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는 로맨스인데 제목은 ‘물질주의자’, ‘속물주의자’ 등을 뜻하는 <머티리얼리스트(Materialists)>다. 모든 것이 수치로 환원되고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매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란, 또 결혼이란 무엇인지를 숙의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이를 만든 감독은 셀린 송이다. 전작 <패스트 라이브즈>(2023)는 캐나다 이민으로 한국에서 헤어졌던 남자친구와의 재회와 이별을 다룬 자전적 내용이다. 운명과 인연 같은 동양적인 개념을 반영하면서 호평을 받았다.
정작 루시 본인은 남자친구가 없다. 있기는 했다. 연극을 하는 존(크리스 에반스)이다. 젊었을 때야 돈일랑 나 몰라라 꿈을 향한 전력 질주가 보기 좋았어도 결혼 적령기에 들어서면서 삶이 그렇게 직선주로처럼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주차비 없다고 무료 주차장을 찾다가 기념일에 예약한 레스토랑 노쇼를 서슴지 않는 남자라면 미래가 없다. 그래서 헤어졌다. 이후로 독신주의자가 됐는데 ‘유니콘’이 찾아왔다. 잘생겨, 키도 커, 예의 바르고, 연봉도 억대야, 해리(페드로 파스칼)가 직진으로 달려드니 루시는 한여름 아스팔트 위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든다.
사랑이냐, 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속 주인공처럼 양자 선택의 모진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을 다룬 로맨스물은 이전에도 많았다. 대개는 현실의 감각을 배제하고 판타지를 부각해 조건보다 사랑을 택하는 대책 없는 해피엔딩의 수순으로 환상을 부추겼다. 셀린 송의 멜로드라마가 설정의 출발점은 같아도 목적지가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사연을 전개하니 극 중 관계의 맺음이 관객의 예상치를 어느 순간 비껴갈뿐더러 결말도 희극인지, 비극인지를 따질 수 없어 여운을 남긴다.
계약은 거래 성사를 확인하게 해주는 약속의 물리적 증거다. 법적 효력을 갖는 계약이라는 개념이 지금과 다르게 희박했던 선사 시대에는 어땠을까. 그때의 결혼은 외모와 재력과 사회적 지위 등등을 따져 거래하듯 서로의 조건을 교환하는 지금과 다르게 순수했을까. <머티리얼리스트>의 오프닝은 아직 언어가 발달하지 않아 행위로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원시인 남녀가 등장해 어떻게 부부로 연을 맺는지를 보여준다. 지금처럼 성대한 형태는 아니라고 해도 남자는 꽃반지를 증표로, 뼈 한 무더기를 예물로 가져와 평생을 약속하고 여자는 이를 받아들인다.
오가는 물품의 형태와 규모와 이를 돈으로 환산할 수단이 없었을 뿐이지 태초부터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하여 무언가를 주고받는 교환이었다. 물론 사랑이 없더라도 각자의 이해에 따라 결혼이 이뤄지기도 한다. 루시가 커플 매니저로 이어주는 짝들이 거의 모두 그렇다. 스물여섯은 좀 어리고 스물여덟은 좀 많으니까 스물일곱의 여자가 적당하겠네요, 180cm가 넘는 키의 남자라면 결혼 시장에서의 가치는 두 배가 올라가죠, 저는 이 정도의 조건을 요구해도 될 자격이 있어요 등등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으려는 장사꾼처럼 상대를 물색하고 가치를 살핀다.
그렇다면 왜 사랑하고 결혼하는 걸까. 거기에 의문을 표하는 게 엔딩크레딧 장면이고 그걸 보고 있으면 사랑에 관한, 결혼에 관한, 루시와 루시가 선택한 결혼 상대와의 미래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가며 로맨스를, 그 감정을, 그에 수반한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셀린 송 감독이 <머티리얼리스트>로 관객에게 의도하는 바다. 사랑은, 결혼은 그만큼 복잡한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