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업계 ‘빅2’인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이 지난해 ‘어닝 쇼크’ 수준의 실적을 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한때 이들을 ‘황제주’ 반열에 올려놨던 중국 시장 의존도를 선제적으로 줄이지 못한 타격이 예상보다 컸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는 올해 시장 다변화를 본격화해 실적 개선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세계 1, 3위 화장품 시장인 북미와 일본을 집중 공략할 계획이다.
화장품 빅2 '실적 반전' 美·日에 달렸다

‘양날의 검’ 된 중국

LG생건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5.3% 감소한 6조8048억원, 영업이익은 31.5% 줄어든 4870억원으로 집계됐다. 화장품 사업만 보면 영업이익 감소율이 52.6%에 달했다. 아모레퍼시픽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10.5% 줄어든 4조213억원, 영업이익은 44.1% 감소한 1520억원이었다.

저조한 실적은 해외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과 면세점을 찾는 따이궁(보따리상) 감소 탓이 크다. 중국 경제 침체로 지난해 고가 화장품 수요는 더 낮아졌다. 중저가 제품은 자국산을 선호하는 ‘궈차오’(애국소비) 흐름이 강하다.

사드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중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한국산 화장품의 중국 유통이 막힌 팬데믹 시기에 중국 화장품 업체들은 상품 개발과 마케팅 강화에 나서 점유율을 배로 늘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 새 중국 내 자국 색조 화장품 브랜드 점유율은 14%에서 28%로 확대됐다. 프랑스 일본 등 경쟁국 고급 브랜드의 중국 내 약진도 한국 화장품 입지 축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탈(脫)중국’ 속도

LG생건과 아모레는 올해 시장 다변화에 속도를 낸다. 지난해부터 중국 대체 시장 확보에 나선 아모레는 북미와 일본 시장에서 매출이 각각 58%, 30% 이상 급증하는 성과를 거뒀다. 아모레는 올해부터 기존 인수합병(M&A)의 효과도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21년에 이어 지난해 잔여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한 더마 화장품 전문기업 코스알엑스의 실적이 5월부터 반영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마존부터 뚫는 글로벌 온라인 유통 전략으로 세계 140여 개국에 진출한 코스알엑스는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60%를 웃돈다.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4700억원으로 90% 이상을 미국 등 북미와 유럽, 일본 등에서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는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2022년 미국 클린 화장품 브랜드 ‘타타 하퍼’도 인수했다. 지난해 9월엔 ‘라네즈’ 브랜드를 내세워 멕시코에 진출했다. 비슷한 시기 ‘헤라’가 일본에 공식 진출하는 등 일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LG생활건강은 2019년부터 미국 화장품업체 더 에이본, ‘피지오겔’ 브랜드의 아시아·북미 사업권, 미국 화장품 브랜드 ‘더 크렘샵’ 등의 인수에 총 6000억원 이상을 투자했으나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최근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북미 사업 개편에 나섰다. 올해엔 ‘빌리프’와 ‘더페이스샵’ 등을 내세워 마케팅을 강화할 계획이다.

일본에선 색조 브랜드인 ‘VDL’ ‘힌스’ ‘글린트’ 등을 앞세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중 힌스는 2019년 일본에 진출한 브랜드로, LG생활건강은 지난해 9월 힌스의 모회사인 비바웨이브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K뷰티 확산 흐름을 타고 LG생활건강과 아모레가 포스트 차이나 국가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하지만 중국을 대체할 정도의 성과를 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