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통한 이해의 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형식
[arte] 신승민의 그 작가의 TMI
출간 동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구병모 새 장편소설 <절창> 화제
상처로 타인 읽는 여인과 구속자
진심과 오독 사이, 사랑을 헤매다
출간 동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구병모 새 장편소설 <절창> 화제
상처로 타인 읽는 여인과 구속자
진심과 오독 사이, 사랑을 헤매다
“이리로 와. 네가 직접.”
피 흐르는 흰 손을 내밀며 나직하나 타협 없는 음성으로 명령하고 기다렸던 언젠가처럼, 오언은 제 가슴의 상처로 다가오라고 말하고 있었어.
“내용은 줄줄 읊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읽어.”
내게 정말은 무엇을 바라며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는 아무리 진부하기 그지없더라도 자신의 언어로 직접 들려주어야 한다는, 태곳적 이후로 인간의 기초적이면서도 견고하며 그나마 타격 정밀도가 높은 의사소통 방식의 존재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는 말했어.
“줄곧 내 옆에 있으면서 나만,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를……”
- 구병모 장편소설 <절창>, P.266
지난 9월 17일 출간 동시,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오른 구병모의 신작 장편 <절창>은 참 기이한 소설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이야기의 맥은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인물들의 번다한 속내만 허공에 부유한다. 살인자가 끝내 밝혀지지 않은 비극의 현장을 ‘페이드 아웃’으로 마무리하는 영화의 결말처럼 여운이 머릿속에 감돈다. 끝까지 기묘한 긴장감으로 넘실댔던 이 한 권의 텍스트를, 필자는 진정 ‘오독’한 것일까. 그 오독마저도 독자를 사로잡은 구병모의 계시였다면?
소설의 제목 ‘절창’은 ‘칼이나 유리 조각 따위의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切創)’를 뜻한다. 타인의 상처를 통해 마음을 읽는 젊은 여인(아가씨), 그를 감금하고 범죄 사업에 이용하는 보스(문오언), 보스에게 남편을 잃은 중년 여인(독서 선생)의 삼각 구도가 서사의 중심이다. 불우한 청소년기를 겪은 아가씨는 생활고에 못 이겨 문오언에게 의탁하고, 문오언은 아가씨의 ‘마음 독해 능력’을 악용해 사업의 걸림돌들을 처단해 나간다. 독서 선생은 문오언의 대저택에 감금되다시피 한 아가씨를 구출하려다 숨을 거둔 기타 선생의 부인으로, 남편의 복수를 위해 아가씨의 가정교사로 위장 취업해 저택에서 탈출극을 감행하는 인물이다.
<절창> 서사의 백미는 문오언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를 적극적으로 파멸시키려 하지 않는 아가씨, 아가씨를 구속하고 착취하지만 핍박하거나 학대하지 않는 문오언, 그 둘의 이상야릇한 관계 설정에 있다. 문오언은 자해를 일삼으면서까지 ‘자신의 마음’도 읽어달라며 아가씨에게 접근하고, 아가씨는 자신을 탐닉하려는 문오언의 집착을 경멸하며 밀어내지만, 그와의 관계를 원천 차단하지는 않는다. 적과의 동침 혹은 기묘한 동거, 둘의 마음은 증오일까 사랑일까.
읽지 마.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마. 그 외침은 꿈속이었는지 아가씨에게는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아가씨의 손은 눈 감은 채 머리를 떨어뜨린 그의 상처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뺨을 쓸며 목으로 내려갔습니다. 아가씨가 그에게 나직하게 말을 거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가 한순간 주파수에 잡힌 유령의 속삭임인 듯했습니다. (…) 나는 그 짧은 동안에 보아버린 아가씨의 옆얼굴을―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상처가 뭐라고 말해? 너는 그에게서 무엇을 읽었어?…… 이 물음 또한 현실과의 점착력을 잃은 의식 한가운데서만 메아리쳤을 겁니다.
- 구병모 장편소설 <절창>, P.330-331
구병모는 <절창> 출간 직후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진심 또는 소통이라고 주장하는 것들도, 어쩌면 아전인수격으로 타인을 오독한 결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실제 언어학적 차원에서도, 인간의 의미 규정을 기반으로 한 단어들의 연속된 구절은 대화의 맥락에서 볼 때 본래의 뜻을 전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기표들의 늪에서 기의는 자꾸만 ‘미끄러진다’는 것. 프랑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이 같은 현상을 ‘차연(차이+지연)’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단어들에 주입된 의미의 꼬리물기(차이)로 인해, 의미의 견고한 조합으로 성립되는 ‘이해’는 계속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구병모는 이 같은 ‘언어적 차연’과 사회 현실에서의 ‘감정적 불통’ 등 숱한 난관이 상존하더라도 타인의 마음을 해독하고 나아가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타인을 줄곧 오독하지만 이해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는 존재가 인간이고, 그 시도의 원천적 에너지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애끓는 사랑의 진전이 비틀리고 소란스러워질 때, 마침내 발효의 상징인 ‘누룩’으로서 ‘상처’가 발현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 누군가의 사랑은 깊은 상처 속에서 나타나고, 상처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 ‘수수께끼’일지 모르겠다.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 구병모 장편소설 <절창>, P.344
구병모의 소설은 견고한 미로와도 같다. 독자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서사의 흡입력, 독자를 유인하다 이내 막다른 길로 몰아버리는 행간의 장치들이 정교하다. 독자는 구병모의 숨겨진 일격에 당해 문맥의 길을 잃어버리고 당황한다. 텍스트의 세계는 어느덧 아리송해지지만, 점입가경인 만큼 더더욱 이탈할 수 없고 끝까지 읽게 된다. <절창>에서도 작가는 이야기의 숨겨진 내막이나 진행 방향을 독자가 오독할 수 있게끔 일종의 함정을 두루 설치해놨다고 한다.
소설의 서사는 ‘아가씨의 술회’와 ‘독서 선생의 관찰’로 교차 편집되며 이어지는데, 서술 시점에 따라 특정 내용들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 소설, 그 책 읽기의 어려움 자체를 또한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절창>은 ‘메타소설’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그가 서사의 구조와 흐름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며 이야기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저력은 ‘문체의 기술’에서 나온다고 하겠다. 집요한 묘사와 구체적 비유로 탄탄하게 직조된 특유의 만연체, 위악과 능청을 거치며 철두철미하게 부여되는 개연성, 내면을 넘어 실상을 해부하는 냉소적 유머는 흔들개비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며 독자들을 포섭한다.
여성 독자, 20대 젊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 구병모는 작품마다 논리와 반전을 변주하며 주도면밀한 서사 장악력을 발휘해 팬덤을 형성했다. <절창> 출간 이후 독자들 사이에서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 ‘감각을 전복시킬 파격의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더해지기도 했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2008년 판타지 성장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 데뷔했다. 보통의 청소년문학답지 않은 어두운 분위기, 시니컬한 문체, 충격적 사건의 삽입으로 평단을 놀라게 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 냉철한 시각으로, 자극적 소재도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고도의 필력이 그만의 강점이었다.
이후 구병모는 슬픈 운명을 딛고 자유를 꿈꾸는 아가미 소년을 그린 잔혹동화 <아가미>, 주택 공동체에 모인 이웃들 간의 허위의식을 묘파한 <네 이웃의 식탁>, 꿈과 현실을 분간할 수 없는 피로세계를 고발한 <상아의 문으로> 등 다작의 장편소설을 펴내며 입지를 다진다. 재난 같은 삶의 연속인 현대사회를 직격한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실존적 불안에 휩싸인 여성의 삶을 고찰한 <단 하나의 문장> 등 단편 소설집도 주목받기 시작한다. 성장·SF·판타지·스릴러·리얼리즘 등 대중과 순수를 전방위적으로 오가며 자신만의 작풍을 구축한 구병모는 오늘의작가상, 김유정문학상, 김현문학패 등을 수상하며 ‘실력파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라선다.
구병모는 지난 5월 파과 상영 기념 알라딘 유튜브 채널 ‘만권당TV’ 인터뷰에서 “데뷔하고서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위저드 베이커리>와는 톤이 다른 새 장편소설을 곧바로 구상하려 했는데, 그중 하나가 킬러 이야기였다. 그 당시 유명 킬러 영화 ‘레옹’ ‘니키타’와는 (캐릭터 설정 차원에서) 조금 다른 접근을 해보려 했다”며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가, 탁월한 킬러를 멋지게 다룬 김언수 선생님의 (2010년 출간된 장편) <설계자들>이 나와” 실기한 뒷이야기를 술회하기도 했다.
스무 살 이전의 기억은 되도록 풀어놓지 않는다는 구병모. 본명(정유경)을 드러내지 않기도 하는 그의 말하기 힘든 성장기 트라우마는 내면의 문학적 재능을 자극했다. 초등학교 5학년 12살 때부터 문방구에서 200자 원고지 100장을 사서 소설을 쓰고 안데르센 문고본 등 동화를 탐독했다. 잘사는 친구 집 서재에 꽂힌 책들을 빌려다 읽기도 했고, 그의 문재를 일찌감치 간파한 담임선생님에게 <유리알 유희> <인간의 굴레> 등 외국 고전을 선물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MBC 청소년 문학상’ 응모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등단 도전에 나섰다. 고3 진학 직전부터 33세 데뷔할 때까지 15년간 매년,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근무할 때도 끊임없이 신춘문예에 소설을 냈다.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남 진주에서 살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며 프리랜서로 일과 창작을 병행한 끝에 2008년 마침내 등단의 영예를 안게 된다.
태생이 꼼꼼하고 계획적인 구병모는 아침 6~7시면 노트북을 켜고 커피 한 잔으로 집필을 시작한다. KTX를 타고 장시간 이동해야 할 때면 ‘A4 용지 크기’의 좁다란 기차 간이책상에 노트북을 올리고 글을 쓰기도 한다. 서재를 갖게 된다면 ‘지귀옥(종이 귀신의 집)’으로 이름짓겠다던 그는 실제 소설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발 디딜 틈 없는 골방에서 논문 등 자료 더미를 파헤치고 디테일을 보강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이 아닌 노력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던 구병모. 그의 목표는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듯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 단번에 읽을 수 없는 문학’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무수한 말들의 향연을 구사하다 끝내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가로 존재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으로는 ‘빨리 읽히고 가독성이 좋기만 하면 그것만이 좋은 글인가?’라는 고민을 그때 처음 단편소설 쓰면서부터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쓰는 이야기는 대체로 다 알기 쉽고 뻔하고 고도의 비유와 상징이 들어간 게 아닌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좀 천천히 읽고 좀 더 생각해보게 되고, 어떤 상황을 한 단면만 보지 않고 여러 가지 측면을 생각할 수 있게 될까. 한마디로 어떻게 해야 가독성을 떨어뜨릴까? 고민하다가 나온 게 그런 정서 불안의 문장들로서…… 네, 결론은 정서 불안 맞아요. 그리고 그로 인한 실패는 필연적이고 실패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담: 들끓는 분노, 분기(分岐)하는 상상력’,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 2015년 겨울호
편혜영이 무음과 무채색의 잔혹으로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의 반복을 지적했다면, 구병모는 이 세계가 은닉한 비참과 상처를 헤집어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의 근사한 위계를 무너뜨린다. 집요한 개연성의 구현과 정치한 핍진성의 현시, 관찰자에서 집도의로 신출귀몰하는 그의 첩첩 문장 속에서 우리는 출구를 찾다가, 잃다가, 그 길 위에 잠든다. 이제 구병모의 추적은 <파과> 속 늙은 킬러 여인의 칼날처럼 노련하다가도 어딘가 무뎌지고, <절창>의 페이크북 안에 든 권총처럼 탈출의 수단이 되다가도 이내 무용해진다. 예정된 실패의 기록은 절망의 여정만을 계획하는가. 부단한 이해의 노력은 곧잘 오해로 변질하리니, 인간다움은 그저 갈등과 투쟁의 가식일 따름인가.
생각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냉소적 작가 구병모, 그는 예리한 욕망으로 가혹하게 벌어진 상처를 통해 선악을 재단하지 않고 그저 ‘벼랑 끝에 선 이들의 절박함’만을 형상화한다. <절창>의 아가씨는 보육원에서 성장해 취업시장의 갑질과 모멸을 견디다 못해 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문오언 역시 잔인무도한 카리스마로 아가씨를 ‘가스라이팅’ 하지만, 한편으론 아가씨에게 진심을 읽어달라며 애원하는 ‘마음의 병자’에 불과하다. 독서 선생 역시 천신만고 끝에 복수의 뜻을 이뤘다지만 교감할 사람 하나 없이 홀로 남겨졌다는 점에서 일련의 행위가 허무할 따름이다. 그래서 구병모는 논한다. 끝은 공허하기에 보편적 희망을 희구할 순 없어도 각자의 희망을 개척해온 절실함만은 잃지 말라고.
“그러면 결국 지금까지 희망을 믿지도 않으면서 한 조각의 희망이 남아 있는 소설을 맘에도 없이 썼단 말이냐 같은 오해를 받는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세상에 증오밖에 남지 않은 상태를 그려낸 작가의 마음속이 일상적인 사랑과 평화로 가득할 수도 있는 일이에요. (중략) 소설가라고 해서 반드시 자기가 믿는 일이나 가치만을 형상화하리라는 법은 없지요. 그러니까 저 개인은 인간에게 희망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의 희망을 빼앗고 싶지는 않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했습니다. 희망이 만약 있다면…… 그 정체는 끈질김 그 자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소설의 결말에 살짝 담겨 있긴 한데 그 역시 제가 전적으로 찬동한다기보다는 직업정신의 발로라고 하겠습니다.”
- 문학동네 <있을 법한 모든 것: Attention Book> 인터뷰 중
생면부지의 타인 앞에서 한껏 피를 머금고 제 속살을 내비치는 상처는 사랑의 수수께끼이자 관계의 지옥으로 인도하는 이승의 묵시록이다. 상처 입은 타인을 남김없이 읽을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 속에서 <절창>의 아가씨는 과연 문오언에게 진실만을 전해줬을까. 때로 진실이 아님을 간파했음에도, 문오언은 아가씨를 향한 집착 때문에 몰이해의 늪에서 허우적거려 온 건 아닐지. 왜곡된 관계와 거듭된 오해의 끝은 결국 파국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절박하게 시도하고 처절하게 노력하는 것. 그 끈질김 자체만이 우리가 인간다움으로, 희망으로 부를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오독이든 진심이든, 서로의 상처와 직면하고 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해 나가는 한 걸음 두 걸음…그것이 구병모가 타인을 읽는 유일한 마법이라 할 것이다.
신승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