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펠로십 프로그램 진행...26일 교육 공개
압 판 츠베덴 음악감독, 신진 지휘자 8명 개별 지도
“어떤 음이 제일 중요하냐”며 명쾌한 해석 요구
“지휘자는 음악 전하는 대사...서로에게 배워야”
악단 단원 투표로 28일 특별 공연 지휘자 가려
“뜨아, 뜨아! 이렇게 할 때마다 (교통 통제하는) 경찰관 같이 느껴져요. 조금 누그러뜨려요!”
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이 갑자기 손뼉을 쳐 악단 연주를 멈추고 무대에 선 지휘자의 큼직한 몸놀림을 따라하더니 이 같은 말을 건넸다. 바로톡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5악장에서 신진 지휘자인 최재혁이 지휘봉을 격동적으로 휘몰아치고 있을 때였다. 이 악장은 앞 악장에서 차분한 어조로 응축됐던 에너지를 힘찬 호른 소리와 함께 웅장하게 쏟아낸다. 이 역동성을 표현하려다 보면 연주에서 과한 느낌이 날 수도 있다. 츠베덴 감독이 몸짓과 의성어를 섞어가며 조언한 이유다. 츠베덴 감독은 19살 때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불리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에서 최연소 악장으로 임명됐던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이다. 이후 번스타인의 권유로 지휘자로 전업한 뒤 홍콩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을 이끈 대가다. 지난해부터 음악감독으로 서울시향을 이끌고 있다.
2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진행된 '지휘 펠로십' 프로그램에서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오른쪽)이 지휘자 최재혁을 격려하고 있다.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바이올린 활 방향까지 고려하며 조언...‘엄지 척’ 칭찬도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지휘자 양성 프로그램인 ‘지휘 펠로십’을 진행한다. 26일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교육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통상 거장 지휘자들의 지휘 교육 프로그램은 마스터 클래스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마스터 클래스는 비공개로 단 하루만 운영된다. 시간이 짧다보니 지휘자가 자신의 연주를 돌아볼 만한 기회를 받기도 쉽지 않다. 서울시향은 방식을 바꿔 3일간 신진 지휘자들이 서로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도록 했다. 언론에 연습 현장도 공개했다. 최재혁이 “이런 기회를 주는 행사는 세계에서 한 손가락에 든다”며 “축구 꿈나무가 손흥민에게 축구를 배우는 격”이라고 말한 이유다.
이번 지휘 펠로십에 선정된 지휘자는 모두 8명. 서울시향이 지난해 7~9월 신청을 받은 신진 지휘자 59명 중 단원 심사를 통해 가린 인재들이다. 이날 공개 행사에선 송민규와 최재혁이 각각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츠베덴 감독은 날카로운 눈길과 확고한 어조로 연주를 중간중간 끊어가며 자신의 의견을 젊은 지휘자에게 전달했다. “현악기의 모든 걸, 이를테면 악기들의 음역 폭과 쉴 타이밍 등을 숙지해야 한다”고 조언하거나 “방금 바이올린 활의 움직임이 상행이었나, 하행이었나”를 질문할 땐 악기 특성에 맞춰 음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꼼꼼함이 드러났다.
2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습실에서 진행된 '지휘 펠로십' 프로그램에서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오른쪽)이 지휘자 송민규를 지켜보고 있다.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판 츠베덴 감독은 “어떤 음이 제일 중요하냐”며 연주 사이사이 후배 지휘자들의 명쾌한 해석을 요구했다. 최재혁이 나름의 해석을 제시했을 땐 판 츠베덴 감독이 “왜 그렇게 바꿨는지 이유를 알려달라”고 묻거나 “빰빰빰빰” 금관악기 소리를 따라하며 연주 전개 과정을 꼼꼼히 되짚기도 했다. 자신의 조언을 들은 후배가 멋진 연주에 성공할 땐 확고한 표정으로 엄지를 치켜올리며 격찬을 하기도 했다. 음 하나에 의미와 해석을 담으려는 거장의 진심이 느껴졌다.
“힘 아닌 힘찬 감정 전달하는 지휘자 돼야”
츠베덴 감독은 이날 연습 공개 후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실제 공연으로 이어지는 공개 프로그램을 기획한 목적을 설명했다. 그는 “감독으로서 남기고 싶은 유산은 훌륭한 연주회뿐 아니라 재능 있는 인재들이 훌륭한 지휘자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지휘자는 작곡가가 아닌, 음악을 전하는 대사(ambassador)로서 역할을 겸허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휘자는 항상 대중, 언론, 단원들의 판단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폐쇄적인 마스터 클래스보다는 공개적인 프로그램이 낫다”고 덧붙였다.
2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지휘 펠로십'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말하고 있다.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공개 교육으로 누릴 수 있는 이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츠베덴 감독은 “지휘자들은 서로의 연주 모습을 보고 ‘이런 건 하면 되고, 저건 하면 안 되겠구나’하며 많은 걸 배울 수 있다”며 “언론, 관객,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고되고 힘들지만 최고의 수업”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뒷담보다 앞에서 주변의 평가를 솔직하게 듣는 기회가 더 강력하다”는 말에선 명쾌하고 솔직한 그의 교수 방식이 느껴졌다.
지휘자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소양에 대해선 3단계로 설명했다. 츠베덴 감독은 “우선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연주를 멈춰야 한다”며 “그 다음엔 멈춘 이유를 알려주는 단계로, 이어 더 나은 연주로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단계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휘자는 힘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힘찬 감정을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할 땐 곡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표현이 청중에게 어떻게 전달될 지를 고려하는 섬세함이 느껴졌다.
“커리어 매몰 말아야...페라리 몰더라도 빠르면 주변 못 봐”
후배들에겐 “저마다 인생의 속도가 다르다”는 조언도 건넸다. 츠베덴 감독은 “과거 만났던 지휘자들을 보면 첫인상이 불확실해 보이더라도 나중에 아주 훌륭한 지휘자로 성장한 경우가 있었다”며 “페라리 스포츠카를 몰더라도 너무 빠르게 운전하다보면 주변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커리어를 좇지 말라”며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지휘의 기쁨을 항상 간직하면 자연스럽게 커리어가 따라올 것”이라고 했다.
2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지휘 펠로십' 관련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신진 지휘자 8명. / 사진출처. 서울시립교향악단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한 지휘자 중 일부는 오는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2025 서울시향 지휘 펠로십 특별 공연’을 지휘하게 된다. 연주 곡은 바르톡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포함해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 및 ‘사랑의 죽음’.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등 3개 작품이다. 서울시향 연주자들은 27일 리허설 후 이 공연을 이끌 지휘자를 낙점한다. 판 츠베덴 감독은 “프로그램에 참가할 지휘자들을 선정하는 기준으론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가,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이미 잘 쌓아가고 있는가 등 두 가지를 봤다”며 “28일 공연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함께 연주하고 싶은 지휘자를 투표해 고를 것”이라고 말했다. 츠베덴 감독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