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개월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상파울루 미술관(MASP)은 클로드 모네 전시회로 뜨거웠다. 5개 섹션(‘생태계로서의 센 강’ ‘모네의 배들’ ‘안개와 연기’ ‘사냥꾼 모네’ ‘지베르니: 통제된 자연’)에 32점의 그림이 꽉 찬 구성으로 걸렸고 50만 명의 관객이 전시장을 다녀갔다. 해당 기간, 지상 2층에서 모네가 어마어마한 그 인파를 감당했다면 그들로부터 똑같은 관심을 얻어낸 젊은 작가가 지하 1층에 있었다. 이는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예술 감독으로도 활약한 바 있는 현 상파울루 미술관장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의 기획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연중 두 개의 대주제 아래 지하 1층의 전시장을 신진 작가 발굴과 지원에 전적으로 내주는 미술관의 일관된 정책 덕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25년의 주제는 ‘LGBTQ+’, 그리고 ‘생태의 다양한 국면들’이다. 이번 ‘생태’ 작가는 훌다 구스만이었다.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
녹음이 우거져 있다. 그림의 윗부분 3/4을 울창한 수목이 차지하고 있다. 목가적 풍경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화가의 의도를 상상해보다가 나무 꼭대기에서 눈길을 천천히 거두어 기둥을 타고 시선을 빠르게 아래로 내리면 땅에는 의외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숲이 적당히 품은 땅을 강줄기가 휘감아 나가는 가운데 인물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예술가로 보이는 이가 나무 둥치를 끌어안고 있고 아이는 강아지 배를 베고 누웠다. 많은 사람이 춤을 춘다. 혼성, 동성의 커플들이 춤추고 유혹하고 각종 포즈를 취한다. 소, 개, 아이들이 즐겁게 어울린다. 누구는 백조처럼 물속에 있고 누구는 키스를 나누며 어떤 이는 옷을 대충 입었고 어떤 이는 완전히 벗었다. 날아갈 듯한 기쁨 속에 있는 이들로 화면이 헐떡거린다. 쾌락과 향락의 초상이다.
, 2020, acrylic gouache on linen, 48 x 78인치(121.9 x 198.1cm), 브라질 상파울루 미술관(MASP) 소장품">
훌다 구즈만 <Come Dance"-asked Nature Kindly (와서 춤춰-자연이 다정히 청했다)>, 2020, acrylic gouache on linen, 48 x 78인치(121.9 x 198.1cm), 브라질 상파울루 미술관(MASP) 소장품
이 그림 <와서 춤춰-자연이 다정히 청했다>(2019-20)는 상파울루 미술관이 2020년에 기획했던 <춤의 역사> 전시를 위해 제작되었다. 전시는 비록 팬데믹 국면으로 취소되었으나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훌다 구즈만은 자신이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을 화면에 구현할 확실한 방법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여기가 출발점이다.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구즈만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을 레퍼런스 삼았다. 그림에서 형상의 ‘크기’는 그것이 지닌 의미, 가치와 맞먹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보스에게서 인물의 크기와 내러티브 구조를 파악해 스스로 채택한 풍경과 인물에 열대의 속성과 현대적 전망을 새겨넣었다.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환희에 차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미스터리’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초록의 분량이 3/4이라는 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볼 일이다. 깨알같이 작지만, 하나도 같은 동작·상태 없이 각자의 생명을 살아내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충격을 주는 풍속화-해괴한 꿈을 꾸는 것 같다가도 기이한 그 망상 속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화가의 상상력이 압도적인- <쾌락의 정원>처럼 구즈만은 ‘발견을 위한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훌다 구즈만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 산토도밍고 출신이고 1984년생이다. 수도인 산토도밍고와 북동부 해안가의 열대우림 지역인 사마나를 오가며 작업한다. 구즈만의 그림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알록달록 채색된 사람, 동물, 의인화된 식물, 그리고 상상의 생물체들이다. 유럽의 풍경 화가들이 주목했던 ‘신대륙’의 ‘이상화된’ 이국적 풍경들은 식민주의의 폭력성을 거세함으로써 식민 착취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당했다. 16세기부터 유럽의 식민주의 팽창은 그렇게 가속화 했다. 구즈만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상화할 바른길을 찾고자 했다. 앙리 루소, 고갱의 파라다이스 판타지에 대응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카리브 유산과 연결된 질문을 자주 던진다. 초현실주의, 멕시코 벽화주의, 카리브해 민예 전통 위에 선 구즈만의 정글 그림들은 신화의 왕국으로 가는 문을 연다. 자연에 부과된 온갖 미사여구를 벗어 던지고 우리 안에 있는 보다 거친 본능을 쏟아놓고 교감할 대상으로 그것을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밤하늘의 아늑함과 조명에 비친 숲의 화려함이 지배하는 <바테이에서의 파티>는 나신의 묘사가 한층 노골적이다. 처음엔 인물들의 벗은 모습과 그들이 취한 과감한 포즈에 놀라다가도 이들이 둘 혹은 셋 또는 넷을 이뤄 만들어내는 어떤 이야기에 빠져들어 정신없이 보게 된다. 만지고 과시하고 비틀고 응시하고 타고넘는 순간들이 포착된다. 구즈만은 주변 인물을 실제로 관찰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이를 ‘인형 놀이하듯’ 화면에 배치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생생한 인물들이고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 한 그루, 집 한 채가 모두 그렇다. 옴니버스식 구성의 장편 서사물인 셈이다. 각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전개되나 전체적으로 공통된 세계관과 배경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실제로 전시실에서는 쪼그리고 앉아 렌즈를 최대한 가까이 대고 부분 확대 사진을 찍기 위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이나 훌다 구즈만의 그림이나 서로 경쟁이 붙는다. ‘바테이’는 카리브해 지역, 특히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사탕수수밭 주변에 있는 노동자 거주 구역을 의미한다. 옛 타이노 선주민들이 사회적으로 교류하던 광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억압된 카리브해 농장 거주민들의 거주지를 뜻한다.
<아몬드 나무를 그리다>(2020)는 스튜디오에서 나무를 그리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 공간적 트릭인 ‘미장아빔(mise en abîme, 심연에의 배치)’을 통해 구현된다. 꿈같은 현실이랄까, 현실적 모순이 형상화된다. 미장아빔이란 무한히 반복되는 시퀀스를 암시하는 말로 이미지 복사본을 배치하는 기술이다. 그러니까 그림 속의 그림이다. 영화이론, 문학이론에서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가리킨다. 앙드레 지드가 1893년 일기에서 처음 사용했다. 회화에서는 거울을 통해 이미지를 반사 시키거나 그림 속에 현실과 같은 상태를 그려 넣어, 화가의 자기 반영적 의식을 드러내기도 하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그림 속에서 구즈만은 밤에 자화상을 그리는데, 괴로워하듯 웃으면서 고개를 뒤로 젖힌 모습이다. 구즈만이 작업실 창문 너머 울창한 나무들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기어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자연계의 복잡성과 인간이 자연계에 더 단순한 질서를 부여하려는 노력 사이의 단절이 아닐까 한다.
<날다>(2021)에서 구즈만은 따스한 기운을 내뿜는 불빛을 향해 몸을 내미는 인물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화면의 왼쪽 더 너른 곳에는 그녀를 초대하는 듯 공중을 도는 새들 무리가 있다. 샤갈의 ‘붉은 수탉’이 전쟁에 대한 경고와 생명력이라는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하듯, 새가 맴도는 밤의 자연은 낯설게 두렵기도, 아늑하게 포근하기도 한 것이다. 구즈만 자신도 명백히 밝힌다.
“(나는) 우리의 상호 연결성을 깨닫게 하는 ‘교감의 감각’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이는 인간, 동물, 환경 사이의 균형에 대한 존중에 기반하며 다분히 명상적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그 긴급성을 촉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