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잎이 떨어지는 가을 어느 날, 탱고 공연을 관람하러 간 적이 있었다. 강렬하고 열정적인 음악을 타고 흐르는 탱고 댄서의 나비 같은 움직임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고 일어나려는 순간 또 다른 장면을 목격했다. 사방의 관람객들이 조용히 가방에서 탱고 슈즈를 꺼내어 신더니, 산발적으로 둘씩 짝을 지어 무대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공연을 이끌었던 멋진 탱고 마스터에게 정중히 춤을 요청하고 관람객들이 탱고 댄서가 되어 그들만의 새로운 공연이 시작되었다.
출산을 앞두고 뒤뚱뒤뚱하던 나로서는 그 광경이 마치 3차원의 시공간처럼 느껴졌다. 그 누구도 나를 막지 않았지만, 나는 억압당한 기분으로 발끝만 슬쩍 꼼지락거렸던 기억이 있다. 전편에 이어 다시 앨리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등장인물을 이 외에도 그 세계에는 기묘하고 괴짜다운 존재들이 숨어 있다. 어쩌면 모자 장수를 뛰어넘는, 이상한 나라의 가장 이상한 인물들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앨리스는 여왕의 지시로 가짜 거북을 만나게 된다. 여왕과 앨리스는 가짜 거북에게 데려다주라며 사자의 몸과 독수리의 머리를 지닌 그리핀을 찾아간다. 용맹한 존재인 그리핀은 똬리를 틀고 자다가 일어난 듯 흐트러진 모습이고, 가짜 거북은 작은 바위 위에 쭈그리고 앉아 슬프게 울기만 한다. 애처롭기만 한 두 존재는 갑자기 ‘바닷가재의 카드리유’ 이야기를 하며 생기를 되찾는다.
긴 수연통을 문 애벌레가 앨리스에게 던진 질문, “넌 누구냐?” 앨리스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라며 자신은 자신이 아니라고 답한다. 번데기, 나비로 변태하는 애벌레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키가 달라지는 앨리스가 동일시되는 장면이다. 둘은 서로를 다르게 바라보지만, 그 불안정한 존재성만큼은 서로에게 투영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사진출처. 비룡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앨리스는 두 기묘한 존재, 그리핀과 가짜 거북을 마주하게 된다. 사자의 몸과 새의 머리를 달고 있는 모호한 존재의 그리핀과 진짜 거북을 흉내 내는 슬픔의 형상인 가짜 거북.
이 두 존재는 어쩌면 앨리스의 또 다른 자아를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핀과 가짜 거북은 단순 조연이 아닌 앨리스의 세계관을 지탱하는 두 개의 큰 기둥으로써 앨리스의 자아와 감정을 표현하며 현실 세계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매개체다. 혼란한 세계관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되뇌게 되는, 가장 이상하고 기묘한 안내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기묘한 수업은 그렇게 끝난다. 아이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그림책을 이렇게까지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한 지금의 시점에서, 나 역시 잠시 혼란스러운 세계의 토끼 굴에 빠진 기분이지만, 어쩌면 그 혼란이야말로 독자가 앨리스와 함께 경험해야 할 이 그림책의 기묘한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효진 길리북스 대표1) 카드리유(프랑스어: Quadrille)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유행한 춤으로 둘 또는 네 명의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춘다. (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