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밤, 난생처음으로 ‘계엄령’·‘금지’·‘처단’ 같은 말들을 현실에서 접하면서 세상과 나에 대한 무수한 물음표가 생겨났다. 그 덕분(?)에 자꾸 무언가를 쓰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중 가장 우람하게 자라난 질문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이때껏 무언가를 쓰는 일을 해온 나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조항 앞에서 더욱 얼어붙었다. 작업 중이던 문서에 내가 쓰고 싶은 문장이 아니라, 눈치를 보거나 처벌받지 않기 위해 고른 말들이 남는 상황이 그려졌다. 그러한 일을 피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거나 관련 없는 다른 일을 찾는 생각도 뒤따랐다. 그대로 남아 어떻게든 버티며 목소리를 내는 삶은 좀처럼 떠올리기 어려웠다.

스스로를 그보다는 조금 더 정의롭고 용감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일까, 그때 마주한 나를 오래 곱씹게 됐다. 그동안에는 역사와 이야기 속 영웅들을 쉽게 찬양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못마땅함을 느껴왔다. 그런데 막상 조금이라도 비슷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어쩌면 내가 자신을 가장 실망시킬 결정을 하는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포고문이 노린 공포가 내게 정확히 먹혀들었다는 사실이 수치심 같은 것들과 엉겨 붙어 내내 내 안에 머물렀다.

공포: 공포를 가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그들은 공포가 먹힌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 어떻게 먹히는지도 알았지만 공포가 어떤 느낌인지는 몰랐다. 흔히들 하는 말로, "늑대는 양의 공포에 대해 말할 수 없다".
- 줄리언 반스, 송은주 옮김 『시대의 소음』 (다산책방)

공포의 시대 속 예술가의 삶,
줄리언 반스가 응시한 쇼스타코비치


보잘것없는 무명의 칼럼니스트도 이렇게나 과몰입하게 되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시대의 이데올로기 앞에서 몸부림쳤을까. 예술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먼저 머리채를 붙잡힌 것이야말로 예술이었는지도 모른다. 존 마우체리의 『전쟁과 음악』에 따르면 소비에트가 아방가르드를 배척하는 동안 미국은 낯선 양식을 ‘자유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소비에트는 사과를 사과처럼 그린 그림만, 반드시 희망찬 승리로 끝나는 음악만 허락했다면, 미국은 비조성 음악을 쓰는 것만으로도 나치나 파시스트가 아닐 거라 여겼다. 오히려 전통적인 교향곡을 쓰면 자신의 사상을 입증해야 했다. 예술가들은 작품의 스타일만으로도 낙인을 감수해야 한 것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줄리언 반스는 이러한 소용돌이에 놓였던 여러 예술가 가운데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삶에 주목했다. 오랫동안 그의 음악을 들어왔던 반스는 쇼스타코비치가 “단순히 위대한 작곡가가 아니라 ‘예술이 권력과 충돌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임을 깨달았다. 소설 『시대의 소음』은 “예술과 권력, 공포와 저항의 긴장 속에서 한 인간이 예술가로 어떻게 살아남을까?”라는 질문을 붙잡는다. 굴복하거나,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그 세 갈래의 길 중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어떤 선택으로 자신의 시대를 버텨냈을까?
줄리언 반스.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줄리언 반스.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쇼스타코비치가 작곡가로 주목받고 성장하던 20~40대 시절, 집권자는 역사상 가장 공포스러운 독재자 중 한 명인 스탈린이었다. 동세대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음악가였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인생은 1936년 1월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공연 날, 3막이 시작되기 직전 스탈린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시골을 배경으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작품은, 여성의 외도나 자유를 얻기 위해 남편을 살해하는 줄거리, 불협화음이나 금관악기의 찌르는 듯한 표현 등으로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렸다. 반스의 표현에 따르면 “요란하게 짖어대 주인의 기분을 거스른 개와 같은 꼴”이 된 셈이다.

스탈린 체제하의 소련은 소비에트 오페라의 3대 원칙을 세웠다. “주제는 반드시 사회주의 요소를 포함할 것, 음악은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할 것(난해한 조성을 사용하지 말고 러시아 민요를 바탕으로 할 것), 줄거리는 '긍정적'일 것(국가를 찬양하는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할 것)(헤럴드 C. 숀버그, 『위대한 작곡가들의 삶 3』)”. 이에 근거해 구소련의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는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혼란 속의 음악’이라며 혹평했다. 당시 기관지의 비판을 받은 음악가는 직업을 잃거나 재산과 집을 몰수당했고 최악의 경우 수감되거나 처형됐다. 이미 2년여 동안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주되며 호평을 받아온 작품이 이 일을 계기로 공연 목록에서 제외됐고, 예정된 무대도 모두 취소됐다.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2014년 볼로냐 시립극장 공연.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쇼스타코비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2014년 볼로냐 시립극장 공연. /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순응의 얼굴로 쓴 저항의 음악

섬세하고 예민했던 쇼스타코비치는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렸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끌려 나가고 싶지 않았던 그는 한동안 옷을 차려입은 채, 아파트 복도 계단에서 발치에 짐 가방을 두고 잠을 청했다. 추가적인 논란을 막기 위해 예정되었던 교향곡 4번 리허설도 취소했다. 이미 그의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이 체포되거나 수감되어 오랜 뒤에야 돌아오거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던 시기였다. 쇼스타코비치에게도 위협의 그림자가 문 앞까지 다가왔지만, 자신을 심문하던 간부가 갑자기 숙청을 당하면서 얼떨결에 공식적인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로도 그는 신경쇠약에 이를 정도의 긴장과 피로에 시달렸다. 체제에 순응하는 인상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그는 교향곡 제5번을 발표했다.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지휘: 장윤성, 연주: 한경arte필하모닉)]

이 작품의 불가사의한 면모 중 하나는 초연에서 독재의 탄압을 받던 관중들의 긴 기립박수를 받은 동시에, 당국에서도 만족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쇼스타코비치의 의도를 직접 밝힌 기록은 찾기 어렵다. 다만 한 언론인이 붙인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창의적 답변’이라는 부제가 널리 퍼졌는데, 쇼스타코비치는 이 말이 자신의 음악을 지켜줄 것이라 믿었는지 작곡가가 직접 쓴 제목이라는 오해를 부인하지 않았다. 지도층은 이전보다 조성화된 음향과 전통적 구조를 회복한 이 작품을 당의 요구에 순응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청중들은 곡의 영웅적인 어조 밑바탕에 깔린 불안과 감정의 그늘, 아이러니와 슬픔에 공명했다. PBS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협력한 ‘Keeping Score’ 시리즈에 따르면, 당시 공공장소에서 우는 것은 체제에 대한 비판 행위로 간주해 처벌받을 수 있었음에도 <교향곡 제5번>의 제3악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또한 마지막 악장에서는 피날레를 향해 승리와 환희가 고조되는 듯하지만 발길을 붙들 듯 단조로 음악을 끌어당기는 B플랫 음이 끼어든다. 이를 두고 지휘자 존 마우체리는 “진정한 개선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승리를 조롱하는 패러디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앞의 둘을 합한 그 무엇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사진. ⓒ Deutsche Fotothek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사진. ⓒ Deutsche Fotothek
양면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중 코드와 아이러니는 <교향곡 제5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삶과 예술 모두를 지키는 낯선 생존 방식이었다. 그 여정은 어쩌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고단하고 위태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는 때로 소비에트 체제를 선전하는 인물로 비쳐져 비판받았고, 스스로에 대한 경멸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에는 부당함과 차별에 맞서려는 의지, 억압 속에서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려는 마음이 스며 있었다. 박해받는 민족의 고통을 담은 <유대 민족의 시에 붙인 노래> 같은 작품들을 작곡했고, 마치 두려움에 지친 사람들에게 “나 아직 여기 있어!”라고 외치듯 자신의 이니셜(D.Sch)에서 따온 네 음 D-E flat-C-B(독일식 기보법으로 D-Es-C-H) 를 <현악 사중주 제8번>과 <교향곡 제10번> 같은 작품 곳곳에 남겨 두었다.

그는 개의치 않는 척했을 뿐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서류에 서명한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그도 알았고 내심으로는 괴로워했을 테니까. 그는 가족에게, 특히 자신이 너무도 사랑하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을 먹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실수'를 기꺼이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 엘리자베스 윌슨, 장호연 옮김 『쇼스타코비치』 (돌베개)

두려움과 함께 살아남는 법

1946년에 태어나 냉전 질서 속에서 성장한 줄리언 반스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서구의 승리주의가 전체주의 아래의 삶을 과도하게 단순화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두려움 자체를 경멸하고 망설임 없는 저항만을 진짜 용기라 여긴다면, 그 안에는 인간다움이 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사형 영웅만이 아니라, 불안과 모순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 역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용기를 증명한다.

반스의 소설 속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는 문장이 꼭 비관적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한때의 매끈한 정의감으로는 헤아리지 못했던 인간과 삶의 복잡함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나에게는 완벽한 영웅 서사보다, 주저하고 신음하면서도 끝내 자신이 지키고자 한 것을 놓지 않은 겁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한 것 같다.

영웅이 되려면 잠시 용감해지기만 하면 되었다 - 총을 꺼내고, 폭탄을 던지고, 기폭 장치를 누르고, 독재자를 없애고, 더불어 자기 자신도 없애는 그 순간 동안만. 그러나 겁쟁이가 된다는 것은 평생토록 이어지게 될 길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한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고, 머뭇거리고, 움츠러들고, 고무장화의 맛, 자신의 타락한, 비천한 상태를 새삼 깨닫게 될 다음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겁쟁이가 되려면 불굴의 의지와 인내, 변화에 대한 거부가 필요했다 -이런 것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용기이기도 했다.
- 줄리언 반스, 송은주 옮김 『시대의 소음』 (다산책방)

김수미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