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빛낸 작곡가들의 마지막을 기리는 ‘백조의 노래’. 그 다섯 번째 작품은 신이 너무나 많은 재능을 주었기에 그렇게 빨리 데려간 것이란 탄식을 쏟게 만드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미완성 유작이자 제자의 손에서 완성된 장송곡인 <라단조 레퀴엠, 작품번호 626번 (Requiem in d minor, K.626)>입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에 대해서는 워낙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그의 ‘백조의 노래’가 이 곡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이 작품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입당송 (Introit)’과 ‘키리에 (Kyrie)’, ‘부속가 (Sequentia)’의 초안 등만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제자 프란츠 쥐스마이어가 완성하였기 때문에 이 작품을 온전한 모차르트의 ‘백조의 노래’라 보지 않는 시선도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모차르트가 사망하기 약 2달 전인 1791년 10월경에 전설적인 클라리넷 연주자 ‘안톤 슈타들러’를 위하여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작품번호 622번>이나 사망하기 20일 전인 11월 5일에 작곡한 그의 마지막 칸타타인 <“큰 소리로 기쁨을 선포하라”. 작품번호 623번>을 진정한 그의 마지막 ‘백조의 노래’라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그림. Barbara Krafft, 출처. Wikimedia Commons
1791년 8월 어느 어두운 밤, 창작을 방해하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난 이 위대한 작곡가는 늦은 밤 소리 없이 나타난 불청객을 맞이하기 위해 문손잡이를 엽니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남성이 나타나 그에게 레퀴엠, 즉 장송곡을 작곡해달라 의뢰합니다. 격무에 시달리고 있던 모차르트는 그가 마치 자신에게 찾아와 목숨을 가져가려는 저승사자인 것처럼 느껴졌고, 이 장송곡이 모차르트 자신을 위한 장송곡이라는 착각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렇게 죽음의 공포 속에서 써간 작품이라는 사실이 그가 사망하고 5일 뒤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부분들, 즉 입당송과 키리에만 연주한 초연에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사망하고 난 후 그의 아내 콘스탄체 모차르트는 남편의 걸작인 이 장송곡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모차르트의 수제자였던 요제프 아이블러가 호기롭게 도전하였으나 위대한 스승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기에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를 하게 됩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티토 황제의 자비>의 공동 작곡가를 맡았던 음악가이자 모차르트의 제자로 추정되는 쥐스마이어가 이 위대한 업적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작곡가가 사망하고 2년 뒤인 1793년 1월, 마침내 온전한 형태의 장송곡으로 <레퀴엠>이 초연 무대를 갖게 됩니다.
모차르트의 죽음의 순간에 그의 옆에 있던 쥐스마이어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입당송’으로 시작됩니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존경하던 작곡가 헨델의 1737년 작품인 <캐롤라인 여왕의 장례식, 작품번호 264번>의 선율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키리에’는 ‘자비를 베푸소서’란 의미의 라틴어 ‘키리에 엘레이손 (Kyrie eleison)’으로만 이뤄진 가사가 인상적이죠.
<레퀴엠>의 세 번째 파트라 할 수 있는 ‘부속가’는 6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강렬한 신의 분노가 느껴지는 ‘진노의 날 (Dies irae)’를 시작으로 ‘경이로운 나팔소리’란 의미의 ‘튜바 미룸 (Tubs mirum)’, ‘위엄의 왕 (Rex tremendae)’, ‘기억하소서 (Recodare)’, ‘사악한 자들 (Confutatis)’, ‘눈물의 날 (Lacrimosa)’이 이어집니다. 특히 부속가의 마지막 곡인 ‘눈물의 날’은 여러 추모 행사에서 단독으로 연주되기도 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곡입니다.
‘봉헌송 (Offertorium)’은 ‘주 예수 그리스도 (Domine Jesus Christe)’와 ‘성찬’, ‘제병’ 등의 의미인 ‘호스티아스 (Hostias)’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호스티아스는 모차르트가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작곡하던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쥐스마이어는 이 봉헌송에 ‘상투스 (Sanctus)’와 ‘베네딕투스 (Benedictus)’, 즉 성찬 기도의 ‘거룩하시도다’를 추가했습니다.
성찬 기도에 이어지는 ‘하느님의 어린양 (Agnus Dei)’이 끝나면 ‘영원한 빛 (Lux aeterna)’과 ‘성도들과 함께 (Cum sanctis tuis)’로 이어지는 ‘영성체송 (Communio)’을 마지막으로 연주되며 천재 음악가의 마지막을 기리듯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 대장정을 마무리 짓습니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K626 자필 악보 /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레퀴엠>의 작곡을 의뢰한 이는 정말 저승사자였을까요? 사실 이 작품을 의뢰한 사람은 20대 후반의 독일 귀족 프란츠 폰 발제크였습니다. 발제크 백작은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모차르트처럼 프리메이슨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에게 몰래 작품을 의뢰하여 마치 자신이 작곡한 작품인 마냥 공연에서 연주하는 것을 즐기는 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작의 부인 안나 발제크가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자 슬픔에 잠긴 백작은 평생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랑하는 아내를 위하여 모차르트에게 의뢰한 곡이 바로 <레퀴엠>이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악독한 취미를 이어가기 위하여 몰래 자신의 하인을 모차르트에게 보냈던 것이 결국 이러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입니다.
비너 노이슈타트의 레퀴엠의 초연을 기념하기 명판, 발제크 백작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이룬 작곡가로 손꼽히는 천재 모차르트의 ‘백조의 노래’이자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곡이기도 한 <레퀴엠>은 베르디, 포레의 <레퀴엠>과 함께 3대 <레퀴엠>이라는 수식어로도 사랑받으며 불멸의 명곡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