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조용한 사직, 저성장 시대가 기업에 던진 질문 [율촌의 노동법 라운지]
평생직장 사라지고 이직 일상화
근무 태도 문제로 단순화 어려워
R&R·보상 강화하고 소통 늘려야
근무 태도 문제로 단순화 어려워
R&R·보상 강화하고 소통 늘려야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노동에 대한 세대 차이?
이 현상을 두고 시각은 엇갈린다. 특히 세대 간 인식 차이가 크다. 기성세대는 이를 조직에 대한 배신이자 무임승차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이 야근과 주말 근무를 마다하지 않으며 조직에 헌신했던 경험을 기준으로, MZ세대의 태도를 '요즘 애들은 나약하다'는 식으로 해석한다.MZ세대가 보는 풍경은 다르다. 기성세대가 일하던 시절은 고도성장기였다.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파이가 커지던 시대에는 헌신이 승진과 연봉 인상으로 보상받을 가능성이 높았고 '평생직장'도 가능했다. 반면 MZ세대는 저성장 시대를 살고 있다. 기업 성장률은 둔화하고 글로벌 경쟁은 심화했으며 구조조정은 일상화됐다.
성장의 과실을 나눌 파이 자체가 줄어든 상황에서 '헌신하면 보상받는다'는 공식은 구조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한 회사에 올인하는 것이 합리적 전략이었다면, 이제는 이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시각을 마냥 잘못됐다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법의 잣대와 근로자의 책임
노동법상 근로자는 근로계약에 따른 성실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그 범위가 무한정 확장되지는 않는다. 정해진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한정될 뿐, 법은 초과근로나 자발적 헌신까지 강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계약서에 없는 주말 근무를 거부하거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일을 맡지 않는 것은 근로자의 권리다.실제 판례도 정당한 업무 지시 불이행과 같은 구체적 사유가 있어야만 징계가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조용한 사직' 자체는 법으로 문제 삼기 어려운 회색지대에 속한다.
물론 사규나 징계로만 다룰 문제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용한 사직'은 조직 몰입도의 약화, 즉 구성원들이 회사와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고 있다는 신호다. 이는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장시간 근로, 불투명한 보상체계, 공정성에 대한 의문, 경직된 조직문화 같은 구조적 원인이 누적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태도 문제로 치부하면 사태는 더 악화될 수 있다.
기업도 대응 신중해야
일부 기업은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조용한 해고(quiet firing)'라는 방식을 택하기도 한다. 공식적인 해고 절차를 밟지 않고, 근로자를 승진·보상에서 배제하거나 핵심 업무에서 소외시키며, 소통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회사를 떠나게 압박하는 것이다.하지만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부당해고 등의 법적 리스크를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직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최선의 해결책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를 밀어내는 방식으로는 기업이 직면한 구조적 과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는 더 큰 비용과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십의 태도가 아닐까.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헌신을 강요하기보다 구성원과의 대화와 피드백을 통해 협력적 관계를 형성할 때 조직 내 신뢰가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조용한 사직'은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저성장 시대가 기업에 던지는 질문이다. 과거와 같은 성장과 보상이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조직 몰입을 이끌어낼 것인지가 과제로 남는다. 금전적 보상의 한계를 인정하고, 일의 의미, 성장 기회, 유연한 근무 환경 등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때, 조용한 사직 시대를 넘어서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