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베네수엘라 공급 증가, 몇 년 걸린다
주말 사이 미국은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고 미국으로 압송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석유회사들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인프라를 재건할 것이라고 했는데요. "심각하게 망가진 기반 시설"을 복구하고 "도둑맞은" 석유 채굴권을 되찾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땅속에서 엄청난 부를 끌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대부분 초중질유(extra-heavy crude)로, 점도가 높고 황과 금속 함량이 많아 경질유 대비 가치가 낮습니다. 정유 비용이 더 많이 드는데요. 현재 국제 유가가 낮고 공급 과잉 상황이어서 석유회사들이 많은 돈을 투자할지 의문입니다.
셋째, 막대한 투자를 하려면 정치 시스템을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베네수엘라를 누가 통치하는지 혼란스럽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운영할 것이라고 했지만, 마두로 정부의 부통령인 델시 로드리게스가 임시 대통령으로서 취임했습니다. 다만 지난 3일 마두로를 '납치'했다며 미국을 성토했던 로드리게즈는 4일 미국과의 협조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UBS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요한 지정학적 행보이지만, 전반적인 투자심리에 지속적이고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작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금수조치가 해제되고 투자가 재개되면 원유 생산이 늘어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수년에 걸친 매우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부실 경영과 투자 부족으로 붕괴한 인프라를 고려하면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데, 정치·안보·법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또 현재의 낮은 유가 수준에서 베네수엘라에 투자하려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는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에버코어ISI는 "트럼프 행정부의 마두로 축출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지만, 단기적으로 시장을 크게 움직일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라고 했습니다. 현재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 규모가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매장량을 갖고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려면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에버코어는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원유의 잠재적 가치를 강조하며 이번 공격을 ‘아메리카 퍼스트’ 이슈로 포장하고 있지만 이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는 MAGA 지지층에 대한 변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도이치뱅크의 짐 리드 거시경제 전략가는 지정학적 요인이 시장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려면 경제 성장이나 인플레이션 같은 변수에 타격이 가해져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1970년대 오일쇼크, 1990년대 걸프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리드는 "이런 사건은 유가 급등이라는 충격을 일으켜 인플레이션을 지속해서 상승시켰을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에도 의미 있는 부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큰 파급 효과가 있었다. 오늘은 아직 그런 영향을 보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생산량은 세계의 1%에 미치지 못합니다.
2. 메모리 슈퍼사이클→장비주 폭등
오전 9시 30분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0.3~0.9% 상승세로 출발했습니다. 시장 상승을 이끈 요인은 베네수엘라가 아니었습니다. 반도체 관련 소식이었습니다.
대만에서는 폭스콘이 작년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시장 예상 13%를 크게 웃도는 것입니다. 엔비디아 GPU를 탑재한 AI 서버 판매가 늘어난 덕분입니다. DA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폭스콘의 실적 발표는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거대 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확장함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반도체 장비 회사와 메모리 업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라고 밝혔습니다.
월가에서도 반도체 추천 리포트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캔터피츠제럴드는 "AI 컴퓨팅 수요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고 D램, 낸드 및 하드디스크(HDD) 전반에 걸쳐 공급이 부족하므로 2026년 반도체 주식이 우수한 성과를 낼 것"이라며 엔비디아,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 ASML, KLA,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터리얼스 등을 추천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엔비디아, 브로드컴, 램리서치, KLA, 아날로그디바이시스, 케이던스디자인 등 6개 주식이 올해 1조 달러 규모의 반도체 주가 상승을 이끌 것으로 지목했습니다.
번스타인은 AI 기반 메모리 칩 슈퍼사이클을 이유로 ASML에 대한 투자 의견을 '시장수익률 상회'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TSMC에 대해 목표주가 466달러로 제시하면서 "우리는 AI를 TSMC의 다년간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으며, 토큰 소비의 기하급수적 증가로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2027년까지 생산 능력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메릴은 이에 대해 "AI 버블을 두려워하지 말라. 버블에 대한 끊임없는 얘기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대체로 비이성적 과열 영역을 피했다.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 (Mag 7)종목 중 지난해 S&P500 지수 수익률을 상회한 종목은 단 3개(구글, 엔비디아, 테슬라)에 그쳤다. AI 주식의 급등은 과거 투기 상황을 연상시키지만, 선도적인 AI 기업의 가치는 실질적 매출 성장, 강력한 마진,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수익화 경로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는 버블 가능성을 계속 주시하고 있지만, 현재 주가나 기업 가치가 버블 수준의 극단적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는 결론을 갖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지수에 포함된 주식이 오늘 많이 올랐는데요. 금융주, 특히 대형 은행주들은 줄줄이 52주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장 상승세를 앞질렀습니다.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은행 12곳 이상이 52주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지난 연말과 달리 매수세가 비교적 강하게 유입됐습니다.
CFRA의 샘 스토벌 전략가는 "시장은 기본적으로 2025년 말에 절세 매각(tax loss selling)과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한 다음 2026년 초 주식을 다시 매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여전히 Fed의 향후 행보와 기업 이익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위험 선호 심리가 지속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알파타겟의 프루 사세나 설립자는 "AI 관련주를 비롯한 고속 성장주들은 연말에 업종 순환매로 인해 큰 폭의 매도세를 겪었다. 이 주식들은 현재 과매도 상태이며 큰 폭의 회복을 앞두고 있다. 1월 2일부터 시작된 상승세는 오늘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트레이딩데스크는 "주말의 지정학적 사건은 세계 정치에 미치는 영향 측면에서 우려스럽지만, 증시에는 미미한 영향만 미쳤다. 증시는 이번 주 CES에 대한 낙관론, 금요일에 발표될 비농업 고용 데이터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탄탄한 펀더멘털, 성장을 지원하는 정부, 지속적 AI 호재, 그리고 1월까지 이어질 강력한 계절적 요인들을 고려할 때 건설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3. 금리 예상보다 더 내린다?
뉴욕 채권 시장에서 금리는 내림세를 보였습니다. 오후 4시 8분께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3.8bp 내린 4.151%, 2년물은 2.6bp 떨어진 3.451%에 거래됐습니다.
미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11월 48.2→12월 47.9로 하락했습니다. 2025년 최저치이며, 10개월 연속 위축 국면(50 미만)을 나타냈습니다. 월가는 48.3을 예상했지요. 세부 지수를 보면 신규 주문은 11월 47.4→12월 47.7로 높아졌지만 4개월째 위축세를 보였고요. 생산은 51.4→51로 둔화했습니다. 고용은 44.0→44.9로 올랐고요. 지불가격은 58.5로 유지됐습니다. ISM의 수전 스펜스 조사위원장은 "관세 불확실성이 활동을 위축시키면서 여전히 수요가 부진한 것으로 보인다. 6대 제조업 중 12월에 성장세를 보인 업종은 컴퓨터와 전자제품뿐이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애나 폴슨 필라델피아 총재는 "경제 전망이 양호하다면 2026년 하반기 소폭의 추가 금리 인하가 적절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현재 통화 정책이 '다소 긴축적'이라고 분석하며, 이는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동 시장의 위험은 여전히 높지만 실업 수당 청구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며, 노동 시장은 '분명히 무너지지 않고 유연해지고 있다'라고 평가했고요.
반면 카시카리 총재는 "지난 몇 년 동안 경제가 둔화할 것이라고 계속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회복력이 강하다는 게 입증됐다. 그것은 통화 정책이 경제에 그다지 큰 하방 압력을 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는 거의 중립적 상태에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4. 에너지, 금융 2% 이상 폭등
주가 상승세는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S&P500 지수는 0.64%, 나스닥은 0.69% 올랐고요. 다우는 1.23%, 러셀2000 지수는 1.58%나 뛰었습니다. 다우는 장중 4만9000포인트를 넘으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에너지 주에서는 셰브런이 5.1%, 엑손모일 2.21% 올랐고요. 슐럼버제이가 8.96%, 할리버튼 7.84% 상승했습니다. 금융주에서는 골드만삭스가 3.73%, 시티 3.88%, JP모건 2.63% 올랐습니다.
반면, 유틸리티가 -1.16%, 필수소비재가 -0.33% 내리는 등 4개 업종은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금 가격은 거의 3% 상승하면서 온스당 4400달러를 넘었고, 은 가격도 약 5% 올랐습니다. 구리는 5%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