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은 트럼펫 솔로가 연주하는 셋잇단음표의 인상적인 팡파르로 시작한다. 이 팡파르는 전체 관현악의 굉음과도 같은 합주와 현의 장송행진곡으로 이어지면서 교향곡 역사상 가장 강렬한 도입부 중 하나를 이끌어낸다.
말러 교향곡 5번 도입부 트럼펫 팡파르 / 사진=필자 제공
말러 교향곡 5번 도입부 트럼펫 팡파르 / 사진=필자 제공
[말러 교향곡 5번 1악장 시작부]

그렇지만 이 팡파르는 ‘가짜’ 팡파르다. 진정한, 또는 일반적인 팡파르는 장3화음(음계상 도-미-솔)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 이 교향곡 시작부의 팡파르는 단3화음(C#단조의 라-도-미)의 진행을 갖기 때문이다. 왜 통상의 팡파르와 다를까? 말러가 의도한 것은 무엇일까?

19세기 중반에 밸브 장치가 보급되기 전까지 트럼펫은 길이가 고정된 금속 관이었고 입술과 호흡의 조절을 통해서만 여러 음을 낼 수 있었다. 기본음이 C음인 관을 가정했을 때 낼 수 있는 소리는 그림과 같다.
금관악기의 배음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금관악기의 배음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8세기 말의 내추럴 트럼펫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18세기 말의 내추럴 트럼펫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왜 이 소리들만 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각 음이 기본음의 자연배음(倍音)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싫어하는 분은 다음 문단으로 넘어가시기를.

관악기의 기본음이 1초에 100번 진동하는 100Hz라고 가정하면 이어지는 음들은 200, 300, 400…Hz가 된다. 순정율을 기준으로 한 자연음계에서 ‘미’는 그 아래의 ‘도’보다 5/4만큼, ‘솔’은 ‘미’보다 6/5만큼 높으며, 따라서 ‘솔’은 그 아래의 ‘도’보다 6/4 즉 3/2만큼 높다. 이 모든 비율이 맞아떨어져 장3화음을 만든다. 참고도를 보면 여섯 번째 음까지가 ‘도-도-솔-도-미-솔’로 이어진다.

단3화음의 경우는 다르다. 단음계의 주음(主音)은 ‘도’가 아니라 ‘라’다. 단3화음의 두 번째 음인 ‘도’는 그 아래의 ‘라’보다 6/5만큼 높으며 ‘미’는 ‘도’보다 5/4만큼 높다. 그러므로 관악기의 자연배음으로는 앞쪽의 편한 음역대에서 단3화음을 만들어낼 수 없다. 19세기 중반 이전의 트럼펫으로는 단3화음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극도로 높은 음역으로 올라가야만 가능했다. 이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트럼펫으로 대표되는 ‘팡파르’는 필연적으로 장3화음을 연주할 수밖에 없었다.

관악기 중에서도 호른이 사냥, 트롬본이 신의 권위를 상징했다면 트럼펫은 군대와 전쟁, 승리를 상징했다. 오늘날 우리가 트럼펫의 팡파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승전이나 왕권, 영광 같은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정서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학은 잠시 잊고 말러가 이 곡을 팡파르로 시작한 이유를 짐작해보자. 말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큰 병영이 있는 이흘라바(이글라우)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 말러는 아침 기상나팔 소리, 행진의 나팔, 취침 신호 등 군악대의 소리를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듣고 자랐다. 그가 1892년 민요집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나오는 시에 곡을 붙인 가곡 ‘보초병의 야상곡’에는 전투가 임박한 위기 속에 소녀와의 환상을 좇는 병사가 그려진다. 이 곡에도 팡파르가 등장한다. 이 곡에서는 금관의 팡파르가 장3화음을 따르지만, 솔로 성악가가 노래하는 주선율은 단음계로 처리된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악대 / 사진출처. TempoSenzaTempo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악대 / 사진출처. TempoSenzaTempo
팡파르는 말러가 교향곡 5번보다 2년 앞서 작곡한 교향곡 4번에도 등장한다. 1악장의 전개부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음량이 잦아들면서 트럼펫이 조용한 팡파르를 연주한다. 이 팡파르는 단3화음으로 진행되며 교향곡 5번 시작 부분의 팡파르와 리듬 및 선율 윤곽이 거의 일치한다. 말러는 이 부분을 ‘작은 점호’라고 불렀다. 음악학자들은 이 단3화음의 팡파르가 천국 같은 동심의 세계에 불현듯 끼어든 ‘죽음의 예감’ 또는 ‘적의 출현’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이 작품들을 살펴보면 팡파르가 ‘영광’이나 ‘승리’ 같은 긍정적 정서가 아니라 ‘병사의 불운’이나 ‘죽음의 예감’ 같은 부정적 정서와 관련됨을 알 수 있다.

1901년 2월, 빈 궁정 오페라 감독으로 재직하던 말러는 밤중에 치질로 인한 심각한 출혈을 겪었다. 많은 피가 흘러나와 응급수술을 받았으며 의사들은 그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고 말했다. 말러는 이후 이 경험을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이었다고 회상했다. 5번 교향곡은 이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1901년 여름에 작곡됐다.

출혈에서 회복되는 동안 그는 병영을 소재로 한 곡을 또 하나 작곡했다. 역시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 곡을 붙인 ‘어린 북치기’이다. 이 곡에는 전장에서 탈출하려다가 붙잡혀 처형장으로 향하는 불쌍한 북치기 소년병의 행진이 묘사된다. 장송행진곡 리듬, 어두운 단조 선율, 무겁게 질질 끄는 템포가 비슷한 시기 작곡된 교향곡 5번 1악장과 공통된다.

그해 1월에 출혈로 죽음의 어두운 얼굴을 직면하고 온 말러는 당시의 암울한 기분을 ‘어린 북치기’와 교향곡 5번의 시작에 묘사하지 않았을까.

관악기로 단3화음을 연주할 수 있는지와 별도로, 사람들은 장음계(장조) 음악을 들으면 대체로 긍정적인 기분을, 단음계(단조) 음악을 들으면 슬프거나 부정적인 기분을 느낀다. 물론 장조로 된 슬픈 음악도, 단조로 된 명랑한 음악도 존재하지만, 장음계/단음계와 긍정적/부정적 정서의 연관성은 특정 장조 선율을 단조로 바꿔 들어보거나 단조 선율을 장조로 바꿔 들어볼 때 한층 명확해진다. 장단음계의 이런 성격이 인간의 의식에 내재한 것인지, 경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19세기 중반에 트럼펫에 도입된 밸브 시스템은 이 악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밸브가 공기의 흐름을 우회시켜 관의 길이를 순간적으로 늘림으로써 반음계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음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말러 교향곡 5번 시작부에서 트럼펫 솔로가 내는 C샤프단조의 팡파르(C#-E-G#-C#)도, 이 팡파르가 나타내는 음울한 소리의 풍경도 밸브 트럼펫이라는 새로운 악기의 탄생으로 가능했다.

나는 만약 말러의 일생을 영화로 표현한다면 이 영화에 교향곡 5번의 시작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상상을 오래전부터 해보았다.

말러는 1902년 3월 알마 마리아 쉰틀러와 결혼식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교향곡 5번의 마무리에 골몰하던 때였다. 말러와 알마가 멘델스존의 ‘축혼 행진곡’이 울리는 가운데 웃는 얼굴로 식장을 걸어 나오고, 순간 장면은 바뀌어 말러가 기차 안에서 고열로 신음하는 가운데 축혼 행진곡은 교향곡 5번의 우울한 시작부 팡파르로 바뀐다. (실제 말러는 결혼 직후 알마와 함께 모스크바 연주 여행을 떠났으며 기차에서 고열로 신음했다)
1909년의 알마(왼쪽)와 구스타프 말러 부부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1909년의 알마(왼쪽)와 구스타프 말러 부부 / 사진출처. 위키미디어
물론 두 곡은 말러의 교향곡 5번이 단3화음의 팡파레, 멘델스존의 축혼 행진곡이 장3화음의 팡파레라는 점 외에도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축혼 행진곡은 첫 음이 C음으로 말러 교향곡 5번 시작부의 C#음보다 반음 낮다. 축혼 행진곡은 여러 대의 트럼펫이 동시에 연주하지만, 말러 쪽은 솔로 트럼펫이 연주한다. 그렇지만 이런 차이는 약간의 트릭으로 극복할 수 있다.

상상일 뿐이다. 이런 영화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