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그룹이 계열사 부당 지원을 이유로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분에 불복해 낸 소송에서 이겨 과징금 대부분을 돌려받는다. 재판부는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를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따라 행정력을 앞세운 공정위의 무리한 기업 손보기 관행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최근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기업이 크게 느는 추세다.

○3년2개월 만에 과징금 취소 결정

체면 구긴 공정위…SPC에 647억 과징금 소송 졌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행정6-2부는 파리크라상·에스피엘·비알코리아·샤니·SPC삼립 등 5개 회사가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2020년 11월 사건이 접수된 지 3년2개월 만에 나온 첫 법원 판단이다. 공정거래 사건은 공정위 전원회의 결론이 법원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이날 결정은 2심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2020년 7월 SPC가 2011년부터 7년간 부당 지원을 통해 삼립에 414억원 상당의 이익을 제공했다고 보고 계열사들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647억원을 부과했다. 구체적 제재 사유는 계열사인 샤니의 판매망 저가 양도 및 상표권 무상 제공, 파리크라상과 샤니가 보유한 밀다원 주식 저가 양도, 파리크라상·에스피엘·비알코리아 등 제빵계열사가 생산계열사의 원재료·완제품을 삼립을 통해 구매한 ‘통행세 거래’ 등이다.

공정위는 SPC가 허영인 SPC 회장 두 아들의 경영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이 같은 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SPC 측은 “계열사 간 거래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직계열화 전략”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파리크라상 등 계열사와 삼립 간 거래 가운데 2015년 이전 밀가루 거래에 대해서만 ‘현저한 규모’로 이뤄져 삼립에 ‘과다한 경제적 이익’이 제공됐다는 이유로 시정명령을 인정하고 나머지 시정명령은 모두 취소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과징금 전체를 취소하고 부당 지원 성격이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재산정해 부과해야 한다. SPC를 대리한 서혜숙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사실상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 내용인 통행세 거래, 밀다원 주식 양도 부분에서 SPC 그룹의 부당 지원 행위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과징금 남발에 기업들 ‘줄불복’ 소송

앞서 공정위는 과징금 부과와 함께 SPC 계열사와 허 회장, 경영진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작년 7월 ‘판매망 저가 양도 및 상표권 무상 제공’ ‘통행세 거래’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이날 법원이 사실상 SPC의 손을 들어주면서 공정위는 무리하게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기업이 일단 소송에 휘말리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승소해도 훼손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어렵다”며 “공정위가 부당 지원 행위를 막겠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과도하게 확대 해석해 시정명령을 남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법정 싸움으로 이어진 사례는 최근 더욱 늘고 있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7~2023년 연간 219~356건의 행정처분을 내렸으며 이 가운데 처분에 불복해 기업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비율은 평균 23.4%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처분 결정 이후 기업 4곳 중 1곳은 소송에 나선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행정소송 패소 등으로 공정위가 기업에 토해낸 환급액은 5511억원에 달했다. 여기에는 국민 세금으로 지급하는 환급금 이자 444억원도 포함됐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