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산이 많은 아름다운 도시지만 지금은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빌딩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한국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게 아니라 문화의 쇠퇴를 의미합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올해 수상한 중국 건축가 왕슈(王澍·48·사진). 중국 첫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그가 20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강연을 가졌다. 중국미술학원 건축예술학원장도 맡고 있는 왕슈는 “서울은 기본적인 도시의 미를 잃어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왕슈는 무분별한 대도시 개발에 반대하고 동양의 전통과 지역적 특색, 자연을 생각하는 건축을 지향해 ‘전통을 살린 현대 건축가’로 불린다. 중국에서만 공부한 그가 프리츠커상을 받았을 때 세계 건축계는 깜짝 놀랐다. 중국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며, 아시아에서도 일본에 이어 두 번째.

왕슈는 전통과 지역성을 잃어가는 동아시아 지역의 건축물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국 중국 등이 도시화와 함께 옛 건물을 철거하고 유리와 대리석으로 된 고층 건물을 짓는 것에 반대한다”며 “자연과 전통을 살려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까지 동아시아 건축가들은 전통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서양 건축양식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며 “동아시아 전통을 파괴하는 건 어리석다”고 주장했다.

왕슈가 설계한 닝보(寧波)역사 박물관은 서구식 건축 양식에 건축자재는 중국 고(古)건물의 잔해에서 나온 벽돌 등이 사용됐다. 미국인과 유럽인이 대부분인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들은 “전통미를 살린 왕슈의 작품은 문화충돌을 초월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서양식 건축물을 주로 지었던 중국 건축가들 사이에서 왕슈는 ‘변방의 건축가’라고 불린다. 그는 “중국인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탔을 때 중국건축가협회는 어떤 축하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슈는 서구 사회가 동아시아의 핵심 가치인 ‘윤리’를 외치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동양 사상의 핵심인 ‘윤리’가 세계 건축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며 “서양이 중시하는 미학의 한계를 깨달은 것이자 동아시아 건축에 대한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건축현장에 뛰어드는 대신 10여년간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전통 건축기법을 배웠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