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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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특징중 하나는 정책 실패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값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고, 전세값도 폭등해 '전세 대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부동산 정책이 틀렸기 때문이란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이전 정권의 규제완화와 저금리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대다수 국민들과 부동산 전문가들이 수요억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과 임대차보호법 등이 시장을 들쑤신 결과라고 입을 모으지만 정부는 이런 비판을 외면한다. 부동산 대란의 책임을 물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교체하면서 더 강성 규제론자인 변창흠 LH공사 사장을 장관 후보자로 내세운 것만 봐도 그렇다.

부동산 정책 뿐아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마찬가지다.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과 강제적 정규직 전환 등 '소주성'이 오히려 경제성장을 해쳤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정부는 인정하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을 포용적 성장이란 말로 바꾸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탈원전 정책도 최근 2050년 탄소중립 선언과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정부는 귀를 닫고 있다.

5년 단임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임기중 정책 실패를 만회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다 '정책 실패=정권 실패'로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정책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치지 않고 비판이 나올 수록 더 세게 밀어붙이는 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정부 관계자들의 해명과 증언을 종합해보면 '정책 실패 인정은 반(反)개혁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란 으로 인식이 강한 것 같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한다는 건 투기세력에 무릎 꿇는 것이고, 소득주도성장이 역효과를 냈다고 자인하는 것은 반(反) 개혁 진영에 항복하는 것이란 생각이 정권 핵심부에 짙게 깔려 있다고 한다. 이런 인식 아래선 정책의 전환이나 수정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정부가 굴복하지 않으려는 상대, 즉 투기세력 또는 반개혁 진영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란 점이다. 지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투기꾼들이 아니다. 뛰는 집값에 내집 마련 꿈을 날려버린 무주택자들과 1년 사이 수억원이 오른 전세값을 감당 못해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세입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주성도 최저임금 인상과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일자리를 잃은 알바생과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이 방향을 틀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부동산 투기꾼, 반개혁세력이란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싸운 것과 마찬가지다.굳이 싸움 상대를 지목하자면 그건 시장이었다.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의 수요나 기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시장질서를 왜곡하고 파탄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싸움 상대가 아니다. 싸워서 이길 수도 없다.

정부는 시장의 룰을 정하고, 공정한 게임이 진행되도록 돕는 심판이자 참가자이지 시장의 상대편에 서있는 경쟁자가 아니다.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책인 <<야성적 충동>>(로버트 쉴러, 조지 애커로프)에서 조차 "정부는 시장에 너무 관용적이어도 안되지만 권위적이서도 안된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시장에 맞설 게 아니라 조정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에 정책 실패를 인정하라는 게 반대세력에 백기를 들라는 게 아니다. 개혁을 포기하라는 말도 아니다. 부동산과 경제성장 정책의 목표는 국민들의 주거 안정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잘못된 방법론을 바꾸라는 것이다. 그 목표를 포기하란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다. 추구했던 정책 효과가 시장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깔끔하게 실패를 인정하고 방향을 트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적된 정책 실패가 진짜 정권 실패를 부를 수 있다.

차병석 논설위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