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만난 <포기와 베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The Metropolitan Opera·이하 메트)의 샹들리에가 천장으로 솟아오르며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20여 년 전, 컬럼비아대학교 객원연구원으로 뉴욕에 머물던 시기에는 시즌 작품 20여 편을 섭렵하며 내 집처럼 편안하게 찾던 메트였지만, 아쉽게도 그 시기에는 <포기와 베스>를 볼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겨울, 뉴욕에 잠시 머무는 동안 <포기와 베스>를 만난 것은 꽤 괜찮은 행운이었다.

유럽의 귀족적 서사와 고전적 화성으로 가득 찬 이 오페라의 성전에서 가장 낮고 소외된 이들의 삶이 재즈의 화성으로 울려 퍼진다는 사실은 그 이질감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메트의 무대에 오른 <포기와 베스>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낯선 구경’에서 ‘미학적 성찰’로 바꾸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 오른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 오른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1935년 거슈윈이 이 작품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이를 오페라라 불러야 할지 뮤지컬이라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메트에서 만난 <포기와 베스>는 경계선에 위치한 그 정체성이야말로 바로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거슈윈은 <포기와 베스>를 세 시간 넘는 정통 오페라로 작곡했지만, 이 작품이 처음부터 메트의 레퍼토리로 선택된 것은 아니었다. 초연은 1935년이었는데, 탄생 시점에서는 오히려 브로드웨이와 인연이 깊었다. 메트가 아닌 브로드웨이의 알빈 극장(Alvin Theatre)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가창력을 가진 흑인 성악가들이 출연했으나, 공연장이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브로드웨이 극장이었다는 점에서 태생부터 장르의 혼종성을 띠고 있었다.

현대적 의미의 뮤지컬 버전은 두 번의 계기를 통해 만들어졌다. 가장 유명한 뮤지컬 각색은 2011/12 시즌에 이루어진, 다이앤 파울러스(Diane Paulus) 연출의 리바이벌 공연이었다. 이 버전은 오페라의 낭독형 대사인 레치타티보를 뮤지컬에 어울리게 바꾸고 연주 시간을 대폭 줄여 <포기와 베스>를 완벽한 뮤지컬로 재탄생시켰다. 당시 토니상을 휩쓸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나, ‘오페라의 예술성을 훼손했다’는 클래식계의 비판과 ‘대중성을 확보했다’는 뮤지컬계의 찬사를 동시에 받아야 했다.

50년 만의 입성, 5년 만의 퇴장

<포기와 베스>가 메트에 입성하여 무대에 처음 오른 것은 이 작품이 탄생한 지 50년이 되던 1985년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공연은 보수적인 메트가 드디어 가장 미국적인 오페라를 그제야 처음으로 정식 레퍼토리로 선정했다는 점에서 큰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1990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메트 무대에서 사라졌다. 여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었다.

우선 오페라인가, 뮤지컬인가에 대한 장르적 정체성 논란이 여전했던 점이다. 당시 메트는 이 작품을 정통 오페라로 대우하여 삭제된 부분이 없는 완전판으로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당시 평단 일부에는 여전히 ‘브로드웨이 뮤지컬 같은 작품이 오페라의 성전인 메트에 어울리는가’ 라는 식의 보수적인 시각이 존재했다. 따라서 초반의 화제성이 잦아든 이후 지속적으로 베르디나 푸치니 작품 같은 유럽 정통 레퍼토리들과 경쟁해가며 보수적인 시즌티켓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에는 힘에 부치는 측면이 있었다.
1985년 메트 오페라에서 초연된 ‘포기와 베스’에서 포기 역을 맡은 사이먼 에스테스와 베스 역의 그레이스 범브리.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1985년 메트 오페라에서 초연된 ‘포기와 베스’에서 포기 역을 맡은 사이먼 에스테스와 베스 역의 그레이스 범브리.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이와 더불어 거슈윈의 유언에 따라 이 작품은 전원 흑인 캐스팅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80년대 후반 이후 이른바 블랙 파워의 부상에 따라 미국 내 흑인 예술가들의 자의식이 강해지면서 일부 흑인 성악가들과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배역인 마약중독자, 살인자, 도박꾼 같은 스테레오타입 역할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또한 작품에 묘사된 흑인 커뮤니티의 모습이 인종차별적 편견을 고착화한다는 논란도 일어났다. 당시 뉴욕 타임스의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메트의 <포기와 베스>는 예술적 승리였으나 동시에 흑인 커뮤니티에는 불편한 거울이기도 했다. 성악가 그레이스 범브리(Grace Bumbry)는 한 인터뷰에서 흑인 예술가들이 이 '빈민가 서사'에만 갇히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메트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계속 레퍼토리에 올리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이 밖에 좀 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는데, 바로 막대한 제작비와 코러스 운영의 어려움이었다. <포기와 베스>는 주역뿐만 아니라 대규모 코러스(합창단)까지 모두 흑인이어야 했는데, 메트의 기존 전속 합창단은 대부분 백인이었기에, 이 작품을 올릴 때마다 수십 명의 흑인 합창단원을 별도로 오디션하고 고용하여 훈련시켜야 했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일반적인 레퍼토리를 올릴 때보다 제작비용과 행정부담이 훨씬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른 실용적 판단도 이 작품이 지속적으로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초연 이후 메트의 무대에서 사라진 30년의 공백은 단순한 휴지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 시기는 백인이 쓴 흑인의 서사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하는 불편함을 넘어서 진정한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거쳐야 했던 숙성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흑인 예술가들이 정형화된 스테레오타입의 수용자를 넘어서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기 위한 투쟁의 시간이기도 했다.
거슈윈 '포기와 베스' 앨범. 사이먼 래틀이 지휘했다. / 사진 출처. 아마존
거슈윈 '포기와 베스' 앨범. 사이먼 래틀이 지휘했다. / 사진 출처. 아마존
클래식의 문법으로 쓴 재즈의 서사시

음악적으로 이 작품은 전통 오페라와 현대 뮤지컬 사이의 거대한 가교라 할 수 있다. 레치타티보 대신 흐르는 웅장한 코러스는 <레미제라블> 같은 대형 뮤지컬의 원형을 보여주며, 주옥같은 아리아들은 훗날 브로드웨이의 황금기를 예고한다. 거슈윈은 <포기와 베스>를 통해 미국적인 오페라, 좀 더 폭넓게는 미국적인 클래식의 정수를 완성했다. 유럽의 형식을 빌려와 미국의 영혼을 담아냄으로써,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어떻게 로컬리티와 동시대성을 함께 획득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는 푸치니의 베리스모(사실주의)적 감수성과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유도동기)를 차용하면서도, 그 안에 블루 노트와 스윙 리듬을 완벽하게 녹여냈다. 특히 재즈라는 자유로운 영혼에 바그너라는 엄격한 뼈대를 녹여 넣은 것은 특기할 만했다. 인물마다 따라붙는 '라이트모티프'는 작품의 무대가 되는 캣피시로 마을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이 작품이 단순한 흑인 영가 모음곡이 아니라 치밀하게 설계된 현대 오페라임을 증명한다. 비열한 캐릭터 스포팅라이프를 상징하는 선율이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피어오를 때, 우리는 100년 전 천재가 설계한 음악적 복선에 여지없이 걸려들고 마는 것이다. 거슈윈은 이 작품을 통해서 서구의 클래식 전통에 블루스 기반의 흑인적 감성을 섞은 음악적 하이브리드를 이질감 없이 빛나게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포기와 베스>는 'Summertime', 'I Loves You, Porgy', 'My Man’s Gone Now', 'It Ain't Necessarily So', 'I Got Plenty O'Nuttin'' 등 재즈사에 빛나는 스탠다드 곡들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거슈윈의 악보는 오페라하우스를 넘어 재즈의 자유로운 들판에서 더 찬란하게 꽃피웠다. 동명의 음반을 낸 재즈의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는 뮤트 트럼펫의 회색빛 음색에 포기의 삶을 담아냈고,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은 이 작품에 담긴 흑인 영가의 소울을 재즈로 승화시키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함께 획득했다. 메트의 거대한 오케스트라 사운드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문득 오스카 피터슨의 절제된 피아노 선율이나 조 헨더슨의 거침없는 색소폰 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은 이 작품이 가진 장르를 넘나드는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포기와 베스' 앨범. / 사진 출처. 아마존
마일스 데이비스의 '포기와 베스' 앨범. / 사진 출처. 아마존
개츠비의 파티와 포기의 목발: 미국적 정체성의 두 얼굴

<포기와 베스>는 비단 음악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그 내용 면에서도 가장 미국적인 작품의 하나로 손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20세기 미국 문학의 위대한 성취 중 하나인 <위대한 개츠비>가 상류층의 허무와 이중성 속에서 무너져가는 드림을 상징한다면, <포기와 베스>는 그 정반대의 지점에서 미국적 정체성을 완성한다. 개츠비가 가질 수 없는 불빛을 향해 손을 뻗다 파멸한다면, 포기는 신체적 장애와 빈곤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베스를 찾아 기꺼이 뉴욕으로 향한다. 이 두 작품은 여러 측면에서 미국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보여준다. 하나는 도달할 수 없는 화려함에 대한 절망을, 하나는 바닥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명력을 다룬다. 메트의 거대한 무대에서 포기가 자신의 목발을 짚으며 베스를 찾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세속적으로 성공했던 개츠비의 화려한 파티와는 또 다른 방향에서 미국사회를 구성하고 이끌어온 다양한 군상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비극적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희망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새롭게 무대에 오른 <포기와 베스>의 음악적 성취

2019년에 제임스 로빈슨(James Robinson) 연출로 무대에 오른 새 프로덕션은 메트가 런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와 공동으로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회전하는 거대한 2층 구조의 세트를 활용해 작품의 무대가 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바닷가 마을 캣피시로(Catfish Raw)를 입체적으로 보여준 점이 화제에 올랐다. 아울러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로 각색된 버전이 아니라, 거슈윈이 원래 의도했던 3시간이 넘는 대작 오페라 형태를 거의 원전 그대로 복원한 점도 특기할 만했다. 30년의 긴 침묵을 깨고 2019년 다시 태어난 제임스 로빈슨의 이 프로덕션은,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거슈윈이 악보에 숨겨둔 모든 음표를 쏟아낸다.

사실 브로드웨이가 이 작품을 탐내어 대사를 넣고 시간을 줄이며 '뮤지컬'이라는 옷으로 갈아입혔을 때, 대중은 환호했지만 거슈윈의 음악적 뼈대는 다소 흔들렸다. 30년 만에 다시 메트 무대에 오른 이번 프로덕션이 소중한 이유는, 브로드웨이의 경쾌함 대신 오페라 하우스의 장엄한 무게감을 고스란히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1막 시작과 함께 흘러나온 클라라 역 부부 음포푸(Vuvu Mpofu)가 부르는 ‘서머타임(Summertime)’은 이 오페라의 정체성을 절묘하게 드러냈다. 클래식 소프라노의 정교한 발성 속에 스며든 재즈의 나른한 선율은, 비극을 예견하면서도 평화로운 모순적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가창의 질감 면에서 보면 뮤지컬 버전은 마이크를 사용하고 연기 위주의 창법을 구사하지만, 메트 공연은 여느 오페라처럼 마이크 없이 거대한 홀을 뚫고 나오는 성악적 에너지가 핵심이었다. 특히 베스 역의 브리트니 르네(Brittany Renee)가 발군이었다. 평단에서도 이 성악가를 이번 시즌의 가장 빛나는 지점으로 꼽고 있다. 뮤지컬 발성의 감성적 섬세함보다는 오페라 소프라노의 압도적인 성량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유감없이 선사해주었다. 오케스트레이션 측면에서도 뮤지컬 버전은 재즈 빅밴드 성격이 강하지만, 메트는 100인조에 가까운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거슈윈의 복잡한 화성을 완벽하게 구현해주었다.
2019년 제임스 로빈슨이 연출한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2019년 제임스 로빈슨이 연출한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포기와 베스>가 메트에 선사한 또 다른 선물

결과적으로 2019/20 시즌의 오프닝 작품으로 다시 돌아온 <포기와 베스>는 평단과 관객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메트 역사상 최다 티켓 판매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초연을 넘어서는 뜨거운 환호를 받은 배경에는 이제야 비로소 오페라계가 인종 이슈의 선입관을 버리고 인간의 보편적 고통과 신산스러운 삶 그 자체를 바라볼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수치가 있다. 2014년 무렵 메트가 대대적으로 실시한 관객 조사 결과 관객의 평균 연령이 2000년대 초에 50대 후반이던 것이 10여 년 후인 2014년에는 60대 중반으로 급격히 상승했다는 지표가 나와 경영진에 비상이 걸렸던 적이 있었다. 이 수치가 시사하는 바는 명백했다. 오페라 관객은 늙어가고 있고 신규 관객은 오지 않는다는 시그널이었다. <포기와 베스>는 이처럼 노쇠해가는 흐름에 긍정적 균열을 만들어낸 주인공이기도 했다.

부임 이후 메트의 혁신을 주도했던 피터 겔브 총감독은 <포기와 베스>를 비롯하여 그래미상을 수상한 걸출한 재즈 뮤지션 테렌스 블랜차드(Terence Blanchard)가 작곡한 현대 오페라 <파이어 셧 업 인 마이 본즈(Fire Shut Up in My Bones)> 같은 혁신적인 작품이 신규 관객 비율을 20% 이상 끌어올렸다며 새로운 오페라 작품 제작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포기와 베스>는 1935년 작이지만, 메트의 전략상으로는 '현대적이고 접근성 높은 미국적 서사'로 분류되며, 이러한 신규 관객 유입의 핵심 레퍼토리로 활용된 결과 고무적인 성과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에 따라 피터 겔브가 부임하던 2006년 무렵 60대 중반이었던 개별 티켓 구매자(Single Ticket Buyers)의 평균 연령이 이제는 44세로 낮아졌다. 충성도가 강한 전통적인 시즌 티켓 구매자(Subscribers)의 평균 연령은 여전히 70세에 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신규 관객이 개별 티켓을 구매하며 유입하는 새로운 흐름은 메트의 미래가 긍정적으로 펼쳐질 것을 예견케 한다.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무대 위의 ‘그들’과 객석의 ‘우리’가 만드는 아이러니와 공감

공연장에서 또 한 가지 눈길을 끈 부분은 무대와 객석의 선명한 대비였다. 무대 위에서는 거슈윈의 유언대로 흑인 성악가들이 극을 이끌어가며 사우스캐롤라이나 가난한 어촌 캣피시로 마을의 처절한 삶을 노래하지만, 객석을 메운 이들은 역설적으로 대부분 백인 관객이었다. 가장 화려하고 부유한 엔터테인먼트의 상징인 메트에서 열악한 삶의 고통과 비극적 상황들로 구성된 작품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는 행위. 이것은 예술적 전유일까? 아니면 보편적 공감일까?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포기와 베스>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인종적 이슈를 반영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극 중 인물들이 겪는 유혹(스포팅라이프의 마약), 집착(크라운의 폭력), 소외(포기의 장애), 그리고 구원(베스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인종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 본질을 건드린다. 관객들은 무대 위 군상들이 저마다의 선택으로 빚어내는 다양한 삶의 편린을 보며 각자의 일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캣피시로’ 마을 사람들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포기와 베스'의 한 장면. / 사진. © The Metropolitan Opera
에필로그: 우리가 여전히 <포기와 베스>를 듣는 이유

오랜 세월을 기다려 드디어 마주한 <포기와 베스>는 뜨거운 열정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90년 전 거슈윈이 악보에 새겨 넣은 블루스 노트들은, 현재의 인종 갈등과 마약 중독, 계층 양극화라는 문제들과 맞물려 여전히 생생한 유효성을 발휘하고 있었다. 공연장을 나서니 링컨 센터 광장의 차가운 뉴욕 공기를 가르며 외투 깃을 올리고 지하철로 향하는 청년의 관객들과 화려한 모피를 두르고 리무진에 오르는 노년의 관객들이 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거슈윈의 음악은 비극 속에서도 춤추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전해준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I Got Plenty O'Nuttin'), 우리는 사랑하고 꿈꿀 권리가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낡은 어촌 마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오늘도 메트의 붉은 카펫 위로 발을 들이는 이유일 것이다.

['포기와 베스' 무대 보기]

용호성 문화예술평론가·前 문체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