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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 아비뇽 무대 올린 연출가 "여성의 서사로 잊힌 역사 무대에 불러냈다" [여기는 아비뇽]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극 '새' 연출한
줄리 델리케 인터뷰
줄리 델리케 인터뷰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낭독 공연 ‘새(Oiseau)’를 아비뇽 페스티벌 무대에 올린 연출가 줄리 델리케는 17일(현지시간) 기자와 만나 공연을 마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파리 라 콜린 국립극장 예술감독인 그는 이번 무대를 통해 한강의 문학을 프랑스 관객들과 처음으로 나눴다.
이번 작업은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 티아고 호드리게스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올해 한국어가 초청 언어로 선정되고 한강이 주요 초청 작가로 참여하면서 그의 작품을 낭독 공연으로 선보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배우 이자벨 위페르와 이혜영의 캐스팅 역시 호드리게스의 제안이었다. 델리케는 “제안을 받기 전까지는 한강 작가의 작품을 잘 몰랐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그 일부를 낭독 공연으로 올려보자는 생각이 구체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 작가와 함께 작업하고 한국어라는 언어를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큰 영광”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작업은 작가부터 배우, 자막·조명·음향 스태프까지 우연히 모두 여성으로 구성됐다. 델리케는 “인간의 연약함과 두 여성의 우정을 다루는 작품을, 이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여성 예술가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점이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무대화했던 그는 “두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연이어 작업하며 유럽 무대에서 여성 작가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새삼 실감했다”고 밝혔다.
델리케는 한강 문학의 힘을 언어에서 찾았다. 그는 “지극히 다큐멘터리적이면서도 지극히 시적인 양면을 지닌 문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관객을 고통스러운 학살의 기억 속으로 이끈다”고 말했다.
“텍스트를 지나치게 잘게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관객이 하나의 감각적인 여행에 초대받은 것처럼 느끼기를 바랐고, 공연이 끝난 뒤 ‘왜 여기서 끝났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고 원작의 뒷부분을 직접 읽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한강 작가를 배우처럼 활용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두 여성의 이야기가 꿈과 같은 픽션의 세계라면, 작가의 낭독을 통해 관객을 갑자기 현실로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처음 마주했을 때 우리가 받는 충격을 무대에서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 충격이 관객을 극장 밖으로 이끄는 질문이 되기를 바랐다. 제주4·3을 더 찾아보거나, 자신의 사회에서 감춰져온 또 다른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다. 델리케는 프랑스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비시 정부의 역사를 오랫동안 충분히 가르치지 않았다고 짚었다.
“한국과 유럽 모두 아이들에게 뒤늦게 알려준 역사들이 있습니다. 이 공연이 과거 세대와 미래 세대가 단절되지 않고 대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술적인 효과를 위해 물을 가져와 인공눈을 만드는 것은 예술가이자 시민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대신 폭염 속 순백의 공간에 앉은 관객들이 작은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발견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마치 작은 스노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요.”
두 배우에게 흰 의상을 입힌 것도 병원복과 두 마리 새,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 영혼과 재생을 함께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한강의 또 다른 작품 <흰>과의 연결도 염두에 뒀다. 델리케는 “두 배우의 몸이 마치 하나의 몸처럼 보이게 하는 데 흰색이 가장 적절했다”고 설명했다.
‘새’는 오는 10월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다시 공연된다. 델리케는 “기본적인 낭독 구성은 유지되지만 한강 대신 작품 속 희생자들과 비슷한 나이의 소녀가 마지막 부분을 읽게 될 것”이라며 “아비뇽 교황청의 작은 창과 눈을 서울 무대에서 어떻게 새롭게 구현할지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아비뇽=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