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은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박애(Fraternité)의 정신과 프랑스가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한 역사를 상징하는 날이다. 프랑스 바스티유 데이(Bastille Day)라고도 불리는 페트 내셔널(Fête Nationale)은 바스티유 감옥 습격과 연방의 축제라는 두 역사적 사건을 기념한다. 이날은 프랑스 국민이 왕정과 귀족제에 맞서 혁명을 일으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보낸,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되새기는 날이다.
모네 <기로 장식된 몽토르귀유 거리>(1878) / 그림. ⓒMusée d'Orsay
1789년 7월 14일, 왕권의 억압을 상징하던 바스티유 감옥을 파리 시민들이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고, 자유와 시민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1년 후인 1790년 7월 14일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국민 단합을 기념하는 연방의 축제가 열렸다. 이날은 프랑스 전체가 화합을 다짐했던 프랑스 역사상 가장 뜻깊은 날이 되었다.
다른 국경일과 달리 7월 14일 행사에는 장기간의 준비가 뒤따르며, 당일뿐 아니라 다음 날 새벽까지 다채로운 일정이 이어진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14일 오전에 열린다. 행사 며칠 전부터 퍼레이드를 위해 샹젤리제에는 임시 철제 관람석이 설치되고 프랑스 공군 순찰대의 예행연습으로 항공기 소리가 파리 하늘을 가득 메운다.
올해 군사 퍼레이드에는 군인 7005명(그중 5618명 도보 행진), 항공기 63대, 헬리콥터 33대, 200명의 기병대가 참가하여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어린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들,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샹젤리제는 아침 일찍부터 부산해진다.
7월 첫째 주, 학생들의 여름 방학과 함께 프랑스 전역에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휴가지에서, 또 누군가는 일상 속 도시에서 불꽃놀이와 음악이 어우러진 밤을 맞으며 모두가 축제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특히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형 콘서트와 화려한 불꽃놀이는, 프랑스의 예술적 감성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결합된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에펠탑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 / 사진. ⓒYann Caradec, 출처. 위키피디아
[2024년 7월 14일 진행된 파리 하계 올림픽 오픈 기념 불꽃놀이 영상]
소방관 무도회
매년 7월 14일(지방에 따라 13일에 진행) 저녁, 프랑스 전역의 소방서에서는 발 데 뽐삐에(Bal des pompiers)라 불리는 무도회가 열린다. 이름 그대로 일반 시민들에게 소방서의 문을 개방하여 소방관들이 주최하는 댄스파티이다.
프랑스 소방관들은 빛나는 은색 헬멧과 유니폼 덕분에 건강하고 섹시한 멋진 남성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렇게 매력적인 소방관들이 주최하는 7월 14일의 무도회는 매년 많은 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전통 행사가 되었다.
소방서의 중정은 이날을 맞아 마치 클럽처럼 꾸며진다. 라이브 밴드의 연주나 DJ의 음악에 맞춰 시민들이 춤을 추고, 소방관들 역시 무대에 올라 춤을 추거나 소방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한다. 추억이 깃든 프랑스 샹송과 현대적인 댄스 음악이 어우러져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릴 수 있는 즐거운 7월 14일 밤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소방관 무도회에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입장료는 없지만, 기부금 형식으로 자율적인 모금이 이루어진다.
소방관 무도회는 1937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한 소방서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을 계기로 탄생하였다. 이후, 이 전통은 프랑스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했으며, 오늘날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국민 축제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행사는 시민들과의 유대 강화, 소방관 이미지 개선, 그리고 기부금을 통한 장비 보강 및 복지 향상을 목적으로 열린다.
7월 중순에 프랑스를 방문하게 된다면, 머무는 지역의 소방관 무도회에 참가해 보길 권한다. 여름밤의 축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경험이 될 것이다.
Paul Héneux, 1937년 첫 번째 소방관 무도회가 열린 역사주의 (historicism) 스타일의 몽마르트르 까르뽀(Carpeaux) 소방서, 중정에 주차되어 있는 소방차가 보인다 / 사진. ⓒ정연아프랑스 공화국의 상징 마리안느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영국의 브리타니아처럼, 프랑스의 국가 상징 여성상은 마리안느이다. 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을 끝내고 공화국을 세운 프랑스는 자유와 민주주의, 공화주의 정신의 상징으로 마리안느(La Marianne)를 선택했다. 마리안느는 당시 프랑스에서 흔한 대중적인 여성 이름이어서 채택되었다고 한다.
마리안느는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의 마스코트로 사용되었던 프리지앙 모자(phrygien)를 늘 착용하고, 때로는 프랑스 국기 색인 파랑, 흰색, 빨간색의 리본을 어깨에 걸치고 단호하면서도 고결한 표정으로 자유, 공화주의, 이성, 정의를 상징한다.
로마 시대 자유민(freed slaves)이 해방되었을 때 쓰던 필루스라는 모자와 프랑스 대혁명(1789) 당시, 혁명가들도 빨간색 프리지앙 모자를 쓰고 권력과 왕정을 반대하여 그때부터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마리안느는 프랑스 예술사 속에서 국가의 이상과 정신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상징으로 자주 등장했다.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린 외젠 들라크루아 (Eugène Delacroix)의 대표작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에서 프랑스 국기를 들고 민중을 선도하며 자유, 혁명, 공화정을 외치는 마리안느는 자유의 상징인 프리지앙 모자를 쓰고 있다.
외젠 들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마리안느의 흉상은 프랑스의 모든 공공기관에 설치되어 있으며 정부에서 발행하는 공식 문서에도 자주 사용된다. 또한 동전과 우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마리안느 흉상은 프랑스 유명 여배우를 모델로 제작되었다. 이는 시대 변화에 따라 프랑스 사회의 이상적인 여성상과 가치관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1969년 자유롭고 대담한 이미지의 브리짓 바르도가, 1985년 우아하고 지적인 여성상인 카트린 드뇌브가, 2000년 자연미와 프랑스적 미의 상징인 라에티시아 카스타가 모델이 되었다.
마리안느는 오랜 기간 프랑스 화폐 디자인에 등장해 왔으며, 대통령 임기마다 새로운 마리안느 우표 시리즈를 제작하는 전통이 있다. 각 대통령은 자신이 생각하는 공화국의 이미지에 맞는 마리안느 디자인을 선정한다고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래에 대한 확신과 친환경 가치를 담은 미래의 마리안느를 선택했다.
[좌] 마크롱 대통령이 선택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마리안느 우표, 2023년 / 사진. ⓒLA POSTE, 그림. Olivier Balez, 판화. Pierre Bara [우] 마크롱 대통령이 선택한 마리안느 우표, 2018년 / 사진. ⓒLA POSTE, 그림. Yseult “YZ” Digan, 판화. Elsa Catelin
마리안느는 단순한 프랑스의 상징을 넘어, 프랑스가 지켜 온 자유와 공화주의의 역사적 정신의 형상화이다. 오늘날에도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Place de la République)의 마리안느 청동상 아래서 프랑스 공화국의 공식 모토인 '자유, 평등, 우애'를 외치며 파리 시민들은 시위를 벌이곤 한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1880년 7월 14일 석고 모형, 1883년 7월 14일 최종 청동 모형 준공 / 사진. ⓒPierre-Selim Huard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