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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허세로 출발했지만 예술로 완성된 삶
환등기
잉마르 베리만 지음
신견식 옮김 / 380쪽│3만원
스웨덴 출신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현실과 환상 경계 오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눈길
잉마르 베리만 지음
신견식 옮김 / 380쪽│3만원
스웨덴 출신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자서전
현실과 환상 경계 오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눈길
스웨덴의 작은 섬 포뢰에서 쓰인 책은 베리만의 ‘허세로 시작한 자아 해명서’라 할 만하다. 여느 자서전처럼 어린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선입선출식으로 기억을 나열한 글이 아니다. 한 거장이 필모그래피를 완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써 내려간 시나리오에 본질적으로 더 가깝다. 단지 기억을 기술한 게 아니라 삶을 하나의 서사로 연출했다는 뜻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껴진다. ‘피가 흐르고 잉마르는 핏기 없이 웃음 짓는다. 현실. 그리고 시네마토그래프가 왔다’처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글을 읽으면서다. 보르헤스나 마리오 바르가스요사 같은 작가들의 ‘마술적 사실주의’식 소설을 연상케 하는 자서전이 또 있을까. 애당초 자서전 이름부터가 상징적이다. 전근대 마술사들이 애용하던 환등기는 강렬한 빛을 쏴 이미지를 비춰내는 원시적 슬라이드 영사기로, 인류를 영화라는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 첫 매개체다.
온통 이해하기 어려운 글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매질을 일삼던 엄한 아버지와 우울증을 앓던 어머니 밑에서 자란 불안정한 유년기, 예술적 야심과 성취를 이룬 과정, 나치 독일에 매료돼 “하일 히틀러”를 외친 어리석던 유학 시절, 화려한 여성 편력과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첫 경험의 기억, 탈세 누명을 뒤집어쓴 채 잠자코 지내야만 했던 울분의 나날이 현장감 넘치게 쓰였다.
극장의 위기라지만 위대한 감독이 남긴 예술영화는 오히려 각광받는다. 장뤼크 고다르, 마틴 스코세이지, 데이비드 린치, 라스 폰 트리에보다 앞서 영화라는 꿈을 좇던 옛 거장을 활자로 만나보는 건 어떨까. 허세로 출발했지만 과장된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고 구구절절 촬영물을 편집하듯 삶을 잘라내고 이어 붙여 완성한 시나리오의 연출은 완벽하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