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이상춘의 목소리로 녹음한 가곡 <동심초>,
그리고 가수 권혜경이 노래한 영화 주제가 <동심초>
권혜경의 '세미클래식' 창법은 <동심초>가
가요와 가곡 구분을 뛰어넘는 히트작이 되는 데에 기여
가곡과 가요. 뒷글자는 달라도 앞 글자는 같고, 둘 다 노래를 가리키는 말이니 큰 뜻도 얼추 같다. 하지만 가곡과 가요 사이의 거리는 한참 멀게만 보인다. 거기엔 또 넘기 힘든 어떤 벽도 있는 것 같다. 일상에서 가곡이나 가요라는 말을 쓸 때 별다른 부연이 없다면, 가요는 대개 대중가요를 뜻하고 가곡은 통상 서양음악식 예술가곡을 뜻한다. 가요도 예술적일 수 있고 가곡도 대중적일 수 있으나, 그래도 둘은 무언가 다른 것으로 간주되며 꽤나 견고하게 구분된다.
그러한 구분이 온당한지나 그 근거가 타당한지를 여기서 굳이 따지고 들진 않겠지만, 가곡과 가요의 경계선상에 있었던, 혹은 선을 넘나들었던 노래 한 곡의 이야기는 풀어 보고 싶다. 김억(金億)의 번역시에 김성태(金聖泰)가 곡을 붙인 <동심초(同心草)>다.
근대 문인들 가운데 유난히도 한시(漢詩)를 좋아했던 김억은 한국과 중국의 한시 명작을 여럿 번역했고, 그중에는 여성 시인의 작품도 많았다. 번역시 <동심초>의 원작은 중국 당(唐)나라 때 이름난 시인이었던 설도(薛濤)의 작품 <춘망사(春望詞)>인데, 김억은 5언시 네 수로 구성된 <춘망사>를 한 수씩 나누어 각각 번역해 제목을 붙였고, 그 가운데 하나가 시 구절 일부를 제목으로 삼은 <동심초>다.
조금씩 달라진 김억의 <동심초> 번역. 왼쪽부터 <중외일보> 1930년 9월 4일자, <학등> 1934년 6월호, 1934년 9월 간행 시집 <망우초>, 1943년 12월 간행 시집 <동심초> / 제공. 이준희
<동심초>는 김억의 많은 한시 번역 중에서도 특별한 작품이었다. 1930년부터 1943년까지 최소한 네 번이나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발표되었고, 1943년 12월에 간행된 김억의 중국 한시 번역집 <지나명주시선(支那名姝詩選): 동심초>에 제목으로도 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억 번역시에 곡이 붙어 가장 크게 ‘히트’한 것이 또 <동심초>였다.
번역시 <동심초>가 노래 <동심초>로 거듭난 때는 1945~46년 무렵이다. 작곡가 김성태는 1976년 인터뷰에서 <동심초> 작곡 시기가 1945년 가을쯤이라 했으나, 어렴풋한 그의 기억과는 다르게 1946년 작품으로 기록된 경우도 많다. 어느 쪽이든 간에 요즘처럼 밤이 긴 철에 곡이 만들어졌음은 분명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는 편이었던 김성태는 밤늦도록 김억의 시집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악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새로 만들어진 노래 <동심초>는 성악가들의 공연을 통해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따금 라디오 방송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1948년 7월에 열린 소프라노 마금희(馬金喜) 독창회에서 연주된 것이 현재 확인되는 첫 기록이며, 그보다 앞선 자료가 발견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만 음반 녹음은 공연이나 방송에 비해 다소 늦었고, 첫 음반이 발매된 때는 작품 완성 이후 10년 남짓 지난 1956년 여름 또는 가을쯤이었다.
1956년 상반기에 발매된 가곡 <동심초> SP음반 딱지 / 제공. 이준희
<동심초> 첫 음반은 테너 이상춘(李想春)의 녹음으로 유니버살(Universal)레코드에서 제작되었다. 1954년 9월에 음반을 내기 시작한 유니버살레코드는 1955년 3월부터 S1001로 시작하는 번호체계로 가곡이나 동요 등 양악(洋樂) 음반을 발매했는데, S1006 <애국가>와 S1007 <한국환상곡>이 1955년 7월 광고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S1035 <동심초> 발매 시기는 1956년 여름 이후로 추정이 된다.
첫 번째 음반으로서 기록의 의미는 충분하지만, 문교부가 인정한 가곡으로 홍보된 이상춘의 <동심초>는 대중의 주목을 그리 많이 받지 못했던 듯하다. <동심초>가 히트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시간이 보다 지난 1958년 가을 무렵이었으며, 그 과정에선 음반보다 방송의 역할이 더 컸다.
1958년 10월 20일부터 12월 6일까지 방송된 KBS 저녁 라디오 드라마 제목이 <동심초>였고, 아마 드라마 주제가로도 가곡 <동심초>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해 앞서 1957년 6월에는 <가요 지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여드레 동안 매일 <동심초>가 집중적으로 전파를 타기도 했는데, 어쩌면 그때 극작가 조남사(趙南史)가 노래를 들으면서 드라마 <동심초>의 줄거리를 착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라디오 드라마 <동심초> 제17회 대본 / 출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뒤 딸과 살아가는 여자. 이미 약혼자가 있음에도 그 여자에게 마음이 향하는 남자. 그런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할 사랑. 1950년대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한 애정극 <동심초>는 한 달 반 동안 라디오 앞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며 심금을 울렸고, 주제가 <동심초>도 맺지 못할 인연의 애틋함을 돋우는 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화제가 되었던 라디오 드라마 <동심초>의 인기는 바로 영화로까지 또 이어졌다. 드라마 내용과 주제가를 그대로 가져온 영화 <동심초>는 최은희(崔銀姬)와 김진규(金振奎)를 주연으로 한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연출로 1959년 7월 9일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했고, 스무하루 상영되는 동안 관객이 12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해 국산 영화 흥행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국제영화' 1959년 8월호에 실린 영화 <동심초> 소개 기사 /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가수 권혜경(權惠卿)이 불렀을 것으로 짐작되는 드라마 주제가 <동심초>는 영화에서도 역시 권혜경 노래로 주제가가 되어 사운드트랙에 실렸고, 영화 개봉 전후한 시기에 오아시스(Oasis)레코드에서 음반으로도 발매되었다. 사운드트랙과 음반 녹음은 별도로 진행되었는데, 한 절만 들을 수 있는 영화와 달리 음반에는 두 절이 수록되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로 시작하는 제1절은 김억 <동심초>의 1934년 번역이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로 시작하는 제2절은 1943년 번역이다.
권혜경의 영화 주제가 <동심초>는 이상춘의 가곡 <동심초>와 달리 영화 못지않은 히트를 기록했다. 자료가 분명치 않아 음반 판매량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심초>는 <산장의 여인>이나 <호반의 벤치>에 버금가는 권혜경의 대표작으로 인기를 누렸고, SP음반이 처음 발매된 이후로도 1960년 10인치 LP음반과 1964년 12인치 LP음반 등으로 계속 제작되었다.
가수 권혜경이 녹음한 영화 주제가 <동심초> SP음반 딱지 / 제공. 이준희
1955년에 KBS 방송국 전속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권혜경은 당시 일반적인 여성 대중가요 가수들과는 상당히 다른 창법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서양 성악 발성과 유사한 느낌이 나면서도 그 특유의 뭉그러진 발음 없이 가사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깨끗한 창법, 이른바 ‘세미클래식’ 분위기를 대표하는 가수가 권혜경이었다. 음악대학을 다니지는 않았으나, 유명 소프라노 이관옥(李觀玉)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창의 기본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957년 <가요 지도> 프로그램에서 <동심초>를 담당했던 이가 바로 권혜경의 스승 이관옥이기도 했다.
권혜경의 노래 <동심초>는 가곡과 가요의 구분을 뛰어넘는 히트작이었다. 가요와 가곡의 역사 양쪽에서 모두 보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다. 작품 자체의 가사와 곡조가 뛰어나고 라디오 드라마나 영화의 덕도 컸으므로, 권혜경의 가창이 <동심초> 히트를 전적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는 물론 없다. 하지만 만약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동심초>의 위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가수 권혜경 / 제공. 이준희
“권 양이 클래식 곡을 부르면 대중이 따라 부른다. 김성태 곡 <동심초>가 그랬다. 권 양은 클래식 곡을 대중에게 침투시키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가수다.”
1964년 5월 신문 기사에 실린 권혜경에 대한 평이다. 가감할 것 없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동심초> 가사에서는 마음과 마음이 맺어지지 못했다지만, 권혜경은 <동심초>를 부르며 가곡과 가요 사이 벽을 넘는 다리를 놓아 노래와 노래를 하나로 맺었다. 그리고 노래 듣는 이들의 마음과 마음도 하나로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