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유시민 심상정, 당신들의 업보다
안경이 날아가고, 발로 짓밟히고, 머리채를 잡혔다. 지난 12일 밤 경기 고양시 킨텍스, 난장판이 돼버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유시민과 심상정은 날아드는 당권파의 주먹을 피하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구의 말마따나 대한민국의 진보는 이날로 죽었다고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비당권파가 폭력에 멋지게 맞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을까.

네티즌들은 유시민 대표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폭력 사태에서 심상정 대표를 보호하는 모습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좌파진영의 관행을 문제삼는 모습이 과거의 유시민과는 사뭇 달랐다며 말이다. 당권파의 훼방 속에서도 회의를 진행하는 모습이 당당했다며 심 대표에게도 찬사가 이어졌다. 일부 언론도 칭찬릴레이에 가세했다. 기가 막힐 일이다. 당권파 못지 않게 이번 사태에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이런 평가를 받으니 말이다.

유 대표는 폭력 사태 뒤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권파들이 당권을 내놓을 수 없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어떤 사정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당권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당권파의 핵심인 이석기 당선자를 국회에 보내겠다는 것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설명하지 않았다. 정말 몰라서일까.

일반 국민이라면 몰라도 유 대표와 심 대표가 주사파 민족해방(NL)이 뭔지 몰랐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기본 질서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최종 목표를 몰랐다면 믿어줄까. 미안하게도 유 대표와 심 대표를 그렇게 순박하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들이 진보당에 들어가 대표를 맡게 된 과정부터가 그렇다.

유 대표는 폭력 사태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당의 권력을 갖고 있던 분이 저에 대해서는 당 대표를 하든, 대선 후보로 나가든, 뭘 하고 싶다고 하면 다 해주겠다는 제안을 줄곧 해왔다”고 말했다.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유 대표 스스로 진보당에 들어간 목적을 밝힌 셈이다.

유 대표는 지난해 7월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실을 찾아가 이광석 의장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사과했다.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자격으로 협상단으로 활약했던 그는 “원망의 대상이 된 정책적 선택을 한 데 대해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고 했다. 참여당이 좌파통합 논의에 참여하려면 한·미 FTA 등 과거 노무현 정권의 잘못을 먼저 반성하라는 민주노동당의 요구에 이렇게 답한 유 대표다. 그는 민주당의 합류 제안을 뿌리친 채 열린우리당의 분파인 국민참여당을 이끌고 그렇게 주사파의 품으로 귀순했다.

심 대표라고 다르지 않다. 그는 NL과는 대북 노선이 맞지 않는 민중민주(PD) 계열이다. 민노당 시절 일심회 사건에 관련된 인물을 제명하자며 당 혁신안을 냈다가 NL에 밀려 무산되자 탈당해 진보신당을 만든 인물이다. 일심회 사건이라면 관련자 모두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3년 이상의 중형을 받은 간첩사건이다. 그러던 그가 총선이 다가오자 진보신당에서는 진보정치의 희망을 개척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며 다시 민노당과 합쳐 진보당을 구성한 것이다. 심 대표와 함께 민노당을 탈출한 노회찬 대변인도 다시 진보당에 들어가 종북의 입 노릇을 맡았다. 목적이 배지가 아니면 무엇이었겠나.

이들은 결국 종북 성향의 주사파가 총선을 통해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 주역이 됐다. 한·미 FTA 반대, 제주 해군기지 반대를 함께 외치며 말이다.

민주통합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손학규 김진표 같은 이들마저 진보당과의 야합을 통해 중도 세력까지 종북의 입에 털어넣으려 했으니 말이다. 민주당-진보당 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했다 치자. 작금의 사태는 제3당의 분란이 아닌 국가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질 뻔하지 않았는가. 모골이 송연하다.

유 대표와 심 대표는 사퇴를 선언하면서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청한다며 눈물을 보였다.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다. 주사파가 떼거지로 국회에 진입하는 상황이다. 이들을 몰아내는 게 급선무다. 다만 건전 진보로 거듭나겠다는 유 대표와 심 대표의 호소를 다시 한 번 믿어줘야 할지, 그것이 혼란스러울 뿐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