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경(破鏡)은 깨진 거울이라는 뜻이다. 혹은 이지러진 달을 말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부부 사이가 깨어짐을 빗대어 쓰는 말이다. 그러나 허우 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2015)에서는 은낭(서기 扮)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설명할 때 이 단어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혼약은 깨졌다. 어린 은낭의 마음도 산산이 부서졌다.

13년 후 은낭은 고향인 당나라 번진의 위박(魏博)으로 귀환한다. 검술 수련을 끝내서 돌아온 것은 아니며 정착하기 위해 돌아온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은낭은 스승인 도사 가신공주(허방의 扮)로부터 위박의 절도사이며 파기된 혼약의 상대인 전계안(장첸 扮)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받고 왔다. 속세를 떠났다고는 하나 당 황조의 일원이었던 가신공주는, 독자적인 세력을 갖추어 조정에 위협이 되는 위박의 지도자를 제거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이는 또한 검술에 통달했지만, 인륜에는 져 버리고 마는 은낭의 약한 심사를 가지 쳐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은낭의 마음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영화 타이틀의 배경으로 떠오른 핏빛 호수는 그 자체로 흔들리는 마음의 거울이 된다. 물의 표면은 깨어지고 그 위에 뜬 글자는 피를 토하는 듯하다.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자객 섭은낭>에는 여러 개의 거울 이미지가 존재한다. 가장 처음 등장하는 건 은낭의 모친 섭전 씨(융메이 扮)가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시녀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머리 단장을 하던 섭전 씨는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 거울을 내려놓는다. 반사광이 잠시간 그녀의 얼굴을 번득이며 비춘다. 이윽고 시종이 들어와 은낭의 귀향 소식을 전하자 장신구를 고르던 섭전 씨의 손이 멈추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여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과거 섭전 씨는 은낭이 상심할 걸 알면서도 혼약이 깨지는 상황을 관전해야 했다. 섭전 씨는 딸에 대한 안쓰러움을 매년 봄가을마다 은낭이 입지도 못할 새 옷을 짓는 것으로 해소했다. 섭전 씨는 돌아온 은낭에게 가성공주(허방의 扮)가 남긴 옥결을 내어주며 당 황조의 공주가 정치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위박까지 혈혈단신으로 시집 온 처지를 가만가만 들려준다. 그렇게 해서라도 은낭이 공주의 고독과 고통을 헤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섭전 씨는 은낭이 가신공주로부터 받은 암살 임무의 내용을 짐작하지만 그에 끼어들어 제지하지는 못한다. 섭전 씨의 거울에는 정세의 복잡성에 연루되어 있으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저 이해하고 감내하는 길밖에 주어지지 않은 한 여인의 모습이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거울을 들여다보는 섭전 씨를 바라볼 뿐, 거울에 비친 섭전 씨의 얼굴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전계안의 정실 전원 씨(저우윈 扮) 또한 단장 중에 거울을 본다. 절도사의 부인인 전원 씨의 방과 장신구는 섭전 씨의 그것보다 훨씬 화려하다. 고요한 눈빛으로 거울을 응시하는 전원 씨에게 전계안의 애첩인 호희(사흔영 扮)의 임신 소식이 전해진다. 이윽고 나타난 전계안은 신하의 신변 이동 소식을 전하며 전원 씨가 가담한 것이 분명한 3년 전의 생매장 사건을 넌지시 상기시킨다.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두 사람은 부부인 동시에 정적(政敵)이기 때문이다. 촛불이 위태로이 흔들린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헤아리며 다음 행보를 고르는 전원 씨의 마음 또한 그러할 터이다. 허나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는 전원 씨를 볼 수 있을 뿐, 거울에 비친 전원 씨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규범과 구조 속에 갇힌 여인들, 현실태의 억압 안에서 자기상이 지워져 버린 인물들만이 보일 뿐.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그리고 은낭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들, 그 자체로 은낭의 거울쌍이 되어버린 존재들이 있다. 당 황실의 쌍둥이 공주로 태어났으나 위박 절도사의 부인과 도교의 여도사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간 가성공주와 가신공주가 그들이다. 은낭에게 상흔처럼 자리한 가성공주는 은낭이 가신공주를 따라가기 전 위박에 살던 시절, 직접 칠현금을 타면서 푸른 난새(봉황) 이야기를 들려준다. 짝이 없는 난새가 노래를 부르지 않자 서역의 왕비는 새장에 거울을 넣어주라 일렀다. 짝을 만난 줄 안 난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거라면서. 왕은 왕비의 말을 따랐다. 거울을 본 난새는 구슬피 울었고 죽을 때까지 거울 앞에서 춤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고사는 은낭의 회상을 통해 가성공주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은낭 자신도 직접 입에 옮겨 아버지(니다훙 扮)와 마경소년(츠마부키 사토시 扮)에게 읊어준다. 은낭은 이제 왜 가성공주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 안다. 은낭 자신이 공주와 마찬가지로 또 다른 난새가 된 이후에야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은낭은 공주가 남긴 유품인 옥결을 어루만진다. 깨어진 혼약의, 부질없어진 맹세의 징표. 결단과 결별, 그럼에도 이생 내도록 지켜내고 싶었던 단심.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은낭은 울음을 멈출 수 없다. 그러나 우는 얼굴을 보일 수도 없다.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반면 도교적 무심을 대표하는 스승 가신공주는 은낭이 되기를 종용받는 미래의 거울이다. 은낭은 가신공주로부터 인간적인 삶과 감정에 흔들리는 마음을, 가성공주와의 인연을 포함한 자신의 과거태를 베어버리고 현재 그 자체를 사는 무정한 검객으로 거듭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줄곧 확인했듯이 은낭은 그와 같은 초월적 잠재태와는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인간이다.

은낭에게 있어 진짜 그 자신을 반영하는 거울은 호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석양이 번지는 붉은 호수는 은낭의 애끓는 심경을 보여주고, 휘도는 물안개와 함께 나타난 푸른 새벽의 호수는 은낭의 막막한 고독을 담아낸다. 풀벌레는 끊임없이 울고 잠에서 깬 새 무리는 공중으로 퍼드득 날아간다. 인물의 감정과 풍경의 진동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객 섭은낭>에 나타난 호수는 정중동(靜中動)의 물상으로서의 거울이 된다. 이때 호수는 서양의 거울 이미지처럼 대상의 상을 선명하게 반영하는 매끄러운 반사면이 아니다. 현실태와 잠재태의 식별 불가능한 떨림. 이는 곧 가성공주라는 현존재적 거울상과 가신공주라는 미래상의 쌍둥이거울 사이에서 시시각각 변동하는 은낭 자신의 떨림이나 다름없다. 원래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다. 촛불처럼 짧은 숨결에도 쉬이 흔들리고, 수면마냥 가벼운 바람에도 쉽게 깨어지는 법.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정중동의 미학을 구현하면서 은낭의 마음이 거울처럼 들여다보이는 또 하나의 장면으로는 호희의 침실 씬이 있다. 카메라가 천천히 옆으로 이동한다. 은낭은 겹겹이 드리워진 비단 천 뒤에 우뚝 선 채로 호희와 전계안을 지켜보는 중이다. 얇고도 붉은 각기 다른 무늬의 비단 천이 바람에 나부끼며 은낭의 시야를 가리고 카메라의 시선 또한 이따금씩 가로막는다. 은낭의 얼굴 또한 바람과 천의 움직임에 따라 가려졌다가 드러났다가, 일렁이듯 보였다가 선명하게 드러났다가를 반복한다. 비단 천은 전계안이 어린 시절 열병에 걸려 죽을 뻔했던 일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완전히 존재감을 지워버린다. 화면은 생생해지고, 세 사람의 감정은 잠시간 같은 장 속에서 공존한다. 누구도 보존하지 않고 있는, 심지어 부모인 섭씨 내외에게조차 조심스레 봉인되어 있던 은낭의 과거태가 전계안의 마음속에서만큼은 깨어지거나 손상되지 않은 채로 고스란히 현존해있음이 드러난다. 전계안과 호희는 각각 은낭에 대한 부채감과 연민에 빠져 침묵한다.

옛 정혼자와 그가 지금 사랑하는 여인을 숨어서 응시하는 은낭에게로 다시 한번 바람과 함께 비단 천이 불어온다. 카메라는 이전과 달리 맞은편이 아닌 측면에서 은낭을 비추고 있다. 불투명한 비단에 겹겹이 가려진 은낭의 마음을 뚜렷이 알 길은 없으나, 어쩌면 은낭 또한 마음으로는 두 사람과 한 방향으로 나란히 기대어 앉아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전계안이 자신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의 곁에 지금 자리한 호희의 시선 속에서 자신은 자객도 연적도 아니며 단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가엾은 한 사람으로 놓여있다는 사실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다음으로 카메라가 호희의 침실을 향했을 때 시간대는 바뀌어 있다. 새벽, 전계안은 떠났고 호희는 혼자 잠들어 있다. 여전히 바람이 불고 초가 흔들리지만 너울대던 비단 장막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엎드려 잠든 호희와 그 옆에 선 은낭의 모습은 풀샷으로 잡혀 있다. 정돈된 화면 안에서 은낭의 시선은 호희를 비켜나 바닥을 향해 있으나 표정은 결연하다. 정(靜)의 확보. 극이 전개됨에 따라 은낭은 또렷하게 한 지점에 이른 결심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은낭은 전계안을 해하는 대신 그가 사랑하는 호희를 지켜준다.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어떤 세계에 속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은낭은 어디서도 말끔히 비추어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이 문제를 뜻밖의 거울에서 발견한다. 바로 마경소년의 거울, 영화에 등장하는 숱한 거울들 중 유일하게 사람의 얼굴을 되돌려주는 거울에서다. 당이 아닌 신라국 출신의 마경소년은 은낭만큼 숙련된 검객은 아니지만,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싸움에 끼어들고 사람을 비추기 위해 거울을 들이미는 이다. 일면식 없는 타국의 고관 무리가 위기를 맞자 검도 없이 나무 막대 하나만 가진 채로도 목숨을 걸고 나섰고, 마을에 도착해서는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자기가 직접 간 거울을 보여준다.

마경소년이 갈아내는 거울은 상류층 사람들이 쓰는 정교하게 연마된 거울이 아니라 뿌옇게 흐릿한 싸구려 금속이다. 그 거울은 계급과 권력, 중심서사의 바깥에 위치한 인물들을 비추고 있다. 말하자면 위박 부인 둘의 거울들과 병렬로 놓일 수 있는 거울이 아니며, 두 공주라는 메타거울(은낭의 과거태·잠재태를 환기시키는)과도 관계가 없는 제3의 거울인 것이다. 금속거울에 맺히는 상은 미세한 일렁임을 동반하며 어룽댄다는 점에서 완전한 정(靜)도, 완전한 동(動)도 아니고 호수와 마찬가지로 정중동의 물성화된 표면으로 기능한다. 호수는 자연 풍경이지만 이 거울은 인간 세상의 것이다. 무위자연과 인간의 생활세계가 고요와 동요로 공명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생활세계는 중앙권력으로의 초점화나 초월적인 차단과는 무관하게 일상의 층위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자객 섭은낭>을 통해 드러나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탈중심적 미학의 일면이다.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자객 섭은낭'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결국 은낭은 섭전 씨나 전원 씨의 세계에는 속할 수 없고, 가성공주가 대표하는 과거-현실태에는 작별을 고했으며, 가신공주라는 저 자신과 맞지 않는 잠재태에서도 물러나왔다. 호수는 은낭의 마음을 보여주지만 은낭이 가야 할 길을 비춰주지는 않는다. 은낭은 마경소년의 거울을, 그 거울이 비추는 얼굴들을 택한다. 누구의 명령도 어떤 소명도 아니고 제게 명명된 운명도 아닌 거울, 이름 없는 아이의 얼굴 속에서 발견되는 완전히 다른 계열의 길을.

어떤 세계에 속하지 않아도 되는가, 어떻게 살지 않아도 되는가. 완벽한 검술 실력을 가진 섭은낭은 무정한 검객이 되기를 거부하고, 거울을 깨듯 자신에게 부여된 운명을 스스로 깨고 나간다. 사람은 산산조각이 나거나 이지러진 채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깨진 거울을 다시 붙일 순 없더라도 그 조각에 무엇을 비출지는 끝내 직접 선택하게 된다. 이때 파경은 분열이나 단절이 아니라 균열로 열린 틈, 탈주를 위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은낭은 길을 떠난다. 비-귀속적인 생의 경쾌한 리듬 위로. 카메라는 비로소 온전한 거울이 되어 은낭과 마경소년 일행의 등을 오래도록 비춘다.

이태인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