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세계를 지배할 때, 우리에겐 무슨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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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동윤의 아트하우스 칼럼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연출한
네오 소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연출한
네오 소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 리뷰
영화가 설정한 미래적 상황이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단지 불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을 뿐'이라는 윌리엄 깁슨의 말은 사실임이 증명된다.
영화를 보고 급격한 고령화 사회와 인구 감소, 다양한 인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본 사회의 현재를 떠올렸다면 <해피엔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올 작품이다. 과연 무엇으로 하여금 <해피엔드>로부터 기시감을 느끼는지 네오 소라 감독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본다.
일본 차세대 거장, 네오 소라 감독
네오 소라 감독은 류이치 사카모토 감독의 아들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의 마지막 연주 모습을 담은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를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지만 정작 자신의 영화적 세계를 펼쳐낸 작품은 <해피엔드>가 처음이다.
청춘 멜로와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지배하는 일본 사회에서 지극히 정치적인 영화를 만난다는 것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일본 국내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으며 그 체제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쉽게 자각할 수 없는 현상들을, 네오 소라는 날카롭게 벼려내고 비판적 시각으로 정면 응수한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뉴욕과 도쿄를 오가며 교육받고 경험한 탓이다.
그에게 일본은 절대 단일하지 않은 사회 체제다. 이미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을 대신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국가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통제하려 했을 때, 혹은 그러한 욕망을 품기 시작할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지게 될지 정확히 묘사해 낸다. 지극히 일본적인 시선이 보편적 인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 셈이다.
공포가 야기한 분열, 그 사이에서 꿈꾸는 해피엔드
감독이 분석한 모든 차별 폭력의 시작은 '공포심'이다. 지진으로 인한 재난을 겪은 대중들 마음속에 자리한 공포심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손쉽게 감시 사회를 용인하게 한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국가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주장, 국가의 감시가 우리 모두를 안전하게 만들 거라는 주장은 지극히 소수의 순혈주의자에들게만 해당되는 법적 질서일 뿐이다. 안전한 존재와 불안전한 존재를 갈라치기 하는 주장들로 인해 <해피엔드>의 세계는 분열된다. 감독은 이러한 세계관을 일본 국적의 유타(쿠리하라 하야토)와 국적을 갖지 못한 재일조선인 자녀 코우(히다카 유키토)의 우정을 통해 그려낸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서 대학 시절 친했던 친구들과 논쟁을 펼치며 서로 다른 차이를 발견하고 결국 멀어지게 되었던 경험을 고백했다. 감독은 현실 세계에서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지만, 비록 영화적 세계 속에서만큼은 그 어떤 파시즘적 폭력에도 불구하고 우정이 이어지길 바라는 해피엔드를 상상한다. 어쩌면 그 상상은 우리 모두가 내면에서 바라는 바인지도 모른다.
현실을 일깨우는 강렬한 테크노 비트
화면의 안과 밖으로 강렬히 때리는 테크노 비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저항과 투쟁의 외침은 <해피엔드>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영화의 사운드트랙 대부분을 차지하는 테크노의 강렬한 비트는 세상과 단절한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 여기만을 자각하게 만든다.
일본 국적인 유타가 테크노에 빠져든다는 설정은 지극히 징후적이다. 일본 국내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무기력감. 판단 중지, 또는 상상 금지의 현실 속에서 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는 패배감이 그로 하여금 테크노의 음악 속으로 도피하게 만든다.
감독은 그런 태도를 정면으로 비판하기보다 코우를 통해 우회적으로 감싸안는다. 그리고 웃음, 장난, 유희가 어쩌면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 되진 않을까 조심스레 상상한다. 일탈로만 비치는 이들의 행동이 결국 파시즘적 사회 체제를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며 비판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감독의 주장은 귀담아들어 봄 직하다.
그 주장이 체제 내의 소수자들을 끊임없이 혐오하고 억압하며 통제하려는 한국 사회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해피엔드>를 테크노 음악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감독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바가 아닐까? 극장을 가득 울리는 강렬한 비트가 끝난 뒤 극장 문을 나설 때 우리 존재를 휘감는 지독한 현실을 감각하게 된다면 영화 속 질문들을 다시금 되새겨 볼 수 있길 바란다.
이동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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