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미식 경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크리에이티브 컬리너리 스튜디오 발보스테(Balbosté)가 푸드 스타일링을 뛰어넘은 ‘미식 경험 디자인’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며 글로벌 럭셔리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음식에 브랜드 스토리와 메시지를 담아 예술 작품 같은 형태로 구현, 차별화된 몰입감을 제공하는 것으로 미식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다.
발보스테는 미식을 기반으로 디자인과 공간 연출까지 일관된 테마를 구현해 고유한 브랜드 경험을 선사한다. 샤넬, 루이 비통, 디올 등 럭셔리 브랜드의 VIP 다이닝 경험 설계는 물론, 미식 관련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컨설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영역을 확장해 디즈니, HBO 등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과도 협업하며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발보스테의 차별점은 인하우스 시스템이다. 셰프와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가 한 공간에 상주한다. 샬럿 싯봉(Charlotte Sitbon) 대표와 주방을 총괄하는 여성준 셰프를 중심으로 외부 인력 없이 자체 회의를 거쳐 메뉴와 컨셉을 개발한다.
이들은 전통적인 미식의 틀에서 벗어나 요리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형태와 질감을 창조한다. 브랜드의 테마에 맞춰 메뉴 개발부터 식기 디자인, 공간 연출까지 맞춤 설계해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발보스테의 혁신 뒤에는 광고업계 출신인 샬롯 싯봉 대표의 명확한 철학이 있다. 그녀는 음식을 그저 '요리'가 아닌, 럭셔리 브랜드의 감성적 가치와 스토리를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시각 언어로 활용한다. 이는 수많은 럭셔리 하우스들이 발보스테를 파트너로 선택하는 핵심 이유다. 샬롯은 "미식 경험은 모든 산업의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영역 확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제시한다.
발보스테는 고객이 먹는 행위를 넘어 브랜드의 세계관 속으로 완전히 몰입하도록 유도한다. 시각적 정교함은 기본이며, 각 요리에는 서사가 담겨있다. 이들은 요리사와 디자이너의 협업을 통해 먹을 수 있는 스케이트보드나 색다른 재료 조합 등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를 창조하며 럭셔리 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차별화된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가치를 제공한다.
2017년에 시작된 발보스테는 지난 11월,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한 후 처음으로 자체 팝업인 '첫 만찬(Le Premier Dîner)'을 열었다. 7인의 디자이너와 협력한 각각의 요리에 발보스테의 고유한 이야기가 담겼다. 7일간 이어진 팝업에 전 세계의 미식가와 디자이너들이 몰려들었다.
투명한 미역국에 담긴 이야기
팝업 메뉴 중 발보스테의 통합적 접근 방식을 잘 보여준 건 한국인 듀오 디자이너 스튜디오 노케와 함께 재해석한 미역국이었다. 물과 빛이 만나 투명하게 일렁이는 '물의 형상'은 밀라노의 로산나 올란디(Rossana Orlandi) 갤러리 소속인 스튜디오 노케의 대표작이다. 발보스테 스튜디오에 설치된 이 작품을 여성준 셰프는 '정화'로 연결했다.
스튜디오 노케는 식사 과정에서 '물의 형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병에 광원을 더해 집기를 만들었다. 서문섭 디자이너는 "평소 사용하는 키링 플래시 라이트를 분해해 집기에 설치했고, 미역국을 따를 때 빛이 투명한 유리와 미역국을 투과해 테이블에 빛이 일렁이는 모습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기술과 예술의 통합은 샬롯 싯봉 대표가 가진 창조성과 완성도에 대한 타협 없는 기준에서 비롯된다. 샬럿의 외조부는 럭셔리 메종의 주얼리를 만드는 공방을 운영한 앤틱 주얼리 수집가였고, 부모 역시 주얼리 업계에 종사했다. 어린 시절 섬세한 미감을 갖춘 환경이 럭셔리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영향을 줬다.
‘발보스테’는 동유럽 유대인 언어인 이디시어로 ‘유능한 안주인’을 뜻한다. 샬롯 대표의 할머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왔다. "할머니의 강인한 생존 본능을 이어받았다고 느껴요. 제 작업에도 이 DNA가 녹아있죠."
발보스테는 한국 시장의 역동성과 장인 정신에 큰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이 글로벌 비전의 한 축은 여성준 셰프가 추구하는 ‘진짜 한식’과 맞닿아 있다.
"진짜 한식이 뭔지 프랑스 사람들이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조희숙 셰프님이나 온지음의 조은희, 박성배 셰프님 같은 한식 전문가분들을 모시고요. 프랑스에서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를 통해 한식의 깊이와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샬롯 대표는 “우리의 방향은 거창한 확장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라며, "한국 시장과의 창조적 만남이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