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셰익스피어보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비슷한 말을 100년쯤 전에 이탈리아 시인이 한 적이 있다. ‘기관총처럼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자동차가 사모트라케가 빚은 승리의 여신상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이다. 그 시인은 바로 미래주의(Futurism)를 이끈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이다. 마리네티에게 자동차는 산업과 기술을 상징했다. 그는 새로운 미학을 추구했다. ‘기술과 기계’ 그리고 ‘에너지와 속도’를 아름다움의 원천으로 본 것이다. 그가 창시한 미래주의는 이탈리아 산업도시인 밀라노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밀라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급속도로 산업화한 도시이다. 19세기 중반부터 기계와 섬유 산업이 빠르게 발달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경제와 기술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이런 밀라노였기에 미래주의의 심장이 될 수 있었다.
마리네티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밀라노 중심에 자리 잡은 노베첸토미술관(Museo del Novecento)은 여러 미래주의 작가의 수작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고 나서 밀라노가 미래주의의 중심 무대였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노베첸토미술관은 밀라노의 명소인 두오모성당 옆에 있는 아렌가리오궁(Palazzo dell’Arengario) 안에 있다. ‘노베첸토’는 이탈리아어로 ‘1900년대’라는 뜻이다. 미술관의 이름부터 20세기 이탈리아 미술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노베첸토미술관 건물 / 사진. ⓒEmanuela Terzi, 출처. 위키피디아
20세기 초 유럽 각국에서는 아방가르드 미술이 발전했다. 아방가르드는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미래주의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시절 이탈리아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갈망했다. 외부에서는 이탈리아를 고대와 중세를 간직한 낭만적 공간으로 바라보았다. 반면 이탈리아 안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 사이에는 ‘과거’에 매달리는 이탈리아 예술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그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미래주의가 꽃을 피운 토양이 된 것이다.
노베첸토미술관의 컬렉션 가운데 가장 돋보인 것은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의 작품이었다. 미술관은 보치오니 작품만을 위한 전용 전시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 이 공간은 보치오니의 대표작인 <공간에서의 독특한 형태들의 연속 (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1913)을 전시하고 있다. 팔다리를 회오리바람처럼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형태로 표현한 것이 강렬한 작품이었다. 조각이라는 정지한 매체에 역동적 움직임을 담으려는 보치오니의 시도를 느낄 수 있었다.
보치오니 전시공간 / 사진. ⓒThomas Pagani, 출처. Associazione Abbonamento Musei 사이트
보치오니는 ‘역동성’을 신체의 움직임에서만 찾지 않았다. 그는 정신적 에너지가 갖는 역동성에도 주목했다. 이런 의도는 그가 1911년에 제작한 회화 연작인 <마음의 상태 (States of Mind)>에서 돋보인다. 보치오니는 기차역에서 영감을 받아 이 연작을 제작했다고 한다. <마음의 상태> 연작은 <이별 (The Farewells)>과 <떠나는 이들 (Those Who Leave)> 그리고 <남은 이들 (Those Who Stay)>이라는 세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 그는 기차역에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경험하는 여러 역동적 감정을 선과 색채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왼쪽부터) 보치오니의 <이별>, <떠나는 이들> 그리고 <남은 이들> / 사진. ⓒ김선경
미술관에서는 보치오니 외에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미래주의 미학을 실험한 여러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 대표 작가는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이다. 그는 미래주의 회화 선언에 서명하면서 초반부터 이 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움직이는 대상을 분할한 형태로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림 속에 시간과 속도를 담고자 했다. 전구 불빛과 같은 도시의 특징적인 역동성도 자주 주제로 삼았다. 미래주의 초기 멤버인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 작품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발레와 무용 그리고 현대 도시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같은 주제를 반복적으로 다뤘다. 그의 작업에서는 장식성과 리듬감이 잘 드러난다.
미래주의는 강렬하게 일어났지만 전성기는 짧았다. 1909년부터 1912년까지를 미래주의 전성기로 꼽는다. 전쟁이라는 외부 충격이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미래주의 스스로가 가진 한계도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래주의의 표현방식은 비슷한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움직이는 모습을 겹겹이 쌓아 그리거나 입체주의처럼 형태를 분할하여 표현하는 방식을 여러 작가가 자주 반복해서 쓴 것이다. 미래주의는 작가 중 일부가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을 지지한 부끄러운 과거도 가지고 있다. 새로움과 혁신에 대한 열망이 파시스트 정권이 표방한 강력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착각한 탓이다. 세계 전쟁을 일으킨 정치적 신념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미래주의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노베첸토 미술관에서 바라본 밀라노 대성당 / 사진출처. Associazione Abbonamento Musei 사이트
노베첸토미술관은 미래주의가 가진 양면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고 있었다. 미래주의의 미학적 실험 결과물과 함께 정치적 오판에 대한 설명문도 전시하고 있다. 파시즘과 손을 잡았던 미래주의의 역사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AI라는 강력한 변화가 미술의 모든 부문에 힘을 뻗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는 화가의 붓질을 배워 그림을 만들어 낸다. AI를 전시 기획에 사용해 ‘맞춤형 전시’를 제공하기도 하고. 미래주의는 기술을 찬미하며 기술이 가진 폭력성을 간과하지 않았던가?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동시대 미술계도 성찰 없이 AI를 이용한 미술을 추구하다가는 예상하지 못한 불행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미술의 종말’ 같은 것 말이다. 과연 AI는 미술을 풍요롭게 하고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독자라면 미래주의를 품고 있는 노베첸토미술관에 가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