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학개미 "미워도 다시 한번"
美국채 엔화노출 ETF에 뭉칫돈
작년 부진한 성적에도 베팅나서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하자 엔화 강세에 베팅하는 상품에 수천억원이 몰렸다. 특히 엔화로 미국 장기채에 투자해 환차익까지 노리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이 상품에 많은 자금이 몰렸다가 부진한 성적으로 국내 투자자의 속을 태웠는데 ‘드디어 빛을 보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환차익·기초자산 ‘두 마리 토끼’ 노려
2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투자자는 일본 증시에서 ‘아이셰어즈 만기 20년 이상 미국 국채 엔화 헤지’ ETF를 2325만달러(약 334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이 기간 전체 일본 증시 순매수 1위에 올랐다. 미국 국채 장기물 투자를 통한 자본 차익과 엔화 가치 변동에 따른 환차익을 한꺼번에 얻으려는 수요가 몰렸다.
엔화 가치가 역사적 저점 수준으로 떨어지자 국내에도 구조가 비슷한 상품이 인기몰이하고 있다. 2023년 말 출시된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합성H)’ ETF의 순자산 규모는 4200억원으로 불어났다.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도 1110억원 규모로 커졌다.
23~24일 열리는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으면서 엔화 가치는 조금씩 반등하고 있다. 지난해 말 158엔대까지 치솟은 엔·달러 환율은 최근 155엔대로 떨어졌다. 일본은행이 예상대로 금리 인상을 결정하면 기준금리는 연 0.5%가 된다. 지난해 7월 연 0.25%로 올린 지 6개월 만이자 지난해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한 이후 세 번째 인상 조치다. 과거 한국과 일본의 금리 차가 축소되는 국면에서 엔·원 환율은 상승세를 보였다.
○“엔 캐리 트레이드 가능성 작아”
엔화로 투자하는 ETF는 환차익과 별개로 기초자산 성과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시장 금리 인하 속도가 늦어지자 이들 상품은 저조한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RIS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의 3개월 수익률은 -6.37%다. 같은 기간 ACE 미국30년국채엔화노출액티브(H)도 6.36% 손실을 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박소연 신영증권 주식전략·자산배분 담당 연구원은 “연말 일본 기준금리는 0.75%까지 오르고, 엔·달러 환율은 140엔대까지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의 금리 인하 강도가 둔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며 장기채 금리도 안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상품도 투자자 관심을 끌고 있다. 엔화로 S&P500지수에 투자하는 ‘SOL 미국 S&P500엔화노출(H)’ ‘RISE미국S&P500엔화노출(합성H)’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별개로 증권가에서는 엔 캐리 청산 가능성에 따른 우려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과 미국 경기침체 가능성이 겹치며 주요 글로벌 지수가 폭락한 8월 5일 ‘블랙 먼데이’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점에서다. 전문가들은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갑작스럽던 지난해와 달리 일본 금리 인상을 시장에서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며 “엔 캐리 청산도 상당한 규모로 이뤄진 만큼 올해는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