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이 지난달 25일 파리 중심부 루브르 박물관 맞은편에 재개관했다. 팔레 루아얄 광장 2번지에 자리한 이곳은 1855년 만국박람회 당시 지어진 루브르 호텔 건물로, 내부 공간은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건축가 장 누벨의 손을 거치며 완전히 탈바꿈했다. 1984년 당시 메종 까르띠에 회장이었던 알랭 도미니크 페랭이 설립한 이 문화재단은 럭셔리 브랜드 중 가장 먼저 현대미술에 본격 투자했다. 이후 40년간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전시로 독보적 위치를 다졌다. 새 공간에서는 전시, 공연, 토론 등을 아우르며 더 폭넓은 관객층을 만나갈 예정이다. 까르띠에 재단 컬렉션 디렉터이자 이번 전시 큐레이터인 그라치아 콰로니는 본지 인터뷰에서 재개관의 의미와 재단의 미래 비전을 전했다.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새 공간의 핵심은 천장 높이를 바꾸는 5개의 가변형 강철 플랫폼이다. 전시마다 공간 구성을 완전히 달리할 수 있는 이 시스템에 대해 콰로니는 "장 누벨이 예술가들의 예측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모두 수용하기 위해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플랫폼 조합의 경우의 수는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워, 공간 자체가 예술 창작의 일부가 된다. 플랫폼마다 높이가 달라지면서 매번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콰로니는 "10년 후 예술가들이 이 공간으로 무엇을 할지 우리도 모른다. 건축이 예술의 새로운 잠재력을 열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내부가 무한히 변한다면, 외부는 도시와 연결된다. 장 누벨은 1층 전면을 파리 거리를 향한 대형 창으로 열어 미술관 안팎의 경계를 지웠다. 반면 나폴레옹 1세 시대의 리볼리 가 아케이드와 외관은 그대로 보존했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혁신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누벨은 이곳을 ‘파리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구상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자전거, 차량의 움직임이 살아있는 배경처럼 펼쳐진다. 행인들은 유리창 너머로 전시 작품을 힐끗 들여다보고, 안에서는 파리의 일상이 작품과 겹쳐 보인다. 누벨은 이를 통해 미술관과 파리 사이의 '즉각적인 대화'를 만들고자 했다.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The Foundation Cartier pour I'art contemporain, 2 Palce du Palais-Royal, Paris. / © Jean Nouvel/ADAGP, Paris, 2025. Photo © Martin Argyroglo.
재개관 전시 'Exposition Générale(종합 전시)'은 19세기 백화점 시절의 전시명을 빌려왔다. 당시 가구, 패션, 가전 등 신제품을 모아 자유롭게 전시하며 파리 시민들의 사교 공간 역할을 했던 행사다. 재단은 당시의 개방적 분위기를 재현하듯 컬렉션에서 100여 작가를 선별해 자연·과학·공예·현대미술을 함께 선보였다. 내년 8월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고정된 관람 경로 없이 관객이 스스로 길을 찾으며 작품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콰로니는 개별 작품을 고른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40년간의 전시에서 주요 흐름을 파악한 뒤 방향을 정하자, 어떤 작품을 보여줘야 할지 하나씩 드러났다"며 "긴 작업이었지만 관객이 방대한 컬렉션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재단의 정체성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정체성의 핵심은 독립성이다. 1984년 알랭 도미니크 페랭이 재단을 만들면서 상업 활동과 명확히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설립자의 개인 취향이나 재정적 이익보다 전 세계 신진 작가 발굴에 집중해왔다.
Diller Scofidio + Renfro, Mark Hansen, Laura Kurgan and Ben Rubin, in collaboration with Robert Gerard Pietrusko and Stewart Smith, EXIT, 2008–2015, 22 min 43 s, Installation diameter: 8.8 meters, Installation height: 4 meters, Foreword by Paul Virilio, La Rochelle, 2008 Digital video, 3 min 21 s, View of the installation at the Palais de Tokyo, Paris, 2015, Collection of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acq. 2012). / © Luc Boegly/© Diller Scofidio + Renfro, en collaboration avec Mark Hansen, Laura Kurgan, Ben Rubin, Robert Gerard Pietrusko et Stewart Smith.
Diller Scofidio + Renfro, Mark Hansen, Laura Kurgan and Ben Rubin, in collaboration with Robert Gerard Pietrusko and Stewart Smith, EXIT, 2008–2015, 22 min 43 s, Installation diameter: 8.8 meters, Installation height: 4 meters, Foreword by Paul Virilio, La Rochelle, 2008 Digital video, 3 min 21 s, View of the installation at the Palais de Tokyo, Paris, 2015, Collection of the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acq. 2012). / © Luc Boegly/© Diller Scofidio + Renfro, en collaboration avec Mark Hansen, Laura Kurgan, Ben Rubin, Robert Gerard Pietrusko et Stewart Smith.
또 다른 특징은 예술가뿐 아니라 과학자, 철학자, 인류학자와 협업하는 다학제적 접근이다. 콰로니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 네트워크가 동시대 세계의 실제 이슈를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인다"며 "중요한 것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항상 예민하게 포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서구 예술에 대한 지속적 관심도 주목할 만하다. 콰로니는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하게 사고해야 한다"며 "도시 중심부의 작가든 아마존의 작가든, 서구 미술관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작가들을 20~30년 전부터 발굴해 컬렉션에 담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현대미술 작가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함께 전시하며 대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재단은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재단 소장품 기획전을 열었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콰로니는 “전시가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며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기억했다. 최근에는 올해 4월부터 7월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호주 조각가 론 뮤익의 한국 첫 개인전을 공동 기획했다. 콰로니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작가들과의 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재개관 1년 후인 2026년에는 가나 작가 이브라힘 마하마의 개인전을 연다고 밝혔다.
The Grands Magasins du Louvre, 1880. / 필자 제공
The Grands Magasins du Louvre, 1880. / 필자 제공
이번 팔레 루아얄 이전은 재단 40년 역사의 전환점이다. 1984년 남서부 교외 주이-앙-조자스에서 시작해 1994년 14구 라스파이로, 그리고 이번에 루브르 맞은편 1구로 이동하며 파리 문화 심장부에 자리 잡았다. 루브르 박물관장은 올해 초 문화부 서한에서 까르띠에 재단과 부르스 드 코메르스 개관이 "이 지역의 외관과 매력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인정했다. 루브르, 코메디 프랑세즈, 국립도서관 등 주요 문화기관이 밀집한 파리 1구에 민간 재단들이 합류하며 공공과 민간이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 장 누벨의 가변형 건축과 40년간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까르띠에 재단이 파리 현대미술 지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파리=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