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 사진제공. 경주문화재단. ⓒ정용주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 사진제공. 경주문화재단. ⓒ정용주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최근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아르떼와 만났다. 괴첼 감독은 지난 1월부터 2027년 1월까지 2년간 울산시향을 지휘하기로 한 오스트리아 빈 출신 지휘자다. 튀르키예의 보루산 이스탄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IPO)를 2009년부터 2020년까지 11년간 이끌면서 BBC프롬스 무대에 올리거나 독일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에서 앨범을 내는 등 유럽 변방 악단의 위상을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부로 끌어올렸던 인물이다. 지난 15일 열린 경주국제뮤직페스티벌 공연을 위해 경주를 찾은 그는 “울산에서 음악으로 중부 유럽 문화와 아시아 문화를 이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 다르면 악단이 만드는 침묵도 달라”

괴첼 감독은 악단 개발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지휘자로 꼽힌다. 그가 맡기 전 BIPO는 1999년 창설된 신설 악단 이미지가 강했다. 공연 티켓은 매진은커녕 60~70%가 팔리는 정도였다. 괴첼 감독은 BIPO를 대부분 티켓이 매진되는 인기 악단으로 바꿔놨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페라인 등에서도 공연하며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괴첼 감독은 “BIPO는 제 정체성의 일부이자 지휘라는 예술로 만든 작품”이라며 “BIPO가 세계적인 인정을 받도록 제가 기여했던 만큼 BIPO도 제가 국제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고 말했다.

괴첼 감독이 이스탄불에서 활약했던 데엔 세계 각지 악단과 합을 맞춰봤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그는 프랑스국립오케스트라, 런던필하모닉, NHK필하모닉, 뮌헨심포니오케스트라, 이스라엘필하모닉 등에서 객원 지휘를 해봤다. 핀란드 쿠오피오 교향악단 수석지휘자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 프랑스 루아르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도 겸하고 있다. 2021년엔 통영국제음악제(TIMF)에서 KBS교향악단과 공연했다. 괴첼 감독은 “문화가 달라지면 악단은 소리, 레퍼토리 접근 방식뿐 아니라 연주 중에 내는 침묵마저도 다르다”며 “지휘자도 오케스트라가 있는 장소에 따라 음악 해석이 바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 사진제공. 경주문화재단. ⓒ정용주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 사진제공. 경주문화재단. ⓒ정용주
울산시향에 오기로 결심 한 건 울산만이 가진 특색 때문이었다. 괴첼 감독은 “울산은 유명한 산업 도시이면서도 문화적으로 도전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는 게 흥미로웠다”며 “이 도시의 악단이 관객들과 접점을 늘려가며 지역 사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목표는 “울산시향이 한국을 대표할 정도로 독특한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라고. 그는 “우선은 울산 시민들의 목소리로 악단이 자리잡도록 하겠다”며 “이후 국제 무대에 악단을 진출시키겠다”고 말했다.

빈·프라하 음악 드러내되 시대정신 고민

괴첼 감독이 들려주려는 음악은 중부 유럽 레퍼토리다. 그는 울산시향 예술감독을 맡게 되면서 이 악단의 최근 10년간 레퍼토리를 파악했다. 악단의 관객 특성을 파악하려는 절차였다. 악단과 관객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찾았다. 괴첼 감독은 “프레이징, 아티큘레이션, 다이내믹 등의 음악 요소는 빈 고전 음악에서 비롯됐다”며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음악은 악단의 질을 조금씩 끌어올릴 수 있는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체코 프라하의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사진출처. 타미쇼아라 콘서트홀 홈페이지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사진출처. 타미쇼아라 콘서트홀 홈페이지
중부 유럽과 아시아를 한데 묶을 수 있는 음악도 소개할 계획이다. 괴첼 감독은 “동양과 서양의 주제를 결합한 레퍼토리를 찾고 있다”며 “말러의 ‘대지의 노래’처럼 중국 한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노래가 그러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레퍼토리를 늘리기 위해선 지역민들이 원하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단 생각이다. 그는 “악단은 지역문화 발전을 위한 중심축이자 방향성을 잡아주는 등대 역할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시대가 요구하는 음악을 악단에 반영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괴첼 감독은 시대정신이 음악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비발디가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한 ‘사계’를 산업혁명 이후에 만들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노래가 나왔을 것이라고. 괴첼 감독은 “같은 음악을 두고서도 2차세계대전 이전엔 직선적이며 거친 해석이, 그 이후엔 부드럽고 인간적인 해석이 두드려졌다”고 설명했다. 현시대를 놓고선 “사회만이 아니라 음악 청취자들도 쪼개지고 분열하기 시작한 시대”라고 주장했다. “관객들이 연주자를 신뢰하는 이유는 연주자가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로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연주자가 지금의 시대정신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오자와 세이지의 가르침

괴첼 감독은 음악가 집안에서 자라 어릴 때부터 공연장이 친숙했다. 지휘자를 꿈꿨던 건 세 살 때다. 지휘가 뭔지도 모르던 때, 무대 가운데에 선 사람이 멋있어 보여서였다. 음악인이 되려 그는 바이올린을 먼저 배웠다. 빈 필하모닉에서 연주할 정도로 실력도 좋았다. 지휘자로서의 삶을 확신한 건 20대 초반이었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프리랜서 지휘자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지휘했을 때다. 그는 “악단이 무언가 특별한 걸 경험하기 위해 저를 따라오는 듯한 기분을 그때 느꼈다”며 “이런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 과거 꿈이었던 지휘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이끄는 울산시향. / 사진제공. 경주문화재단
사샤 괴첼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이끄는 울산시향. / 사진제공. 경주문화재단
지휘 대가들을 만나는 행운도 따랐다. 그는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와 협업하거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오자와 세이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괴첼 감독은 “메타에게선 어디서든 드러나는 존재감을, 오자와에게선 악보를 음악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필요한 규율을, 무티에게선 음악의 모든 미적 요소를 다루는 섬세함을 배웠다”며 “이들은 모두 음악과 음악인들에 대해 남다른 존중을 드러냈던 분들”이라고 말했다.

괴첼 감독도 음악 자체를 사랑하는 데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청소년기에 팝 밴드 활동을 했다. “한때는 전자 음악에 빠지기도 했어요. 이 음악의 루프(반복되는 리듬)가 만들어내는 효과가 끌렸어요. 음악에 옳고 그른 건 없어요. 가벼운 대중음악이나, 무거운 클래식 음악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저에게 좋은 음악은 제 감정에, 마음에, 에너지에 호소하는 음악입니다. 당신에게 맞는 음악은 당신이 즐기는 음악이겠죠. 그게 핵심이에요.”

경주=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