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제자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어요. 용기를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해요."

오랜만의 인터뷰, 그리고 팬과의 만남에 배우 반민정은 금세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사인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팬의 말에 반민정은 "제가 더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는 반민정에게 유독 의미있다. 영화 촬영 중 성추행 및 손해배상 소송으로 조덕제와 법정 공방을 승소로 마무리한 후 오랜 기다림의 마침표를 찍게 됐다. 영화 '대전 블루스'(박철웅 감독)를 통해 관객을 찾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극과 출신인 반민정은 2001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을 통해 데뷔한 후 드라마 '각시탈', '심야식당', 온에어' 영화 '응징자', '치외법권', '닥터' 등에 출연하며 활약해왔다.

숨 가쁘게 활동하던 2015년 영화 '사랑은 없다' 촬영 중 잊을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연기를 한다던 조덕제가 반민정의 합의 없이 성추행을 한 것. 어렵게 용기를 낸 반민정은 그를 신고했지만, 조덕제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는 커녕 반민정의 명예를 훼손하는 거짓 주장을 하며 맞고소를 했다.
[인터뷰+] '대전블루스' 반민정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4년간의 오랜 싸움 끝에 지난해 9월 대법원은 조덕제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여배우에게 '승소'는 끝이 아니었다. 반민정은 "피해자임에도 작품에 캐스팅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악플들을 보며 너무 무섭고 상처도 받았어요. 저는 피해자인데 왜곡된 이야기들을 듣고 저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이 계셨죠. 그 사람(조덕제)이 주장하는 자극적인 말 때문에요. 사실 대중들도 가해자에게 속고 이용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서서히 오해가 풀리고 있는 것 같아요."

23일 개봉하는 '대전블루스'는 움츠려있던 반민정의 등을 밀어준 작품이다. 그는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한 걸음씩 용기 있게 다가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좋은 사람들' 때문이었다. "진실은 하나고, 저는 진실만을 얘기했어요. 그것을 믿고 응원하고 버틸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들 덕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가짜가 진짜가 되는 일을 많이 겪어 두려웠는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진실을 알고 계시고, 제게 '이겨내줘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는 분들도 있어요.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인터뷰+] '대전블루스' 반민정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 캐스팅 또한 기적적인 일이었다. '대전블루스'에서 반민정은 의사 강수연 박사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정말 힘든 시기에 캐스팅 제의가 왔어요. 원래는 다른 역할이었는데 미팅 후에 영화사 대표, 감독님이 주인공 역할을 제안하시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저를 캐스팅 하셔도 괜찮으시냐'고 되물었죠. '반민정'이라는 배우에게 힘을 주기 위해 시나리오 뒷 부분까지 수정하시면서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박철웅 감독은 반민정과 캐릭터의 내면의 싱크로율을 예리하게 캐치했다. "감독님 워딩 그대로 말씀드릴게요. '처음 봤을 때 멍하면서도 열의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 수연 박사와 맞아 떨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내색을 안 하려고 하지만 캐릭터가 가진 복잡한 사연과 이면을 저를 통해 봐주신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캐스팅되면서 캐릭터 연령대가 수정됐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먼저 마음을 열어주셔서요."

오랜만에 나선 촬영 현장은 매 순간이 값졌다. 그동안 힘들었던 것들을 잊게 해줄 정도로 소중했다고 반민정은 떠올렸다. "혹시 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주저한 적도 있었어요. 저도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감독님부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용기를 주고 쓰러지지 않고 버티게 해주셨어요.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죠."
[인터뷰+] '대전블루스' 반민정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는 호스피스 병동에 근무 중인 정신과 전문의 강수연(반민정)과 말기 암 환자들, 그들의 가족 간의 이야기를 그린 힐링 드라마다.

"'대전 블루스'의 부제는 삶의 마지막을 앞둔 사람들의 라스트 댄스예요. 저 또한 삶과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연기를 포기하려고 한 적도 있으니까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많은 위로와 위안을 받았어요. 대중들이 이 영화를 통해 치유받았으면 좋겠어요."

반민정은 한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부당한 일을 감내하면서까지 연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 상 그 일이 쉽게 잊히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역할이든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앞으로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누군가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 영상=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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