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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민족을 지탱한 그 감정…화가와 시인은 예술로 고향을 되살렸다
광복 80주년 특별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
고향, 조국의 의미 되새긴 회화 등 210여 점 소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오는 11월 9일까지
고향, 조국의 의미 되새긴 회화 등 210여 점 소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오는 11월 9일까지
여기 근대 한국화를 대표하는 화가 청전 이상범이 1937년 그린 ‘귀로’가 있다. 10첩 연폭의 커다란 산수화엔 꼬부라진 외길을 따라 소를 끌고 산골 초가집으로 돌아가는 촌부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어딘가 스산하고 적막해 보인다. 비슷한 시기 시인 정지용이 쓴 시 <고향> 한 수를 얹으면 그림의 분위기가 와닿는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광복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고단했는지, 생경한 고향 산골을 바라보던 예술가들은 어떤 감정이 차올랐을지가 느껴진다.
빼앗기고 되찾은 땅
전시는 향토 애향 실향 망향 등 4부로 구성됐다. 전반부는 근대미술과 문학에서 고향이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겪는 과정이 어떻게 표현됐는지를 보여준다. 이 중 1부는 고향을 문명에 물들지 않은 평화롭고 순수한 전원의 개념으로 봤던 ‘향토색 회화’, 반대로 우리 땅을 민족 정서를 고취하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한국적인 색깔을 발견하려고 애썼던 화가들의 작품들이 대비를 이룬다.
2부는 광복 이후 화가들이 수십 년간 잃었던 한국 전통의식을 풍경화로 되찾으려 했던 실험이 돋보인다. 2부 역시 1부처럼 이상범의 회화 ‘효천귀로’로 시작한다. 1945년 8월 15일 광복되는 날 그린 것으로알려진 이 그림은 새벽안개 자욱한 들판 언덕을 넘어 소를 끌고 돌아가는 광경을 그렸다. 1부의 ‘귀로’와 달리 새벽기운 속 여명이 움트는 듯한 기운생동이 희미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광복 전후 우리 산천을 바라보는 작가의 달라진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폐허와 그리움의 땅
광복의 기쁨을 얼마 누리지도 못한 채 맞닥뜨린 분단의 현실은 당대 화가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안겼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분단의 철조망이 끊어버린 고향으로 가는 길은 비극적 영감을 줬다. 이응노가 동양화가로는 드물게 동족상잔의 비극과 도시의 참상을 다룬 ‘폐허의 서울’(1950), 뛰어난 균형감각이 빚은 가지런한 정물화로 유명한 도상봉이 폐허가 된 명동성당 일대에서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을 그린 ‘폐허’(1953)는 풍경화가 시대의 기록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