Palais (Musée départemental de l’Oise)
전시를 둘러보고 정원 한쪽에 자리한 유리온실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세계를 상상해 본다.
박물관 정원에 위치한 카페 / 사진. © Nicolas Mathéus / MVR_Paris_Musées
박물관 정원에 위치한 카페 / 사진. © Nicolas Mathéus / MVR_Paris_Musées
파리=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